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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청년, 평범하고 싶다> 중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 <청년, 평범하고 싶다> 중 한 장면.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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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는 '장미 대선'이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왔다. 늘 겨울에 치러지던 선거일이 5월 9일로 결정되면서 후보 토론회와 공약 발표가 이어진다. 하지만 청년의 현실을 반영한 정책이 실종된 상황에서 청년의 미래가 장밋빛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5명의 주요 대선 후보의 청년 관련 공약을 찾아보면, 크게 '청년구직 수당 지급'이나 '청년고용 의무할당제' 같은 정책이 눈에 띈다. '민간 일자리 110만 개 창출'과 '행정공무원 확충'처럼 일자리 수를 늘리겠다는 공약도 보인다. 사회복지세를 추진하겠다는 후보도 있다. 하지만 다수 후보의 공약에서 재원 마련 등 현실화를 위한 구체적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청년 문제의 본질적 측면을 고려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2월 알바천국에서 13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30 청춘의 고민을 말하다' 설문조사를 보면 청년 세대의 가장 큰 고민이 '월세·식비 등 생활비 부족(24.11%)'으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설문 조사에서는 '높은 학비(11.07%)'가 뒤를 이었다.

안타깝게도 '청년이 원하는 정치'와 '정치가 말하는 청년 정책'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간격을 좁히려면 청년의 삶을 더 들여다보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참고할 만한 책이 대선을 앞둔 4월 출간됐다.

"지금까지 세대명 하사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미운청년새끼> 표지
 <미운청년새끼> 표지
ⓒ 미래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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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부터 N포 세대, 달관 세대까지. 청년을 부르는 이름의 변천사에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기성세대가 청년을 일컫는' 식이라는 점이다.

이에 <미운 청년 새끼>의 저자들은 "그냥 우리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며 책 이름의 배경을 설명한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부르는 호칭을 이제 거부하기로 밝히면서 청년들의 삶을 직접 들려주는 방식은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평범하면서도 개성 있기를 바라고, 체제에 순응적이면서도 창의적이기를 바라는 채점 목록. 마른 걸레 쥐어짜듯 일상을 포기한 채 아무리 뛰어도 어차피 채점표에는 충족되기 어려우니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자조가 절로 나온다." - 본문 47쪽 중에서

점점 상향 평준화 되는 '노력의 기준', 책에서는 젊은 시간을 구직과 생존에 매달리면서 지내야 하는 오늘날 청년의 '먹고사니즘'을 이야기한다.

저자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로 시작하는 부분도 그렇다. 이들은 최근 TV에서 이 시대의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들이 실종되고 과거의 향수를 찾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나온 부분도 연관 있다고 말한다.

"최근 미디어에서 20대 주인공이 대거 사라진 데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현재 20대를 가지고는 칙칙한 이야기밖에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아예 시대를 옮겨가는 거죠. 대학생들이 하숙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시절, 거기에 천재 야구선수와 의사 중에 고르는 핑크빛 로망스를 불어넣고." - 본문 17쪽 중에서

대담 이후 저자들은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비연애주의자', '일시불주의자' 등 사회가 흔히 보여주는 '정상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례를 읽으면 웃음이 나면서도 어딘가 찡하다.

'청년세대'라는 단어 이면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

"라디오에서 학생 이사 하시는 분 사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분이 온갖 방을 다 봐왔지만 정말 자기가 너무 짠해서 짜장면을 사주고 온 학생이 있었대요. 방 한가운데에 침대 사이로 기둥이 파고든 방이었대요. 억지로 세를 내려고 방이랄 수 없는 공간을 방으로 만든 거죠.

"학생 여기서 어떻게 자?"하고 물으니 학생이 허리를 구부려서 기둥을 피해 누우면서 "이렇게 자면 돼요" 했다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서 짜장면을 사줬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청년의 주거 환경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해요." - 본문 29쪽 중에서

"라디오에서 학생 이사 하시는 분 사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분이 온갖 방을 다 봐왔지만 정말 자기가 너무 짠해서 짜장면을 사주고 온 학생이 있었대요. 방 한가운데에 침대 사이로 기둥이 파고든 방이었대요. 억지로 세를 내려고 방이랄 수 없는 공간을 방으로 만든 거죠." <미운 청년 새끼> 중에서
 "라디오에서 학생 이사 하시는 분 사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분이 온갖 방을 다 봐왔지만 정말 자기가 너무 짠해서 짜장면을 사주고 온 학생이 있었대요. 방 한가운데에 침대 사이로 기둥이 파고든 방이었대요. 억지로 세를 내려고 방이랄 수 없는 공간을 방으로 만든 거죠." <미운 청년 새끼> 중에서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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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을 처음 방문하고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어느 서울시장 후보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방이 좁다 못 해서 한가운데 기둥이 떡 서 있는 방, 중장년층은 상상이나 할까? 문제라면 이런 상황이 '노력의 부재'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 <청년, 평범하고 싶다>에서 "안 성실한 적이 있었을까"라고 스스로 묻던 어느 청년의 말처럼 말이다.

저자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잡지 <캠퍼스 씨네21>에서 일하는 김송희씨는 과거 홍보 대행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들려주며 '갑을병정의 정정정정'이라고 표현했다. 회사 측과 구직자를 각각 '포식자'와 '초식동물'로 묘사한 부분에서는 웃음이 나지만, "갑을병정, 정의 세계에서도 서열은 존재하고 있었"다는 부분에선 씁쓸함이 느껴진다.

잡지 <월간잉여>를 만들었던 '잉집장' 최서윤씨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잉여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은 <월간잉여>의 창간 비화도 그렇고, '수저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더욱 독특하다.

'수저게임'은 지난 몇 년간 나온 '흙수저' 담론의 연장선으로 경제·사회·정치적 상황을 묘사한 보드게임이다. 흙수저와 금수저가 각자 게임을 진행하며 법안을 발의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방식인데, 최씨는 "10여 차례 플레이하는 것을 경험하거나 목격하며 임금 상승 이슈와 주거 이슈, 이 두 가지가 지속적으로 언급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부루마블 식의 게임에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기발하게 엮은 셈이다.

또 다른 저자 이진송씨는 독립잡지 <계간홀로>와 단행본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펴냈다. '연애가 당연한 사회'에서 '비연애'를 조명하는 이씨는,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의 세계에서 '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3명의 저자는 이와 같은 일화를 쓰면서 지금까지 '청년세대'라는 단어로 소비되었던 이면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선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이 책 읽으시길

"결혼? 행복해 보이는 부부가 내 주변에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드물다. 과정을 생각하면 더 귀찮다. 지인이 결혼을 위해 학력, 경력, 재산, 건강 상태 등을 입사지원서 쓰듯 문서로 만들어 시어머니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했다는 것을 듣고 헬조선 결혼 문화에 더욱 치를 떨게 됐다." - 본문 212쪽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같이 화를 내고, 다른 부분을 읽다가는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웃고 말았다. 결혼 등 '그럴듯한' 삶의 방식을 흉내내기를 거부하면서 살고 있기에, 나도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면 '미운 청년 새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목할 점은 3명의 저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청년이 회자되는 지점에서 대부분 '2030 남성'이 호출됐던 것을 돌아보면 이 책에서 언급되는 이야기들이 더욱 깊은 의미를 드러낸다.

<미운 청년 새끼>가 '메갈이나 일베나'라는 뭉뚱그리는 잣대를 거부하고 '전리품으로서의 연애'였던 여성의 데이트 담론에 '연애 파업'을 더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남성 중심의 청년 서사 속에서 여성 저자의 언급은 그 자체로도 그렇지만, '흔하게 소비되는 청년 이미지' 너머를 비춘다는 점에서 뜻깊은 지점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청년 정책을 선보였다'는 말을 들으려면 아무래도 대선 후보들이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혹시 지지자나 보좌관이라도 이 기사를 본다면 후보에게 <미운 청년 새끼> 읽기를 권해보시는 건 어떨까. 이제 외부인의 시선으로 청년 담론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라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야 할 시기라고 본다면 말이다. 정치권에서 앞으로도 '저출산율' 운운하면서 '가임기 여성 분포 지도' 따위를 만들거나 '최저임금 상승' 이슈를 두고 '젊을 때 다 하는 고생' 같은 소리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미운 청년 새끼> (글 최서윤·이진송·김송희/ 미래의 창/ 2017.4.13/ 1만4000원)



미운 청년 새끼 - 망가진 나라의 청년 생존썰

최서윤.이진송.김송희 지음, 미래의창(2017)


태그:#미운청년새끼, #최서윤, #김송희, #이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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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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