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엽 신임 창원 LG 감독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기승호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현주엽 신임 창원 LG 감독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기승호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1990년대 한국농구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농구대잔치 세대'의 주역들이 이제 어느덧 지도자로 변신하며 농구인생의 2막을 열고 있다.

프로농구는 국내 다른 종목들과 비교해도 감독들의 연령대가 젊은 편이다. 종전 최고령이던 김진(56) 전 LG 감독이 물러나며 63년생 동갑인 유재학 모비스-추일승 오리온 감독이 나란히 최고령 감독이 됐다. 10개 구단 중 무려 7개 구단이 사령탑의 연령대가 40대 이하이고 이중 6명이 70년대생일 만큼 젊은 감독들의 득세가 뚜렷하다.

추일승-유재학 감독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농구대잔치 시대를 거쳐 프로 출범 초기에 현역으로 활약했던 인물들이다. 이상민 삼성 감독, 문경은 SK 감독, 추승균 KCC 감독, 현주엽 LG 감독 등은 모두 한국농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슈퍼스타 출신이기도 하다. 90년대 혈기왕성하던 오빠부대의 주역들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아재'가 됐고 이제는 다시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한 중년이 되었다는 것은 팬들에게도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다.

가장 성공한 스타 출신 지도자, 허재

 2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에서 한국 허재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2016.8.29

지난 2016년 8월 2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에서 한국 허재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에는 스타 출신 지도자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낡은 선입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KBL에서 스타 출신 감독의 성공사례로 한 획을 그은 인물이 바로 허재 전 KCC 감독(현 농구대표팀)이다.

현역 시절부터 '농구대통령'이라는 수식어로 불렸던 허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될 만한 경력을 개척했다. 허감독은 2003-04시즌 TG(현 원주 동부)를 끝으로 은퇴한 이후 약 1년여만인 2005년 일약 KCC의 2대 감독으로 전격 부임했다. 유명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며 코치직을 거치고 않고 감독으로 부임했다는 점에서 현주엽 LG 신임감독과도 비교될 만한 사례다.

당시 40대 초반의 허 감독은 파격적인 등장만큼이나 프로농구에 본격적으로 젊은 감독 열풍을 일으키는 출발점이 됐다.허 감독은 2년차인 2006-07시즌 최하위에 그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험 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결국  2009년과 2011년 KCC를 두 번이나 정상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KBL 역사상 프로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을 차지해본 인물은 지금까지 허재 감독이 유일하다.

말년에는 성적 부진으로 다소 불명예스럽게 자진 사임했지만 그래도 허 감독은 2015년까지 무려 10년이나 KCC를 이끌며 성공적인 '장수 감독'으로 남았다. 한 팀에서 지휘봉을 잡은 기간으로는 유재학 모비스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기록이었다.

허 감독의 성공사례 이후 젊은 감독들의 등장이 활발해졌다. 허 감독의 뒤를 이어 KCC의 지휘봉을 잡은 추승균 감독을 비롯하여 이상민 삼성 감독, 김영만 전 동부 감독, 문경은 SK 감독, 김승기 KGC 감독, 조동현 KT 감독 등이 모두 40대 초중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감독직을 맡았다.

 지난 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4쿼터 이상민 삼성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다가 뒤돌아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4쿼터 이상민 삼성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다가 뒤돌아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추승균-이상민-문경은-조동현-현주엽 감독 등은 모두 현역 시절을 보낸 친정팀의 지휘봉을 잡은 사례다. 이들은 현역 은퇴 이후 2~3년 이내의 짧은 코치 경력을 거쳐 감독으로 고속 승진까지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았다.

경험부족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 젊은 감독들이 올린 성과는 무시할 수 없다. 문경은 감독과 추승균 감독은 각각 소속팀을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진출로 이끌었다. 이상민 감독도 올해 삼성을 8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들은 현역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의 생리와 구단 내부 사정에 밝다는 장점이 있었고 선수단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공감을 통한 '형님 리더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젊은 감독 전성시대, 꼴찌 경험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젊은 감독들의 득세가 반드시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경은 감독이 이끄는 SK는 애런 헤인즈가 떠난 이후 여전히 나쁘지 않은 선수구성에도 최근 2년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올시즌 잦은 역전패로 문 감독의 리더십과 경기운영 능력이 혹평을 받았다. 추승균 감독도 올 시즌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속에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이 1년만에 최하위로 곤두박칠치는 굴욕을 맛봤다.

김영만 감독도 동부를 3년연속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으나 정작 세대교체 실패와 함께 단기전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며 플레이오프 10연패라는 불명예를 남기고 결국 이상범 신임감독에게 지휘봉을 내줘야 했다. 조동현 감독도 KT 사령탑을 맡은 이후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아쉬운 성과에 그쳤다. 이러한 들쭉날쭉한 성적표로 인하여 젊은 감독들의 진짜 능력보다는 결국 '선수빨'이 좌우한다는 이미지가 여전히 강한 것도 사실이다.

아직 충분히 준비도 되지 않은 감독들이 단지 과거 현역 시절의 명성에만 기대어 성급하게 감독직에 오르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LG가 최근 현주엽 신임 감독을 낙점하며 논란이 된 것도 2009년 은퇴 이후 해설위원 활동 외에는 프로 코치 등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아예 전무하다는 이력 때문이었다. 현주엽 감독은 김영만 전 동부 감독과 박재헌 전 KB국민은행 코치 등 농구계 선배 지도자들을 코치로 영입하며 경험부족에 대한 우려를 보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스타 출신 젊은 감독들에게 현역 시절의 명성이 주는 기대치와 성적에 대한 압박감은 오히려 부메랑이 될수 있다. 프로무대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전에 시행착오를 겪다가 밀려나며 재기의 기회마저 잃고 실패한 지도자로 낙인찍힌 감독들도 있다.

KBL에서 성공한 감독으로 분류되는 유재학·추일승·허재·유도훈같은 베테랑들의 공통점은 모두 최소한 한 번 이상 '꼴찌를 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지도자도 처음부터 항상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코치 시절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으며 무수힌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만의 확고한 농구색깔을 구축한 지도자로 성장할수 있었다. 여기에는 감독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수 있도록 일비일희하지 않고 기다려준 구단의 인내심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선수만큼이나 좋은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정임을 보여준다. 농구대잔치 세대가 배출한 스타 감독들은 과연 지도자로서도 슈퍼스타가 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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