<에이리언: 커버넌트>의 한장면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한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면 아마 고독 때문이었을 것이다. 홀로 덩그러니 놓여진 태초의 유일한 존재이자 영원한 삶과 무한한 능력을 지닌 그에게 창조란 그저 '할 수 있으니까' 행하는 맹목적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신이 비로소 '신'이란 이름을 부여받은 것도 그가 빚어낸 인간들을 통해서였으니 말이다. 바꿔 말해 창조야말로 존재와 인식의 근원에 자리한 개념인 셈이다. 더 정확하게는, 신은 창조 그 자체다.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신은 크게 세 가지 '종'으로 구분된다. AI의 창조주인 인간과 인류의 창조주인 엔지니어, 그리고 에이리언의 창조주인 AI(인공지능)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 분)이다. 이들은 각자 창조의 주체이자 대상을 오가며 일종의 먹이사슬을 형성한다. 식민 행성 개척에 나선 우주선 커버넌트 호 승무원들이 미지의 신호를 감지해 예정에 없던 행성에 착륙하고, 이 곳에서 맞닥뜨린 에이리언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영화의 큰 줄기다. 그 와중에 11년 전 프로메테우스 호의 생존자인 AI 데이빗이 등장하면서 베일에 싸인 과거가 드러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한장면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한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시리즈 전편 <프로메테우스>에 이어 등장하는 데이빗의 존재는 영화에서 특히 의미심장하다. 인간에 의해 창조된 그가 인간과 동떨어진 채 지내오면서 나름대로 얻어는 '깨달음'은 창조를 대하는 영화의 메시지를 냉정한 태도로 대변한다. 망가진 자신을 되살려낸 쇼 박사에 대한 연민, 그리고 에이리언을 연구하며 알게 된 생명의 경이로움까지. 에이리언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다니엘스(캐서린 워터스턴 분) 등 커버넌트 호 승무원들이 마주하는 데이빗의 진실은 날카롭게 폐부를 찌른다.

이런 데이빗에 맞서 인간의 편에 서는 건 커버넌트 호의 AI 월터(마이클 패스벤더 분)다. 데이빗과 꼭 닮은 그는 쇼 박사를 따랐던 데이빗과 다르지 않게 다니엘스의 곁을 지킨다. AI 주제에 '감히' 쇼 박사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데이빗처럼, 다니엘스를 지키려다 에이리언에게 손 한 쪽을 잃는 월터의 모습은 일견 연인을 위한 헌신으로 비친다. 특히 영화 후반부, 행성을 떠나는 다니엘스 일행과 에이리언의 혈투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다만 이 와중에 오리지널 시리즈의 리플리(시고니 위버 분)에 비하면 어딘가 카리스마가 부족한 다니엘스의 여전사적 면모는 못내 아쉽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한장면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한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에이리언을 묘사하는 시리즈 특유의 섬뜩한 연출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의 얼굴에 달라붙어 번식을 시도하는 '페이스허거'와 가슴이나 등을 찢고 나오는 '체스트 버스터'는 한층 더 적나라한 연출로 시각을 압도한다. 여기에 식물에 의해 배출된 에이리언의 포자가 인간의 체내에 침투해 기생한다는 설정, 흰 피부색에 피칠갑을 한 변종 에일리언 네오모프의 모습 등 새로운 요소들은 시리즈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SF의 외피를 한 호러 장르물로서 역할에 충실한 만듦새는 영화가 지닌 철학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나름 최선의 선택으로 비친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에이리언> 시리즈의 기괴한 공포와 일종의 청량감을 이질감 없이 재현해 낸 점은 이 영화의 주요한 수확이다. 인간의 시점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면서도 정작 인간을 죽이는 데 거리낌 없는 태도 또한 인간과 에이리언을 동일 선상에 둔 객관적 시선을 통해 나름 당위성을 획득한다. 이는 생존과 번식으로 점철된 생태계의 본질을 날카롭게 궤뚫는 것이자,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 기술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전작과 다르지 않게 <에이리언: 커버넌트>가 남기는 텁텁한 뒷맛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지난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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