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을 자랑하던 삼성 라이온즈의 몰락이 심상치 않다. 삼성은 21경기를 치른 현재 단 3승(2무 16패)에 그치며 승률 .158로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롯데전 승리를 끝으로는 최근 7경기 연속 무승(2무 5패)에 그치며 열흘 가까이 승리를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1위부터 8위까지의 승차가 6게임인데 삼성은 공동 8위 한화-넥센(9승 12패, .429)과도 5게임차이다. 선두 기아와는 벌써 11게임이나 벌어졌다. 9개구단이 물고물리는 치열한 순위싸움의 와중에서 삼성만 홀로 동떨어져 딴 세상에 놓여있는 형국이다.

이는 당연히 삼성의 역대 개막 최저 승률 기록이기도 하다. 1982년 프로 원년부터 참가한 삼성이 개막 21경기에서 승률이 1할대 이하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대로라면 일찌감치 올시즌 꼴찌 예약은 확정적이고 자칫하다간 창단 이래 역대 최악의 성적을 경신하는 불명예 기록을 새로 쓸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참고로 삼성은 올시즌 전까지 프로 출범 35년간 '단 한 차례도 꼴찌를 경험하지 않은 KBO 역사상 유일한 팀'이었다. 삼성의 창단 최악의 순위는 지난 시즌 기록한 9위(65승 1무 78패. 승률 .455)였고 팀 최저승률은 1996시즌 기록한  0.448(54승 5무 67패. 6위)이었다. 가을야구 단골손님이었던 삼성이 35년간 6위 이하로 떨어진 것은 1996년과 2016년 단 2번 뿐이었고, 최소한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한 것도 총 6번에 불과할만큼 꼴찌나 약체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더구나 삼성은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프로야구 전대미문의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 정규시즌 5연패 등의 위대한 업적을 세우며 KBO의 왕조로 군림하던 팀이었다. 승부의 세계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고 하지만 천하의 삼성이 단기간에 이렇게까지 급격하게 몰락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물론 하락세는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이미 연속 우승을 차지하던 시절부터 오승환, 권혁, 안지만, 배영수, 나바로, 최형우, 박석민, 차우찬 등  투타의 주역들이 매년 팀을 떠나며 전력이 점점 약화되어가는 가운데 보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시즌 모처럼 FA 시장에서 지갑을 열어 우규민, 이원석 등을 영입하기는 했지만 유출된 전력(최형우, 차우찬)에 비하면 여전히 현상 유지에도 못미치는 수준의 투자였다.

냉정히 말하면 삼성의 현재 전력은 딱 꼴찌에 어울리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시즌도 외국인 선수 농사는 '흉작'이고 박한이, 김상수 등 주전급 선수들 다수가 부상에 시달리며 가뜩이니 반약한 선수층마저도 최상의 라인업을 꾸리는데 애를 먹고 있다.

올해의 삼성 타선은 구단 역사상 최약체로 꼽히고 있다. 팀홈런(15개)만 겨우 6위에 올라있고, 타율(.242)-출루율(.304)=장타율(.349)-팀득점(78점)-도루(9개) 등 공격 주요부문에서 대부분 9위를 기록하며 극심한 빈공을 드러내고 있다.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앞둔 불혹의 노장 이승엽(.247 3홈런 12타점)이 아직도 팀내 홈런과 타점 선두일만큼 해결사 부재가 심각하다.

그나마 선방하던 마운드도 최근에는 점점 힘이 부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5연패에 시달리는 삼성은 최근 3경기에서는 NC와 기아를 상대로 무려 31점을 내줬다. 선발투수들이 총 9번의 QS(공동 4위)를 합작했지만 타선지원을 받지못해 승수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

불펜진의 과부하도 우려된다. 백정현-권오준-김승현 등 벌써 10경기 이상 등판한 투수만 3명이고, 마무리 심창민도 9경기나 등판했으나 세이브를 챙긴 것은 1번 뿐이다. 믿을만한 투수가 부족하다보니 23일 NC전처럼 지고있는 상황에서도 필승조나 마무리가 투입되는 웃지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올해 지휘봉을 잡은 신임 김한수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많은 팬들이 유임을 원하던 프랜차이즈 스타 류중일 감독을 한 시즌 성적부진을 이유로 경질했지만, 정작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초보 사령탑을 낙점한 구단의 선택은 처음부터 의구심을 자아낸 부분이었다. 우려한대로 김한수 감독은 사령탑 역할에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에 총체적 난국에 빠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지도력을 비판하기 전에 삼성이 이런 상황에 몰리기까지 구단의 근본적인 책임이 더 크다. 어쩌면 삼성 역대 사령탑을 통틀어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지휘봉을 물려받은 김한수 감독은 불운한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단지 올시즌 꼴찌 추락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의 페이스대로라면 삼성은 구단 자체 기록은 물론이고 어쩌면 KBO 역사상 한 시즌 최다패-최저승률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도 높다. KBO 역대 한 시즌 최다패는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와 2002년 롯데 자이언츠가 각각 기록한 97패다. 프로야구 36년 역사상 아직까지 한번도 탄생하지 않은 단일시즌 세 자릿수 패배(100패)기록을 삼성이 수립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KBO 한 시즌 역대 최저승률은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기록한 0.188(15승65패)인데, 현재 삼성의 팀승률이 이보다 낮다.

삼성 팬들을 더욱 씁쓸하게 만드는 또다른 이유중 하나는 올시즌이 바로 삼성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국민타자' 이승엽이 은퇴를 공언한 마지막 시즌이라는 점이다. 삼성과 KBO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승엽은 선수생활 말년에 팀의 추락과 함께 혹독한 극한 체험을 하고 있다. 당초 올시즌을 이승엽의 '은퇴 투어'로 명예롭게 장식하려던 구상도 전대미문의 부진속에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승엽의 마지막 시즌을 지켜보는 팬들로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이 현재의 선수단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은 이제 한계가 있어보인다. 구단이 나서서 트레이드나 외국인 선수 교체같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단지 감독의 지략이나 선수들의 실력만 탓하기 전에 지금의 전력 약화를 초래한 근본적인 책임은 구단에 있다. 단순히 올시즌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세대교체나 리빌딩의 방향을 분명히 잡기 위해서라도 팀의 위기를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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