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패밀리> 포스터

<서바이벌 패밀리> 포스터 ⓒ <서바이벌 패밀리>


"정전이 되면 어떻게 될까."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야구치 감독이 휴대폰, 컴퓨터 등 전자기계와 친하지 않은 것이 출발점이었다. 2001년 영화 <워터보이즈> 완성 이후 이 같은 생각을 한 야구치 감독은 2003년 미국 동북부와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정전 사태를 보고 전기가 없는 배경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당시 기차 등이 멈춰버려 수많은 사람들이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정전만으로도 만들어진 도시의 풍경은 놀라웠다. 그러나 영화로 제작되기까진 오래 시간이 걸렸다. 플롯을 짜기 시작했지만 영화의 스케일이 너무 커 제작비 감당이 되지 않았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상처도 영화 제작 지연에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구상한지 10년이 넘어 어렵게 탄생한 이 작품은 6일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한국 관객들을 찾았다.

영화는 갑작스런 정전이 도시를 휩쓸면서 전개된다. 모든 것이 멈춘다. 뉴스는 볼 수 없고 이상하게도 시계마저 멈춰 시간조차 알 수 없다. 자동차와 지하철은 고물이 됐고, 마트의 계산대도 작동하지 않아 주판이 등장한다. 정전 첫 날, 시내가 온통 암흑이 된 덕분에 도쿄 밤하늘에서도 보이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가끔씩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아?"라는 아내(후카츠 에리)의 한 마디는 웃프다. 영화는 정전의 이유나 원인을 말하지 않는다. 재난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버지 스즈키 요시유키(코히나타 후미요)는 가족을 데리고 아내의 고향인 가고시마로 가기로 결정한다.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탓에 유일하게 전기가 없어도 작동하는 자전거를 타고 힘든 길을 떠난다. 

물과 음식이 부족하고 마땅히 잘 때도 없는 가족들의 피폐한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매우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야구치 표 영화 특유의 익살 덕분이다. 수족관의 생선을 잡아 재치있게 끼니를 해결하는 피난민들, 햅쌀을 명품시계가 아닌 술과 물물교환하는 쌀가게 주인, 시냇물을 먹은 탓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용변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아버지 등 작품 속의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대사들은 현실감 있으면서도 유쾌하다. 석탄재가 묻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웃는 장면은 익숙하다. 그러나 이 작품속에선 가장 순수한 풍경으로, 고난 속에서 피는 희망이다. 평소 소통단절의 가족이 재난을 겪으며 소중함을 깨닫는 부분은 진부하지만, 위기 속에서 가족만큼 단단한 울타리도 없음을 영화는 짚어준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물과 음식이 다 떨어졌을 때, 텅 빈 마트에서 자동차 배터리 보충액과 고양이 캔 사료를 우연히 발견해 먹는 장면은 야구치 감독이 영화 완성도를 위해 꼼꼼히 발품을 판 결과다.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를 답사하면서, 실제 재난 상황에서 쌀과 물, 빵 등이 모두 떨어졌을 때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고 직접 실험까지 해 이 같은 결과물을 얻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야구치 시노부 서바이벌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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