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은퇴였다. 수원삼성은 21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은퇴의사를 피력한 이정수 선수의 의사를 존중하여 잔여 계약을 종료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선수는 "팀에 많은 보탬이 되지 못한 책임을 지고 팀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며 팬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이정수 선수가 수원삼성블루윙스 팬들에게 보내는 글 이정수 선수가 수원삼성블루윙스 팬들에게 보내는 글

▲ 이정수 선수가 수원삼성블루윙스 팬들에게 보내는 글 이정수 선수가 수원삼성블루윙스 팬들에게 보내는 글 ⓒ 수원삼성블루윙스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다. 이 선수는 2002년 안양LG(현 FC서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 인천 유나이티드를 거쳐 2006년 수원에 입단, 2006년과 2008년 각각 리그 준우승과 우승으로 팀을 이끈 수원의 스타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2골을 기록, 16강 진출에 공헌하기도 했다.

이 선수는 올 시즌 수원에 다시 합류했다. 2010년 카타르의 알사드SC에 입단, 올해 1월까지 주축 선수로 활약했으나 수원 구단과 K리그에 기여하며 마지막 선수생활을 마무리 하겠다는 의지였다. 연봉도 절반 가까이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팀에 애정을 보이던 이 선수의 갑작스러운 은퇴 결정은 지난 16일 광주와의 경기에서의 사건이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

수원은 이날 경기에서 비교적 약체로 평가되는 광주를 상대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했다. 리그 첫 승 신고에 실패했다. 열성적이기로 유명한 팬들의 성화는 극에 달했다. 이미 수원의 홈구장인 수원 월드컵 경기장의 관중 수는 평상시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날 경기에서도 결과적으로 무승부를 거뒀지만 광주에 밀리는 경기 내용이 계속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후반 25분 이후부터 홈 팀 서포터스 석에서는 서정원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와 함께 거친 욕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 종료 직후, 인사를 위해 서포터스 석으로 다가가자 일부 팬들이 선수들을 향해 손가락 욕설과 맥주 캔, 머플러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이 선수가 흥분한 모습으로 서포터스 석으로 다가가자 팀 동료들이 흥분을 자제시키며 만류하는 모습이 SNS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경기 이후 이 선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은퇴 의사를 피력, 수원 구단은 두 차례 면담을 통해 이 선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이 선수는 은퇴를 선택했다.

올 시즌 수원은 구단 역사상 최악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조별단계에서는 조 1위를 달리며 선전하고 있지만 리그가 문제다. 개막 이후 6라운드까지 5무 1패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리그 10위를 기록 중이다. 비단 결과만의 문제도 아니다. 경기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색을 잃어버리며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약팀으로 평가되는 상대와의 홈경기에서 무기력한 경기력이 보이자 결국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이 선수는 그동안 팀의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의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선수로서 의지를 상실, 은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부 서포터스의 과격한 행태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비단 수원 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일부 경기장에서는 듣기 민망한 수준의 욕설이 공공연하게 들려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선수단 버스 막기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지난 19일 열린 FC서울과 FC안양의 FA컵 32강전은 홍염더비로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수원 서포터스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이번 과격행동을 주도한 일부 소모임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며 소모임 가입자들에 대한 경기장 출입 금지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며 격렬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의 문제다. 응원 문화 자체의 개선이 필요하다. 제재가 어려운 경기장에서의 욕설은 차치하더라도 구단 또는 연맹 차원에서 개선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 서포터스의 과격한 행동이 있을 때 연맹은 구단에 제재금 등의 솜방망이 처벌을 내릴 뿐이었다.

2013년 부천과 안양 서포터스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을 때 경기장 1년 출입금지, 2014년에는 전북에서 홍염을 터트린 관중에 대해 짧은 경기장 출입 정지가 있었을 뿐이다. 과격한 서포터스에 대한 영구 입장금지를 내린 사례는 2015년 서울이랜드FC가 유일하다. 서울E는 개막전에서 폭력사태를 일으킨 서포터스에게 홈경기 영구 입장 정지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연맹의 대응은 더욱 한심하다. 폭력사태 또는 홍염 등의 위험 물품을 사용한 팀에 대해 늘 제재금 이외의 조치는 없었다. 벌금 형식의 제재금 역시 해당 서포터가 아니라 구단의 관리책임을 물어 징계했을 뿐이다.

K리그 클래식의 수도권 팀의 서포터스인 임아무개씨는 "더비 경기에는 경기장에 아이들과 함께 가지 않는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라이벌 전의 경우 욕설 등의 과격행위가 당연하게 발생한다는 것. 상대 선수 뿐 아니라 서포터스 사이에서의 격한 외침이 오고가기도 한다.

자정이 필요하다. 서포터스 내부에서도 과격 행위에 대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구단, 연맹, 협회까지 함께 분위기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많지 않은 관중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조건 방관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찾아와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힘써야 한다. 축구 선진국에서는 경기장 난입, 폭력행위 등에 대해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구단 차원에서도 강력히 규제, 많은 개선 사례를 만들어 낸 바 있다.

이정수의 은퇴, K리그의 큰 별 하나가 불명예를 안고 떠났다. 이번 사태가 한국축구, K리그 발전을 위한 계기로 삼기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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