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프로 스포츠 중에서 가장 판도를 예상하기 쉬운 종목을 꼽으라면 단연 여자프로농구(WKBL)일 것이다. '6개 팀이 서로 이겨보겠다고 투닥거리다가 결국 우리은행이 우승하는 종목'이라고 정의한다 해도 어느 정도 정확한 예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은행 위비는 지난 2012-2013 시즌부터 5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WKBL의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얼마 전 끝난 2016-2017 시즌 같은 경우엔 우리은행의 독주 현상이 더욱 심했다. 우리은행은 전면강압수비의 중추였던 국가대표 출신 가드 이승아가 임의탈퇴로 팀을 떠났음에도 정규리그에서 33승2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역대 WKBL 최고 승률 기록(.943)을 새로 썼다. 삼성생명 블루밍스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3경기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통합5연패를 이뤄냈다.

그런 우리은행이 다가올 새 시즌에는 더 강해질지도 모르겠다. 김단비(신한은행), 박하나(삼성생명), 심성영(KB스타즈) 등 대부분의 FA선수들이 원소속구단과 재계약한 가운데 FA 시장에 나온 선수 중 최대어로 꼽히는 김정은을 3연 연봉2억6000만원의 조건에 영입했기 때문이다. 2006년 프로 입단 후 줄곧 한 팀에서만 뛰었던 김정은은 프로 데뷔 11년 만에 고향이나 다름없는 아산을 연고로 하고 있는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게 됐다.

득점왕 2회에 빛나는 WKBL의 대표 포워드

2006년 여자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는 좋은 인재가 많이 쏟아져 나왔다. 국가대표 가드 이경은(KDB생명 위너스)을 비롯해 박태은, 최희진(이상 삼성생명), 염윤아(KEB하나은행) 등 당시 지명을 받았던 1987년생 선수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온양여고의 포워드 김정은은 단연 돋보이는 선수였다.

180cm의 좋은 신체조건을 자랑하는 전천후 공격수 김정은은 여자 선수로는 드물게 원핸드슛을 구사하며 코트 어느 지역에서도 득점이 가능한 차원이 다른 유망주였다. 김정은은 전체 1순위로 신세계 쿨캣(현 하나은행)에 지명됐고 루키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다. 김정은은 2006년 겨울리그에서 쟁쟁한 언니들 사이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평균 11.75득점 4.8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며 더욱 성장한 김정은은 빠른 시간 안에 리그를 대표하는 득점 기계로 자리잡았다. 특히 2007-2008 시즌부터 2010-2011 시즌까지는 네 시즌 연속으로 평균 18득점 이상을 기록했고 2009-2010 시즌에는 평균 20득점을 넘기기도 했다. 김정은은 외국인 선수 제도를 일시적으로 폐지했던 2010-2011 시즌과 2011-2012 시즌 연속으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하나은행뿐 아니라 여자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신세계와 하나은행은 김정은이라는 걸출한 선수를 보유하고도 좀처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프로 입단 후 10년 동안 신세계와 하나은행 유니폼을 입고 한 번도 챔피언 결정전 무대를 밟지 못했다. 가까스로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이끌면 언제나 '레알 신한'으로 불리던 호화군단 신한은행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렇게 김정은은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약체의 외로운 에이스'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그런 하나은행과 김정은이 2015-2016 시즌 드디어 챔프전 무대를 밟았다. 우리은행에 이어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하나은행은 플레이오프에서 KB스타즈를 꺾고 2002년 이후 무려 14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김정은은 챔프전 진출이 결정된 후 참았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후 '첼시 리 사태'가 터지면서 하나은행의 2015-2016 시즌 기록들은 모두 삭제되고 말았다. 김정은의 지독한 불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양지희 은퇴하니 김정은 합류, 우리은행의 끝없는 독재 욕심

김정은은 2015-2016 시즌이 끝나고 결혼을 하면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누렸지만 선수로서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2014-2015 시즌부터 종아리와 무릎 등의 부상에 시달리던 김정은은 2016-2017 시즌 19경기에 결장했고 평균 5.1득점 2.6리바운드로 데뷔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소속팀 하나은행 역시 봄 농구 경쟁에서 패하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은 김정은은 하나은행과의 1차 협상에서 5000만원 차이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새 에이스로 성장한 강이슬을 비롯해 풍부한 포워드 자원을 보유한 하나은행에서도 예전처럼 김정은에게 목을 멜 필요가 없었다. 이제 김정은을 데려가기 위해선 타 구단이 2억5000만원보다 많은 액수를 불러야 하는데 부상 경력 등을 고려하면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김정은에게 2억6000만원을 제시한 팀이 등장했다. 바로 우리은행이었다.

우리은행은 2016-2017 시즌이 끝나고 통합 5연패의 주역인 센터 양지희가 은퇴를 선언했다. 2015-2016 시즌 정규리그 MVP에 올랐던 양지희는 이번 시즌 28경기에서 5.75득점 4.96리바운드에 그쳤지만 우리은행의 공격과 수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선수다. 우리은행에는 최은실, 이선화 같은 선수들이 많이 성장했지만 아무래도 국가대표 출신 양지희와는 그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가세는 우리은행의 큰 고민 하나를 덜어주는 희소식이다. 물론 김정은이 양지희 같은 정통 빅맨은 아니지만 다양한 공격패턴과 개인기, 그리고 정확한 슛터치 등은 오히려 양지희보다 훨씬 뛰어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대표 시절 위성우 감독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는 김정은이 우리은행 특유의 조직력에 잘 녹아 들기만 한다면 당장 다음 시즌부터 MVP 박혜진의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우리은행의 행복한 상상들은 김정은이 경기 당 평균 20분 이상의 출전 시간을 소화할 건강한 몸 상태가 만들어진다는 전제하에 가능해지는 이야기다. 여전히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김정은은 우리은행 합류 후에도 재활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한 때 여자프로농구 최고의 득점기계였던 김정은이 부활하는 날, 우리은행은 지금보다 더욱 완벽하고 무서운 팀으로 거듭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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