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포르노는 일본에서 가장 전통적인 영화사, 니카츠 스튜디오에서 1970년대에 들어 텔레비전이 유통되면서 불어 닥친 영화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 낸 장르다 ("야한 영화의정치학 4회: 살기 위해 만든 포르노 영화, 일본을 뒤흔들다" 참고). 니카츠로망 포르노 영화들은 80년대 초반에 비디오가 성행함과 동시에 쇠퇴하였지만, 10여년 기간의 황금기 동안 1100 편이 넘는 로망포르노 작품들이 제작되었고 그 중 다수가 대중뿐만 아니라 영화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2016년, 니카츠 스튜디오가과거의 영광을 기리기 위한 리부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소노 시온이나 하카타 히데오 같은 니카츠 영화들로 데뷔해 거장이 된 감독들이 참여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가 유의미한 것은 로망포르노의 기존의 제작 포맷을 따르되, 과거 로망 포르노가 남성 중심의 섹스신, 강간이나 납치 등의 가학 적인 소재들로 받았던 비판들을 극복할 수 있는 혁신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토미테 아미(왼쪽)와 이하타 주리.

토미테 아미(왼쪽)와 이하타 주리. ⓒ 오렌지옐로하임 영화사


리부트 프로젝트 중 두 편, 소노 시온 감독의 <안티 포르노> 와 시라이지 카즈야 감독의 <암고양이들>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미드나잇 시네마 부분에 선정되었다. <안티포르노>는 여성 아티스트, '쿄코'를 주인공으로,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주/조연배우들이 모두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본인들의 육체를 이용해 전위예술로, 그림으로, 예술 매체를 넘나들며 가부장 적인 제도에대한 신랄한 비판과 조소를 포효한다.

<암고양이들>은 세 명의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다룬 영화다. '성매매' 라는것을 제외하면 이들은 미혼모, 가정 주부, 집이 없어 피씨방을 전전하는 대학 졸업생 (마사코) 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노동자들이다. 영화는'섹스' 가 아닌 '육체노동' 에 포커스를 두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의 상처를 그린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위해 이 두 편의 영화의 주연 배우들이 내한했다. 토미테아미 (<안티 포르노>의 쿄코 역) 와 이하타 주리 (<암고양이들>의 마사코역) 와 로망 포르노,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성의 '성'과 로망포르노에 관하여

- 뜻 깊은 프로젝트에 참여하셨습니다. 70년대 오리지널 로망포르노들 중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요?
토미테아미 "<핑크 커튼>이라는 영화를 18살 때쯤 본 것 같아요. 어떤 경로로 봤는지는 기억이안나요 (웃음). 그 때는 로망 포르노라는 것을 모르고 봤는데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여성의 육체가 굉장히 아름답게 나와서 기억에 남습니다."

 배우 토미테 아미.

배우 토미테 아미. ⓒ 오렌지옐로하임 영화사


이하타주리 "<빨간 머리의 여자>라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남녀배우가 매우 멋졌던 기억이 나요. 에로틱한 영화지만 보면서 분위기가프랑스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줄거리가 독특하고요."

- 70년대 로망포르노 영화는 강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난무했었죠. 이번 리부트 영화들은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면서도 굉장히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들의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토미테아미 "<안티 포르노>에서 주인공인 '쿄코' 역을 맡았는데요. 연기하면서나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극중 역할이 여배우이기도 하구요. 여배우로살면서 느낀 점, 경험 했던 것을 '쿄코'가 상당 부분 대변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성차별은 아주 심합니다. 영화계도 그렇구요. 이 작품에서 쿄코는 끊임없이 남자들의 권위의식에 대한 비판을 던지고 도전하죠. 그런 면에서 매우 혁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하타주리 "<암고양이들>은 대부분의 콘셉트를 여성 스태프들이 고안했어요. 감독님이 남자분이긴 하지만, 여성 스태프들이 회의를 하고 컨셉을 디자인해서, 포스터도 노출 없이 여성을 위한 영화로 애초부터 만들자고 기획한 영화에요. 영화 안에서도 일본 사회에서 대부분의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여성의 고민'을 반영하려고 노력했고요. 제가 맡은 마사코는 여성이 도시에서 정착하는 데 겪을 수밖에 없는 외로움과 처절함 같은 것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 <암고양이들>은 로망 포르노 라기 보다 여성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그려진것 같아요. 같이 놀고 수다 떠는 일상 적인 신들도 많구요. 다른 두 명의 여배우들과 작업하는 것은 어땠나요?
이하타주리 "20대 전반, 20배 후반, 30대 초반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요. 시라이지 카즈야 감독은 이 캐릭터의 나이대와 딱 맞는 배우들을 캐스팅 했다고 들었어요. 그만큼 다양한 층의 여성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했다는 의도라고 생각이 들고요. 이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영화계에서 여배우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도 있지만, 나이대가 다양하다 보니 서로 갖는 고민도 좀 다르고. 영화도 같이 보러 다니고,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 두 영화가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아요. 일단 정해진 공간에서 영화가 전개 된다는 점이 그렇죠. <안티포르노>는 쿄코의 아파트에서, <암고양이들>은 도쿄 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지죠. <안티 포르노>의 경우, 아파트에서 쿄코의 독백으로 이루어지는 장면들이 많은데 엄청난 대사량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그리고 <암고양이들>에서 '도쿄' 라는 도시 공간을 무대 삼는 것은 어땠나요?
토미테아미 "영화에 출연하기 전에 주로 연극무대에서 공연했어요. 두시간 짜리 연극이 대부분이었죠. 그래서 긴 대사와 동작을 크게 하는 것이 익숙해요. 특히 소노 시온 감독은 배우가 몸을 쓰는 것을 북돋는 편이에요. 중간에 대사를 좀 틀려도 감독님은 그냥 사용했어요. 그래서 저도 동작을 크게 하고 최대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즉흥적으로 하려고 노력했어요."

이하타주리 "도쿄에서도 이케부쿠로에서 대부분을 촬영했는데요. 도쿄는 크지만 외로운 도시에요. 마사코는 그런 공간에서 방황하는 길고양이 같은 여자에요. 저는 초등학생 이후로 가족들과 거리를 두고 살았어요. 제가 아역배우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제가 해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독립성'을 강요 받는 일도 많았죠. 그럴 때 느꼈던 화려함 이면의 외로움을 이 영화에서 녹여내려고 노력했어요. 도쿄도 그런 공간이잖아요. 화려하지만 외로운 곳."

 배우 이하타 주리.

배우 이하타 주리. ⓒ 오렌지옐로하임 영화사


- 아무래도 여배우들이니, 일본영화가 그리는 여성에 대한 경향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해요. 물론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때때로 그 영화 안에서 등장하는 여성은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종종 가집니다. 예컨대, 아직도 여성 캐릭터는 희생적인 엄마, 시한부 여성, 남자들에게 이용당하는 여성 등으로 제한적인 것 같아요. 본인들이 정말 맡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토미테아미 "매우 공감합니다. 최근 일본 영화는 참 '부자연스럽다'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제가 제작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영화가 기획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영화는 그냥 큰 텔레비전 같다는 생각을 해요. 기존 텔레비전 드라마에 있던 캐릭터에 영화적 요소만 몇 개 넣어서 판만 키운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이하타주리 "일본 영화는 활력이 없어요. 인기배우만 쓰려고 하고, 도전하기를 꺼려하죠.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들이 그리워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이창동 감독과 양익준 감독을 좋아해요. 앞으로는 코미디 장르를 하고 싶기도 하고요. 오타쿠 역할을 맡고 싶기도 하구요."

-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아무래도 로망포르노 작품으로 영화제에 오셨으니 섹스신에 대한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맡으신 로망 포르노 리부트 영화들이 굉장한 진보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에서 등장하는 '성'은 결국 남자의 '성'이고 그들의 욕망을 반영합니다. 본인들이 해보고 싶은 섹스신이 있나요?
토미테아미 "저는 제가 주인공이 되어 다수의 남성 캐릭터와 출연하는 섹스신을 해보고 싶어요(일동 웃음). 한 1대 100? (웃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하타주리 "저는 <암고양이들> 여성들은 주체 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들을 품은 거지 우리가 남성에게 안긴 것이 아니죠. <암고양이들>에서도 제 상대 남자배우가 너무 소심해서 제가 더 적극적으로 연기했거든요. 저는 귀엽고, 경쾌한 섹스신을 해보고 싶어요. 여성이 주체가 되어 모션도 크게 하고요. 다음에 한국의 영화제에는 코미디 영화로 오고 싶어요."

사람들이 로망 포르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이 작품들을 포르노 영화로 인식 한다는 것이다. 로망 포르노는 불황을 맞은 영화판을 떠날 수 없었던 아티스트들의 플랫폼이자 아름다운 습작들이었다. 그러한 장르가 이젠 장인이 된 영화 감독들과 주체적이고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협업으로 재탄생 되었다. 5월 개봉을 맞은 이 영화들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토미테 아미/ 이하타 주리 투 샷

토미테 아미(왼쪽)와 이하타 주리. ⓒ 오렌지옐로하임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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