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결정전이 한창 진행중인 남자프로농구(KBL)와는 달리 여자농구는 지난 3월 20일 모든 일정을 마감하고 휴식기에 들어갔다. FA시장에서 우리은행 위비가 국가대표 출신 포워드 김정은을 영입하고 KEB하나은행에서 보상선수로 김단비를 지명한 것과 삼성생명 박소영과 신한은행 신재영의 트레이드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은 비교적 조용한 비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지난 26일 대한농구협회 홈페이지에 공지사항 하나가 올라왔다. 오는 7월 인도 방갈로르에서 열리는 2017 FIBA 여자농구 아시안컵 대표팀을 이끌 감독 공개 모집이었다. 축구나 야구처럼 기술위원회를 열어 후보군을 선정하고 감독 내정자와 미리 계약을 체결해 결과를 발표하는 형식에 익숙해 있던 스포츠팬들에게는 다소 낯선 방식이다. 하지만 대한농구협회는 작년 남자 대표팀도 같은 형식으로 허재 감독을 선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 공개 모집 내용을 보면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다. 바로 단 57일(6월5일~7월31일)에 불과한 계약기간이다. 이번에 선정되는 감독은 아시안컵이 열리는 기간 동안만 대표팀을 이끌게 된다. 여자농구의 오랜 숙원이었던 전임 감독을 정하는 데 계약 기간이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단기 알바'를 뽑는 셈이다.

4년간 소속팀과 대표팀을 병행하던 위성우 감독의 혹사

 20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삼성생명 2016~2017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아산 우리은행 위비 선수들이 위성우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지난 3월 20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삼성생명 2016~2017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아산 우리은행 위비 선수들이 위성우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여자농구는 지난 2013년 5월부터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겼다. 2012-2013 시즌 약체로 평가 받은 우리은행을 WKBL 통합우승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이후에도 점점 성적이 좋아졌고 위성우 감독은 '우승팀 감독'이라는 이유로 무려 4년이나 대표팀을 이끌었다.

위성우 감독이 대표팀을 이끄는 동안 이룬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부임 후 가장 먼저 출전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일본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며 2014년 농구월드컵 출전 티켓을 따냈다. 특히 준결승에서 영원한 난적으로 여겨지던 중국에게 71-66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20년 만에 한국 여자농구 금메달을 견인하기도 했다.

사실 중국과 일본이 비슷한 시기에 열린 농구월드컵에 정예 멤버를 보내면서 아시안게임에 2진을 보냈기 때문에 한국은 두 숙적과 진검승부를 벌이진 못했다(한국은 반대로 농구월드컵에 2진을 보냈다). 물론 대회 규모는 농구 월드컵이 훨씬 크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자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소홀히 할 수 없었고 결국 성적이 보장되지 않은 농구 월드컵 대신 아시안게임 올인을 선택했다.

하지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강행군을 펼친 위성우 감독에게도 한계가 찾아왔다. 위성우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2015-2016 시즌 직전에 열린 2015 아시아컵에서 리우 올림픽 티켓을 따지 못했고 2015-2016 시즌 직후에 열린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도 리우행 티켓을 따내는 데 실패했다. 대표팀 감독이기도 하지만 우리은행 감독이기도 한 위성우 감독은 대표팀에만 모든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8강에 진출하며 올림픽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여자농구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어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도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에 젊은 선수들 위주로 세대교체에 성공한 일본은 리우 올림픽에서 8강에 진출하며 세계 무대에 가까이 다가갔다. 한국 여자농구에도 전임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세대교체 '골든타임' 놓치고 아시아 2류로 밀려나려 하나

한국 여자농구는 최근 이미선, 변연하, 신정자, 하은주, 최윤아, 양지희 등 2000년대 중후반을 호령하던 선수들이 대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노장 선수에 대한 의존이 심했던 한국에게는 경쟁력 약화의 위기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세대교체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마침 박혜진(우리은행), 김단비(신한은행), 강아정(KB스타즈), 강이슬(하나은행) 등 90년대생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무르익었고 박지수(KB)라는 거물 신인도 등장했다.

하지만 대한농구협회와 한국여자농구연맹은 이렇게 좋은 조건을 활용할 생각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이미 시기가 많이 늦은 데다가 계약기간마저 아시아컵 기간으로 한정해 버리면 어떤 감독이 선발되더라도 의욕이 생길 리 만무하다. 협회의 예산과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대표팀 전임 감독이라는 중요한 자리를 57일짜리 '인턴'으로 뽑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7월에 인도에서 열리는 아시아컵은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해도 될 만큼 작은 대회가 아니다. 아시아 여자농구 최강을 가린다는 중요한 명분 외에도 이 대회에서 4위 안에 들어가면 2019년 중국에서 열리는 농구 월드컵 본선에 출전할 수 있다. 호주, 일본, 중국 등 한국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는 팀들이 대거 참가하는 만큼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월드컵 출전의 꿈은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여자농구가 전임감독을 선정한다고 했을 때 농구팬들은 프로팀을 이끌었던 여러 감독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좋은 지도자가 선정돼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게 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이 57일짜리 '단기알바'에 선뜻 지원을 할지도 미지수다. 모든 종목이 마찬가지지만 일단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장 먼저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되는 자리가 바로 감독이기 때문이다.

국제대회가 흔치 않은 여자농구에서 긴 계약기간을 보장하는 전임감독을 선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종목이든 대표팀은 언제나 최상의 전력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긴 안목으로 선수들을 관리, 감독하는 전임 감독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 무대에서도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뽐내던 여자농구가 아시아 무대에서도 중위권으로 밀려나는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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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농구협회 전임감독 2017 아시아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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