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으로 <서편제>(1993)를 꼽을 것이다. <서편제>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적 커리어의 거대한 방점을 찍어준 작품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실 그는 이미 <서편제> 전에 100편이 넘는 영화를 감독했고 이 가운데, 현재 임권택의 찬란한 필모그래피의 초석이 되는 작품들이 혼재한다.

조감독으로 시작해 그가 본인의 이름을 오롯이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필두로 한다. 그리고 80년대에 들어 <티켓>, <씨받이>, <길소뜸> 같은 작품으로 그의 눈부신 행보가 이어진다.

임권택 감독의 이 작품들 뒤에는 또 다른 명장이 있는데, 바로 작가 송길한이다. 송길한은 1980년 작, <짝코>를 첫 작품으로 임권택과 협업을 시작해 총 10편의 영화 (미완성 작, <비구니> 포함)를 함께 했다. 그리고 그들은 세대를 이어나갈 한국 영화사의 유산들을 함께 빚어냈다. 올해 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송길한 작가의 특별전이 열렸다. 그가 임권택 감독과 만들어 낸 총 9작품이 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여기서 소개할 작품은 <짝코> 다.

막강한 서사와 상징

 송길한 작가

송길한 작가 ⓒ 전주국제영화제


<짝코>는 6.25 전쟁과 그로부터 30년 후를 배경으로 쫓는 남자 송기열 경사, 그리고 쫓기는 남자, 백공산의 이야기를 두 주인공 시점으로 그린다. 송 경사는 전쟁 중 체포한 빨치산이자 양민 학살범인 백공산을 상부로 호송하던 중 놓치고 만다. 일부러 놓아준 것으로 오해를 받은 그는 경사 직을 박탈당한다. 또한 남편의 결백을 믿지 못한 송 경사의 아내는 자살하고 아들은 병으로 죽게 되면서 송 경사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휴전 이후로도 백공산을 추적한다.

영화는 30년 후 절름발이 노숙자가 된 송 경사가 갱생원에서, '짝코 (코가 짝짝이라서 백공산에게 붙여진 별명)'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수 십 년이 흐른 후에야 이 '죽일 놈'을 만나게 된 송경사는 그를 위협해 갱생원에서 탈출해 고향으로 가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천신만고 끝에 그들은 탈출하여 기차를 타지만, 이미 당뇨 합병증으로 죽어가고 있던 백공산은 기차 안에서 죽고, 송 경사는 실성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막강한 서사도 놀랍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가 30년 동안 이어졌던 추적과 도망의 과정을 현재와 과거를 쉴 새 없이 넘나들면서도 시제의 전복에서 오는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원작 스토리의 시제 전복/변환을 영화적인 장치와 상징으로 완벽하게 병치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가장 분명한 예로, 송경사가 쓰고 등장하는 안경 (현재) 과 선글래스 (과거) 의 사용을 언급하고 싶다. 과거의 경찰, 송 경사는 늘 '라이방 (레이밴 브랜드를 칭하는 옛날 말)' 선글라스를 쓰고 다닌다. 그는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으며 승진에 대한 야망도 크다. 직업의 표식 같은 이 선글라스를 송 경사는 고향 가는 길에도 벗지 않을 정도로 집착 한다. 오랜만에 집에 도착한 그에게 아내는 "선글라스 좀 벗어요. 그러니까 아이가 못 알아 보잖아요" 하며 웃음 섞인 핀잔을 줄 정도다. 그런 그가 선글라스를 벗게 되는 시점은, 아내가 자살로 죽었을 때와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친척에게 전해 들었을 때이다. 선글라스는 송 경사가 누렸던 권력의 상징이고 그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라이방 선글라스도 같이 '퇴위' 하게 되는 것이다.

 선글래스

선글래스 ⓒ 한국영상자료원


현재 시제의 노숙자 송경사는 안경을 쓰고 다닌다. 권력이 사라진 그의 눈을 덮고 있는 것은 추적의 눈이고 감시의 눈인, 안경이다. 그는 갱생원에서도 잠도 자지 않고 짝코를 감시한다. 짝코가 잠결에라도 송경사가 있는 쪽을 바라 볼 때면 언제나 암흑 속에 그를 주시하고 있는 눈, 안경이 허공에 떠 있는 채 짝코를 마주 하고 있다.

 안경

안경 ⓒ 한국영상자료원


현재에서 과거로, 혹은 과거에서 현재로의 이행이 일어날 때, 안경과 선글라스는 오버랩 되며 치환된다. <짝코> 처럼 사물이나 이미지를 매개 삼아 플래쉬 백이나 플래쉬 포워드를 보여주었던 선례들이 없지 않으나 당시 한국 작품으로는 보기 드문 테크닉으로 여겨진다. 시제를 교환하는 천재적이고 미학적인 영화적 테크닉이 아닐 수 없다.

감정들의 중첩

아울러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이 드러내는 증오와 연민의 교차다. 안경과 선글래스처럼, 흑백의 극단적 감정들이 끊임 없이 중첩된다. 특히 짝코 라는 인물에 대해 영화는 양가적 시선을 보인다. 짝코는 양민을 학살한 인물이지만, 자신이 산에서 버렸던 옛 연인을 늙어서도 책임질 정도의 순정이 있는 인물이다. 또한 그녀도 병들어 살기가 힘드니 같이 자살하자고 제안했을 때 "당신의 뜻이라면 나도 따라가겠노라"며 같이 쥐약을 마시기도 한다 (쥐약의 부작용으로 그는 당뇨병에 걸린다).

짝코에 대한 연민은 송 경사를 통해서도 보여진다. 가령, 송 경사는 짝코가 식사를 거부 할 때 2주에 한번만 나온다는 계란을 몰래 갖다 주며 같이 탈출해야 하니 기운을 잃으면 안 된다고 당부한다. 물론 이러한 언행들이 결국엔 짝코를 데리고 나가 본인의 누명을 벗고 짝코를 심판대에 올리겠다는 집착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으나, 계란을 쥐어 준다거나 몸이 불편한 짝코를 보조하며 탈출하는 과정은 송경사가 짝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증오의 이면이 연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송 경사는 결국 복수의 한을 풀지 못한다. 이미 (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짝코는 송 경사의 고향까지 가지 못한 채 기차에서 숨을 거두고, 송 경사는 미치광이가 되어 실소하며 창문을 바라본다. 영화의 결말에 대해 송길한 작가는 이들이 타는 기차가 이들의 고향인 전라도 행이 아닌, 북향이라고 언급하며 "사실 기차가 어디로 가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어차피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미쳤으니 그 기차의 종착역은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체제 앞에서 무의미했던 인간

 송길한 짝코 마스터 클래스

송길한 짝코 마스터 클래스 ⓒ 김효정


그렇다면 <짝코>는 무엇에 관한 영화인가.

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시기에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송길한은 당시 체제 앞에서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에 대해서 생각했다고 말했다. 6.25 당시 낮에는 공산당에게, 밤에는 국군에게 생명의 추가 넘어가는 일상을 보냈던 한국인들의 삶은 <짝코>에서 증오와 연민의 양극단으로, 그리고 그 미약한 경계로 힘겹고 절절하게 그려져 있다.

대가는 아름답다. 그러나 대가들의 협업은 고귀하다. 임권택, 송길한이 보여준 이야기와 이미지의 콜라쥬가 그 자체로 역사가 된 작품, <짝코>가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더 많은 이들의 가슴에 간직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작품 편수 및 이력은 전주국제영화제 송길한 특별전 자료집을, 송길한 작가의 코멘트는 전주국제영화제 '짝코: 마스터 클래스'에서 답변한 것을 참고했습니다.
송길한 임권택 짝코 분단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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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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