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워즈 히어:살인 마을 <샘 워즈 히어:살인 마을>

<샘 워즈 히어:살인 마을> ⓒ 엔케이컨텐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캘리포니아의 어느 곳. 평범한 가정판매원 샘(러스티 조이너 분)은 상사에게 "사람도 안 보이고 상점 역시 문을 닫았으니 돌아가겠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딸의 생일을 위해 LA로 발길을 돌린다. 지나치는 마을에서 사람을 찾을 수 없고 아내도 전화를 받질 않는다. 인적이 끊긴 상태에서 유일한 사람의 목소리는 라디오 프로그램 <에디의 울분의 수다쇼>의 에디(시그리드 라 샤펠 분) 음성뿐이다. 그런데 에디의 방송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샘에게 이상한 일이 하나둘 벌어지기 시작한다. 하늘엔 붉은색을 띤 이상한 광선이 보인다.

<샘 워즈 히어: 살인 마을>은 사람이 모두 사라진 동네를 통과하는 샘의 기이한 여정을 다룬다. 현재 상황은 에디의 목소리를 통해 하나씩 밝혀진다. 에디는 요즘 마을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고 알려주고, 경찰의 음성을 빌려 도주 중인 범인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다고 말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호출기에 보낸 욕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샘은 가면을 쓴 경찰이 가한 총격을 받은 뒤에야 자신이 범인으로 몰린 걸 깨닫는다. 여기서 "샘은 왜 핸드폰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가?"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프 데루 감독은 "영화 속 설정은 1990년대로 잡았고 휴대폰이 존재하면 전개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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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워즈 히어:살인 마을> ⓒ 엔케이컨텐츠


가면을 쓴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는 환경,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고립된 존재. 샘은 진짜 범인인가? 아니면 오해를 받는 것인가? 영화는 의문점들을 잔뜩 던져놓으나 명쾌한 해답을 내놓질 않는다. 영문 모를 상황과 기괴한 이미지를 나열하는 통에 명확한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관객은 개연성을 탓할 공산이 크다.

크리스토프 데루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연출자로 존 카펜터와 데이빗 린치를 꼽은 바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샘 워즈 히어: 살인 마을>은 마치 <매드니스>와 <로스트 하이웨이> 사이에 위치한 느낌이 강하다. 조금 데이빗 린치의 난해함에 가깝긴 하다.

<샘 워즈 히어: 살인 마을>은 크리스토프 데루 감독이 프랑스에서 만든 단편 영화 2013년 작품 <폴라리스>를 기초로 삼았다. 그리고 <샘 워즈 히어:살 인 마을>의 프랑스 개봉 제목은 <네메시스>다.

"샘은 여기 있었다"라는 과거형 제목은 흘러간 시간과 샘이란 존재에 주목한다. 또한, 흔적을 언급하며 추적하라는 느낌도 가진다. '폴라시스'는 북극성을 의미한다. 예전에 북극성은 항해의 길잡이 역할을 맡았다. '네메시스'는 복수의 여신을 뜻하는 단어다. <샘 워즈 히어: 살인 마을> <폴라시스> <네메시스>는 모두 영화를 읽는 단서로 작용한다.

에디는 의문을 푸는 또 다른 열쇠다. 샘과 에디는 동일 관계일 수도 있고 대립 관계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샘 워즈 히어: 살인 마을>은 살인마가 샘과 에디란 분열된 자아를 이용하여 기억을 왜곡하거나 파편적인 상태로 출력한 '범죄의 재구성'처럼 느껴진다. 샘과 에디가 내면에 대립하는 선과 악을 은유한다고 보아도 흥미롭다. 그렇다면 영화는 선악의 대립이 혼돈을 빚으며 편집증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복기한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샘 워즈 히어:살인 마을 <샘 워즈 히어:살인 마을>

<샘 워즈 히어:살인 마을> ⓒ 엔케이컨텐츠


에디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해석의 중심에 놓으면 <샘 워즈 히어: 살인 마을>은 단죄 또는 집단의 광기로 해석할 수 있다. 샘의 주위는 온통 그를 죽이려는 살기로 들끓는다. 에디는 샘 같은 놈들로 인해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고 외치며 청취자들에게 빨리 그를 잡으라고 선동한다.

먼저 단죄로 보면 샘에게 벌어지는 일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자가 응당 받을 처벌이고 마을은 빠져나갈 수 없는 울타리다. 에디는 초월적인 심판자나 마찬가지다. 그는 붉은빛을 내며 샘을 보거나 뒤쫓는다.

집단의 광기로 읽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샘의 진범 여부는 중요치 않다. 오로지 희생양이 필요할 따름이다. 이것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인터넷에서 행해지는 마녀사냥을 연상케 한다. 샘을 따라다니는 붉은 광선은 광기와 증오를 상징하는 색깔인 셈이다. 이들의 모습은 <디시에르토>가 그랬던 것처럼 적개심으로 팽배한 미국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집단의 광기로 물든 영화 속 풍경은 오늘날 세계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샘 워즈 히어: 살인 마을>은 <매드니스><로스트 하이웨이>만큼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해석과 이미지의 기묘함을 가졌다. 해석과 이미지의 재미가 점차 사라지는 시대이기에 <샘 워즈 히어: 살인 마을>의 등장이 더욱 반갑다.

샘 워즈 히어:살인 마을 <샘 워즈 히어:살인 마을>

<샘 워즈 히어:살인 마을> ⓒ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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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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