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폴루닌

세르게이 폴루닌 ⓒ (주)엣나인필름




로열 발레단 역대 최연소 수석무용수로 발탁

세르게이 폴루닌은 1989년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도시의 가난한 가정 출신인 세르게이는 어렸을 때부터 춤에 재능을 보인다. 10살이 되던 해 고향을 떠나 우크라이나 키예프 안무 학교에 입학한다. 할머니는 그리스로, 아버지는 포르투갈로 세르게이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떠난다. 세르게이는 회상한다. "행복했던 시절은 이때 끝난 거예요"라고.

키예프 안무 학교에서도 두각을 보인 세르게이는 엄마의 판단으로 영국 로열 발레 학교 오디션에 응한다. 2003년, 14살의 아이는 홀로 영국 생활을 시작한다. 동기들보다 두 배는 더 연습하며 최고의 댄서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세르게이가 춤추는 목표는 가족을 다시 모이게 하는 것. 하지만 15살에 부모는 이혼하고 가족은 붕괴된다. 큰 상처를 받은 세르게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을 마음에 품지 않기로 했어요. 추억 같은 건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목표를 잃은 세르게이는 마음을 닫은 채 더 치열하게 연습에 몰두한다. 동기들보다 몇 년을 앞서 나가며 17살에 로열 발레단에 입단한다. 비범한 재능과 혹독한 자기 관리 그리고 최고를 향한 열망으로 세르게이는 발레단에 입단한 지 1년 만에 솔리스트가 된다. 그리고 그 이듬해 로열 발레단 역대 최연소 수석무용수로 발탁된다.

 세르게이 폴루닌

세르게이 폴루닌 ⓒ (주)엣나인필름


세계 최고 댄서는 왜 불행했을까

<댄서>는 현재 진행형 댄서 세르게이 폴루닌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짐승'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큰 사랑을 받던 최고의 발레 댄서 세르게이는 수석무용수가 된 지 2년 만인 23살에 발레단에서 스스로 나온다. 영국은 대스타의 일탈에 여러 가지 추측을 쏟아놓았지만 세르게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르게이의 로열 발레 학교 동기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한다. "세르게이는 고작 20대였어요."

영상은 '어떻게'와 '왜'를 좇는다. 세르게이라는 천재가 '어떻게' 재능을 발굴해 최고에 이르게 됐고, '왜' 최고일 때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오게 됐는지. 영상이 추적한 건 예술가의 재능이 아닌 재능의 이면이었다. '신이 내린' 재능 뒤, 보이지 않는 곳에 놓여 있는 건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며 상처받은 마음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었다.

"제가 춤을 선택한 게 아니에요. 엄마가 선택한 거예요."

영상에는 어린 나이에 발굴된 재능 때문에 다른 많은 걸 포기해야 했던 아이가 있다. 춤에 열정은 잃어갔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어 계속 춤을 춰야 했던 아이가 있다. 재능을 갈고닦자 돌아온 건 행복이 아닌 불행이었고, 그래서 폭발하고만 고통받는 춤꾼이 있다. 무대 위에서는 압도적인 춤을 펼치는 주인공이지만 춤을 추는 이외의 시간에는 길을 잃고 헤매는 남자가 있다. "나는 왜 춤을 추지?"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세계 최고 댄서가 있다. "잘 추니까."

춤을 출 때면 분노와 피로함이 몰려오곤 해 감정을 추스르려 노력해야만 했다는 댄서의 무대 뒷모습은 처절할 만큼 고통스러워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잔뜩 긴장한 채 아픈 몸을 쉬게 할 때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높고 길게 점프할 때도 그는 불행하기만 했을까. 세르게이는 말한다. "하늘에 떠 있는 그 몇 초. 그 몇 초가 춤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줘요." 또 말한다. "발레는 제 자신이죠."

▲ Sergei Polunin, 'Take Me to Church' 세르게이는 이 영상을 찍고 더는 춤을 안 추려고 했다. 마지막 인사였던 셈. 하지만 그의 이 영상은 오히려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그를 다시 무대에 세운다. ⓒ 유투브


<댄서>는 세르게이가 제 삶에 찍은 마침표와 같다. 화려하지만 불행했던 과거에 마침표를 찍고 더 자유롭고 행복한 미래로 나아가려는 몸짓과도 같다. 그는 춤을 완전히 그만두려고 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두는 방법이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춤사위였던 걸 보면, 그는 정말 그만두려고 했던 건 아닌지도 모른다. 팸플릿에는 홍보 문구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제 당신은 세르게이 폴루닌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나이로도 아직 20대인 천재 댄서의 춤을 보고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을 것 같다. 이 다큐멘터리의 최고 '셀링 포인트'를 찾자면 당연하게도 영상 곳곳에 배치된 세르게이 폴루닌의 춤이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춤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보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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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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