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3연패의 늪에서 탈출하며 하루 만에 5할 승률에 복귀했다.

조원우 감독이 이끄는 롯데 자이언츠는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장단 11안타를 터트리며 6-0으로 완승을 거뒀다. 11일 만에 1군으로 돌아온 롯데 선발 김원중은 6이닝 4피안타 5탈삼진 무사사구 무실점 호투로 복귀전에서 시즌 두 번째 승리를 챙겼다.

이날 경기가 열리기 전 잠실 야구장에서는 두산팬들에게도, 롯데팬들에게도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지난 1999년 데뷔해 두산 유니폼을 입고 14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4년 동안 활약했던 '오버맨' 홍성흔의 은퇴식이 열린 것이다. 현역 시절 포수로 두 번, 지명타자로 네 번이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홍성흔은 이날 잠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2만5000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18년의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포수로도 지명타자로도 언제나 제 몫을 해내던 강타자

 두산 홍성흔이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7 KBO리그 두산과 롯데 경기에 앞서 열린 은퇴식에서 홈플레이트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두산 홍성흔이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7 KBO리그 두산과 롯데 경기에 앞서 열린 은퇴식에서 홈플레이트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희대 시절부터 뛰어난 공격력을 가진 포수로 각광을 받았던 홍성흔은 1999년 두산의 1차 지명을 받았다. 홍성흔은 '10년에 한 번씩 나오는 재능의 포수'라는 평가 받았던 선배 진갑용(은퇴)을 제치고 루키 시즌부터 두산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입단 첫 해 111경기에 출전해 타율 .258 16홈런 63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한 홍성흔은 꾸준히 두산의 주전 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2001년에는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다.

대학시절에 출전했던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건 홍성흔의 첫 전성기는 2004년이었다. 홍성흔은 그 해 전 경기에 출전하며 타율 .329 14홈런86타점으로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와 최다안타 타이틀을 차지했다.당시만 해도 홍성흔은 박경완의 뒤를 잇는 KBO리그 대표 포수로 거칠 것이 없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홍성흔에게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2007년. 홍성흔은 갑자기 수비 능력이 급격히 저하됐는데 당시 두산을 이끌던 포수 출신의 김경문 감독(NC 다이노스)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결국 홍성흔은 2007시즌 중반부터 후배 채상병(은퇴)에게 주전 마스크를 내주고 지명 타자로 출전하는 경기가 늘기 시작했다(훗날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밝힌 바로는 원하는 지점에 공을 던질 수 없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홍성흔은 2008 시즌부터 포수 마스크를 완전히 벗고 지명 타자로 변신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홍성흔의 야구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홍성흔은 2008년 114경기에 출전해 타율 .331로 팀 후배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이어 타율 2위에 오르며 변신에 성공했다. 포수로서의 가치가 완전히 떨어졌다고 평가 받은 홍성흔이 4년30억 원이라는 좋은 조건에 롯데로 이적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홍성흔은 두산 유니폼을 입었던 2008년을 시작으로 3년 연속 타율 2위에 오르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홍성흔은 롯데 유니폼을 입은 후 첫 3년 동안 3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며 4년 연속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무엇보다 롯데는 홍성흔이 롯데에서 활약한 4년 동안 한 번도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비록 더 이상 수비는 할 수 없었지만 홍성흔 특유의 파이팅과 근성은 여전했다.

통산 병살타 1위지만 넘치는 근성으로 사랑 받은 '오버맨'

 두산 홍성흔이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7 KBO리그 두산과 롯데 경기에 앞서 열린 은퇴식에서 기념품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산 홍성흔이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7 KBO리그 두산과 롯데 경기에 앞서 열린 은퇴식에서 기념품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2 시즌이 끝나고 생애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홍성흔은 4년31억 원의 조건으로 친정팀 두산에 컴백했다. 롯데로 이적할 때(4년30억)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두산에 복귀하자마자 주장에 임명된 홍성흔은 컴백 첫 해 타율 .299 15홈런 72타점으로 팀의 준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2014년에는 타율 .315 20홈런82타점으로 팀 내 최다 홈런을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지명 타자 변신 후 7년 동안 5번의 3할 타율과 5번의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한 홍성흔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였다. 홍성흔은 2015년 93경기에 출전해 타율 .262 7홈런46타점에 그치며 지명 타자 변신 후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 6월14일 NC전에서는 KBO리그 역대 최초로 우타자 2000안타의 주인공이 됐지만 팬들은 2000안타보다 200병살과 1000삼진 기록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작년 시즌에는 오재일이 1루수, 닉 에반스가 지명 타자로 자리를 잡으면서 1군 무대에서 완전히 자리를 잃고 말았다. 결국 홍성흔은 작년 시즌 1군에서 17경기에 출전해 타율 .250 5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홍성흔과의 계약기간이 끝난 두산은 그에게 플레잉 코치와 조건 없는 방출 등을 선택할 수 있게 제의했지만 홍성흔은 깨끗한 현역 은퇴를 선택했다.

사실 홍성흔은 현역 시절 팬들에게 받았던 많은 사랑만큼 비판도 많이 받았던 선수다(특히 홍성흔에 대한 비판은 선수 생활 말년에 집중됐다). 실제로 홍성흔은 두산 복귀 후 주전으로 활약한 2년(2013~2014년) 동안 희생플라이가 단 4개에 그쳤다. 같은 기간 김현수가 희생플라이 17개, 민병헌이 13개였다는 점을 보면 홍성흔이 얼마나 '영웅스윙'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홍성흔은 통산 병살타 순위에서 230개로 독보적인 1위에 올라 있다.

그럼에도 홍성흔이 2000년대 두산과 롯데의 찬란했던 시절을 더욱 빛나게 만든 슈퍼스타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통산 10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중에 통산 타율 3할을 넘긴 15명 중에 한 명인 홍성흔은 역대 최다안타 5위(2046개), 타점 6위(1120개)에 올라 있는 KBO리그의 전설이다. 올 시즌부터 마이너리그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는 홍성흔이 훗날 어떤 모습으로 야구팬들 앞에 나타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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