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가 거리를 달리는 모습.

프란시스가 거리를 달리는 모습. ⓒ 그린나래 미디어(주)


아직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아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던 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누구와 결혼을 하고 아예 안 하게 될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던 때. 나와 친구들은 좁은 방에 모여 서로의 미래를 대신 점쳐주곤 했다. 너는 우리 중에 제일 먼저 결혼할 것 같아, 너는 특이한 생각을 잘하니까 방송 쪽에서 일하면 좋을 거야, 너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겠지!, 너도 아주 잘 될 거야!

아직 성공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패를 한 것도 아닌 시절에 나와 내 친구들은 열심히 서로의 앞길에 성공의 문을 열어주었다. 혹여나 본인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라도 친구들이 합심해 '넌 된다'고 윽박지르듯 강조하면 왠지 정말 다 잘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래도 아직 기대해볼 만한 내 인생이니까.

<프란시스 하>에서 서로 툭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는 '절친' 프란시스(그레타 거윅)와 소피(믹키 섬너)도 따로 침대가 있는데도 굳이 같은 침대를 이용하며 서로의 삶을 응원한다. 언젠가 우리 둘이 이 뉴욕을 접수할 것이고, 소피는 출판계 거물이, 프란시스는 최고의 현대 무용수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듯 주고받는다. 애인과 함께, 애는 없이, 대학 졸업식 연설자가 되는 핑크빛 상상. 하지만 영화에서 프란시스의 삶은 점점 핑크빛에서 멀어지고 만다.

이십 대 후반의 프란시스는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소피와 함께 살고 있었다. 무용단에 소속된 무용수이기는 하지만 정규 단원은 아니다. 사실 프란시스는 춤에 큰 자질이 없다. 하지만 아직 꿈을 놓지 못하고 있을 뿐. 남자 친구와는 얼마 전에 헤어졌고, 소피는 느닷없이 (평소에 그렇게 욕하던) 리사와 같이 산다고 나가고, 프란시스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얼른 살 곳을 구해야만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크리스마스 공연에서 제외되기까지 한다.

엉뚱한 매력을 폴폴 풍기는 그레타 거윅의 연기 때문에 프란시스의 상황이 왠지 크게 암울해 보이지 않긴 하지만, 그녀는 지금 확실히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월세를 마련하려면 영화 푯값도 아껴야 하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지도 궁리해봐야 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체성 혼란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무용단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춤은 추지 않는 댄서.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프란시스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설명하기 힘들어요."
"복잡한 일을 하고 있나요?"
"일을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그래도, 괜찮아

 프란시스는 댄서를 꿈꾸지만 이 꿈을 이루기는 요원해 보인다.

프란시스는 댄서를 꿈꾸지만 이 꿈을 이루기는 요원해 보인다. ⓒ 그린나래 미디어(주)


프란시스의 상황은 암울하지만, 영화가 무겁지 않은 건 프란시스의 대책 없는 행동 때문이기도 하다. 어렵게 손에 쥔 돈으로 부자 친구에게 한턱을 쏘고, 충동적으로 파리로 날아갔다가 그 돈을 메우느라 고생을 하고, 이제는 월세도 없어 대학 시절에도 이용하지 않던 대학교 기숙사로 비집고 들어갔지만, 프란시스는 어깨 한번 으쓱하고 만다. 그리고 프란스가 이럴 수 있는 건 분명 그녀가 아직 20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프란시스는 20대이다. 젊어서 20대이지만, 삶이 흐릿해서 20대이다. 꿈은 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능성은 있지만,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답답하고 속상하지만 아직은 친구들과 함께라면 잠시나마 신나게 웃을 수 있는 시기.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상 실패 쪽에 가까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막상 내 삶을 실패로 규정짓기에는 이른 나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흑백 영화처럼 불투명한 나이(그래서 감독은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었을까).

프란시스의 풀 네임은 프란시스 할라데이이다. 영화의 제목이 <프란시스 하>인 건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꿈과 현실 중간 즈음에서 타협점을 찾은 프란시스는 기숙사를 나와 월세 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때 종이에 이름을 써서 우편함에 꽂아 넣는다. 그런데 'FRANCES HALLADAY'가 너무 길어 어쩔 수 없이 종이를 접어 넣었는데 이때 남은 이름이 'FRANCES HA'였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영화의 제목을 <프란시스 할라데이>가 아닌 <프란시스 하>라고 지은 걸까. 온전한 이름이 아닌 완성되지 않은 이름을, 왜. 이에 대해서는 85분간 프란시스의 삶을 지켜봤던 사람들 각자가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내 머릿속에서도 추측성 해석 몇 개가 사이좋게 맴돌았다. 그런데 그런 거 다 떠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그냥 따뜻한 기분을 느꼈고 이 느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을 더는 추지 않게 된 프란시스는 미소 짓는 얼굴로 종이를 접어 우편함에 꽂았는데 이 일련의 동작이 마치 영화가 영화 밖에 사는 모든 프란시스들에게 '괜찮아'하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꿈을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러자 영화의 제목이 <프란시스 하>인 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보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프란시스 하 그레타 거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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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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