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시와 시라이와의 첫 만남,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사토시와 시라이와의 첫 만남,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 씨네룩스


사토시(아오이 유우)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 싱크대 앞에서 젖은 수건으로 알몸을 닦는지, 그것도 왜 상처받은 몸짓으로 그러는지, 밤을 함께 보낸 시라이와(오다기리 죠)에게 왜 울부짖으며 화를 내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타조 흉내를 내며 이상한 춤을 추고, 새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손으로 흉내 내거나 남에게 강요하고, 그러다가 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이해받지 못할 행동을 반복하는 걸 봐서는 '사랑하고 싶다는 말과 더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말'을 동시에 하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새처럼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영화 중반부부터는 사토시의 과장된 감정 기복과 극적인 연출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길 그만뒀다. 사토시 스스로 자기의 삶이 망가졌다고 말했으니 나는 그녀의 상태를 그저 '망가진 상태'로만 이해하기로 했다. 그녀는 분명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됐을 테고, 그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은 어쩌면 시라이와처럼 '자기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혹은 평범하지 않은

 세상에 체념한 듯 혼자 살아가는 시라이와.

세상에 체념한 듯 혼자 살아가는 시라이와. ⓒ 씨네룩스


겉보기에 시라이와는 평범한 남자로 보인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직업훈련학교에 다니고 있는 그는 목수 지망생이다. 그는 사람에게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지 않지만, 다가오는 사람을 밀치지도 않는다. 대화에도 곧잘 어울리고, 웃음도 많으며, 직업학교 동기의 말대로 믿음직스러운 면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라이와는 학교 동기들의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를 받는다. 가볍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분노를 느낀 그는 냉소적인 언어를 쏟아 놓는다. 이렇게.

"지금 너네 웃었지? 지금 많이 웃어 두는 게 좋을 거야. 곧 웃을 일 따위는 없어질 테니까. 그냥 살아가게만 될 거야. 재미있는 일 하나 없이, 단지 일하다 죽을 뿐인 인생. 그게 너희의 인생이야."

시라이와는 '그게 지금의 내 인생이야'하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모든 평범한 사람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 이렇게 살게 되는 거라고, 믿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하게 살아온 나의 삶이 이렇게 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시라이와는 지금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상태이다.

맥주 캔 두 개와 도시락으로 홀로 저녁을 먹고, 직업학교에 다니고는 있지만 모든 걸 체념한 듯해 보이고, 손에는 결혼반지를 끼고 있으나 아내와도, 아이와도 함께 살고 있지 않은 시라이와. 이런 시라이와가 다시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게 된 계기는, 비로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나서였다. 그는 본인 스스로를 "평범하게 일하고,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아이 낳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울타리 너머로 공을 넘길 때까지

 사토시는 깃털을 뿌리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랑을 꿈꾼다.

사토시는 깃털을 뿌리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랑을 꿈꾼다. ⓒ 씨네룩스


헤어진 아내가 그날 밤, 제정신이 아닌 행동을 한 이유.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런 잔인한 짓을 한 아내에 대한 분노. 열심히 일한 것뿐이 없는 내 삶이 이렇게 나락에 빠진 건 모두 아내 탓 같았다. 하지만 시라이와는 이제야 아내를 그렇게 만든 건 자기 자신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자기가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린 장본인이라는 걸. 그런 나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깨달음이 도리어 그에게 힘을 준다. 끝인 것 같던 삶도 아직은 끝이 아닌 것 같다. 삶에서 안개가 걷히고, 나 자신이 드러나면서, 다시금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녀와 함께라면. 그러니까 이 영화는 누군가에 의해 망가진 여자와, 누군가를 망가뜨린 남자의 러브스토리다.

마지막 장면이 소프트 볼 경기인 건 상징적이다. 차근차근 연습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 것이 운동 경기. 매일 조금씩 '짬'을 내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다 보면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재미있어진다. 감독은 우리 삶도 소프트 볼 게임처럼 연습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영화 제목처럼 <오버 더 펜스>로 공을 넘기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망가졌든, 망가뜨렸든, 우리는 다시 한번 행운 같은 시작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보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오버 더 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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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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