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평균 해발 고도 4500km 티베트 고원. 그 동쪽 중국에서 가장 높고 가장 넓은 마지막 남은 원시 황야 칭하이(靑海)성 커커시리(可可西里)에서 펼쳐지는 영양 밀렵꾼과 그것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순찰대와의 추격전이 바로 중국 6세대 루촨(陸川)감독의 영화 <커커시리>다.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촬영한 <커커시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2004년 개봉 당시 중국사회에 생태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2004년 도쿄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해 다수의 중화권 영화제를 수상을 휩쓸었다.

순찰대장 르타이 티베트 영양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순찰대를 조직해 활동하며, 목숨을 바쳐 자연과 자신들의 가치를 지켜가고자 한다.

▲ 순찰대장 르타이 티베트 영양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순찰대를 조직해 활동하며, 목숨을 바쳐 자연과 자신들의 가치를 지켜가고자 한다. ⓒ 화이형제(華誼兄弟)미디어


1994년 티베트 영양 밀렵을 단속하던 실제 순찰대 모습 <커커시리>는 영양 밀렵을 단속하다 1994년 총에 맞아 숨진 제쌍쑤난다제(杰桑素南?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 1994년 티베트 영양 밀렵을 단속하던 실제 순찰대 모습 <커커시리>는 영양 밀렵을 단속하다 1994년 총에 맞아 숨진 제쌍쑤난다제(杰桑素南?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 화이형제(華誼兄弟)미디어


<커커시리>는 티베트 영양 밀렵을 단속하다 1994년 총에 맞아 숨진 제쌍쑤난다제(杰桑素南达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사실감을 위해 전문배우 3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현지에서 캐스팅한 이들이 출연하였으며, 카메라는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기 위해 인물을 부각하기보다는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영화는 "아름다운 것이 진실한 게 아니라(以美爲眞), 진실한 것이 아름답다.(以真为美)"는 정신을 잘 보여준다. 현실의 참담함을 아름다움을 위해 꾸미거나, 미화하지 않고 여과 없이 카메라에 있는 그대로 담고, 그 진실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영화는 순찰대원 창바(强巴)가 밀렵꾼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베이징에서 커커시리 순찰대를 취재하기 위해 온 기자 가위(尕玉, 영화의 서술자)는 창바의 시신이 티베트 장족의 장례 관례에 따라 조장(鳥葬)으로 치러지는 것을 충격 속에서 묵도한다. 자연의 소중한 일부인 영양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순찰대 대원은 마지막 순간 자연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보시로 마감한다. 이는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위해 결국 자신을 희생하는, 영화 전체의 복선이기도 하다.

순찰대장 르타이(日泰)는 자신의 부하인 창바의 원한을 갚고, 밀렵꾼을 타진하기 위해 목숨을 건 추격에 나선다. 가위는 그 순찰대와 함께 밀렵꾼의 뒤를 쫓으며, 설산과 사막, 초원, 호수로 둘러싸인 커커시리에서 벌어지는 밀렵과 그것을 막으려는 순찰대의 쫓고 쫓기는 처절한 사투의 과정을 기록하게 된다.
 
아름다운 청산과 소녀

아름다운 청산, 커커시리 커커시리는 장족어로 ‘아름다운 청산, 아름다운 소녀(美麗的靑山, 美麗的少女)’라는 뜻이다.

▲ 아름다운 청산, 커커시리 커커시리는 장족어로 ‘아름다운 청산, 아름다운 소녀(美麗的靑山, 美麗的少女)’라는 뜻이다. ⓒ 화이형제(華誼兄弟)미디어


커커시리는 장족어로 '아름다운 청산, 아름다운 소녀(美麗的靑山, 美麗的少女)'라는 뜻이다. 6300km로 중국에서 제일 길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장강이 바로 이곳에서 발원한다.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 아름다운 소녀와 더불어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곳이다. 하지만 초원, 사막, 산악이 드넓게 펼쳐진 척박한 고원의 환경은 인간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쫓기는 자도 쫓는 자도 산소가 부족해 뛰다가 숨이 차 넘어지고, 차량의 연료가 떨어지면 추위, 눈보라에 고립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사막의 모래 함정은 또 언제든 서 있는 발아래를 자신의 무덤으로 만든다.

인간이 살기 힘든 환경이 영양에게는 오히려 살기 좋은 환경인지 티베트 영양 치루는 개체수가 수백만 마리에 달했다고 하지만, 그 털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울 모직으로 알려지면서 밀렵이 성행했다. 모피 수요가 급증하면서 치루의 개체 수는 1만 마리로 급감했다. 소중한 자연과 자신들의 일부인 영양을 지키려는 티베트인과 그것을 밀렵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 간의 충돌이 커커시리의 척박한 고원을 무대로 펼쳐진다.

쫓는 자

티베트 영양 지킴이 순찰대원들 무장한 밀렵꾼을 쫓아 멀고 험준한 길에 나서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 티베트 영양 지킴이 순찰대원들 무장한 밀렵꾼을 쫓아 멀고 험준한 길에 나서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 화이형제(華誼兄弟)미디어


부하를 잃은 순찰대장 르타이와 대원들은 두 대의 지프차와 한 대의 트럭으로 나눠 타, 밀렵꾼을 추적해 산으로 들어간다. 무사귀환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가족들은 배웅하며 눈물을 흘린다. 밀렵한 영양의 가죽을 벗기고, 모피를 말려 그것을 몰래 운반하는 민간인들을 찾아 가까스로 붙잡지만, 영양을 밀렵하는 포수들의 종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순찰대는 모피를 운반하는 사람을 취조해 겨우 가죽이 보관된 곳과 포수들의 행방을 캐낸다. 수많은 영양의 시체를 보며 밀렵꾼 추적을 결심하지만, 무장한 밀렵꾼을 쫓아 멀고 험준한 길에 나서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대원 하나가 부상을 당해 트럭은 치료와 후방 지원을 위해 철수한다. 연료와 식량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힘겹게 체포한 민간인들도 석방할 수밖에 없다. 추격 열흘째, 지프차 한대가 고장 나 멈춰 선다. 그들은 후방 지원 차가 올 때까지 버텨야하는데 눈이 내려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추격 열이틀 째, 식량과 연류를 싣고 오던 후방 지원 차마저 모래함정에 빠지며, 순찰대는 퇴로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네 명만이 밀렵꾼이 도주한 산 앞에 당도한다. 그마저 두 명은 눈 폭풍에 쓰러지고, 르타이와 가위만이 십여 명의 밀렵꾼들에게 둘러싸이고 만다. 쫓는 자는 이미 기진맥진 힘을 다 했고, 쫓기는 자보다 수적으로 열세의 상황에서 적과 마주친 것이다. 순찰대장 르타이는 당당하게 밀렵꾼 사장에게 자수하라고 맞서다 결국 총에 맞고 최후를 맞이한다.

쫓기는 자

영양 밀렵에 협조하는 사람들 가죽을 벗기고, 모피를 운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붙잡지만, 식량이 없어 풀어주고 만다.

▲ 영양 밀렵에 협조하는 사람들 가죽을 벗기고, 모피를 운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붙잡지만, 식량이 없어 풀어주고 만다. ⓒ 화이형제(華誼兄弟)미디어


커커시리에서 영양을 밀렵해 모피 장사를 하는 사장은 순찰대에게 쫓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새로운 가치인 자본을 쫓는 이들이다. 그들은 이미 티베트고원의 습속을 버리고, 자연의 일부인 영양을 대량으로 밀렵하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비정하고 잔인하다.

서글픈 현실은 커커시리에 이미 비정한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주민들이 늘어났고, 모피를 원하는 구미 소비자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영양을 희생시켜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 자본에 대한 욕망은 자연을 지키려는 순찰대보다 강하고, 훨씬 더 생명력이 질겨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기록하는 자

베이징에서 온 가위 쫓고 쫓기는 사투의 모든 과정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바라본다.

▲ 베이징에서 온 가위 쫓고 쫓기는 사투의 모든 과정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바라본다. ⓒ 화이형제(華誼兄弟)미디어


베이징에서 온 기자인 가위는 쫓고 쫓기는 사투의 모든 과정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바라본다. 순찰대가 단속을 통해 압수한 모피를 되팔아 순찰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는 사실도 인지한다. 순찰대가 1년 동안 아무런 지원 없이, 자발적으로 영양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그리고 베이징으로 돌아와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실을 기사로 쓴다. 영양 밀렵에 관한 충격적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정부는 커커시리를 국가급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밀렵 단속과 영양 보호에 나서면서 영양의 개체수가 3만 마리로 늘었다. 티베트 영양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 중의 하나인 잉잉(迎迎)으로 형상화되어 사랑받기도 하였다.

순례자의 길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순례자는 비록 온 몸은 흙투성이지만, 그 마음은 누구보다 깨끗하다.”

▲ 순례자의 길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순례자는 비록 온 몸은 흙투성이지만, 그 마음은 누구보다 깨끗하다.” ⓒ 화이형제(華誼兄弟)미디어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순례자는 비록 온 몸은 흙투성이지만, 그 마음은 누구보다 깨끗하다."

순찰대장 르타이가 추격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위에게 하는 말이다. 어쩌면 르타이의 밀렵꾼 추격 과정은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의 길에 다름 아니다. 비록 힘들고 목숨을 위협받는 수난의 길이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너무나도 순결한 길이기 때문이다. 성장과 자본의 논리에 빠진 중국인에게 자연과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했다는 점에서 영화 <커커시리>는 중국영화사에 또 하나의 빛나는 별이라 칭할 만하다.

커커시리 티베트 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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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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