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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우리 세대를 X 세대라 불렀다. 우리가 어디로 튈지 모르고, 희한한 짓에 몰두하길 잘하며, 랩을 따라 부르고, 너무 자유분방해 '정의할 수 없다'는 의미로 미지수 'X'를 사용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했다. 정의할 수 없으면 정의하지 말라지. 어찌됐건 나는 X세대라는 정의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그만큼 새롭고 재기 발랄하며 지루한 관습을 탈피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를 우리는 어떻게 부르는가. 달관 세대라 부르기도 하고, N포 세대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네이밍에는 전통적으로 젊음에 부여하는 그 어떤 가치도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젊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만은 맞다. 그런데 나 때와는 달리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 네이밍을 매우, 매우 싫어한다.

달관 세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흉내 낸 말로 2015년에 <조선 일보>에서 몇 명 청년의 사례를 단편적으로 엮은 뒤 붙인 말이다. 기사에서는 한 인터뷰이의 말을 인용해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덕에 돈 없어도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많다"며 청년들의 고단한 삶을 지워버렸다.

<미운 청년 새끼>의 세 저자 중 한 명인 최서윤은 이 기사에서 위화감과 불순함을 느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 청년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즐겨보고자 하는 분투를 멋들어진 트레드인 양 포장한 보도"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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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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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 세대는 또 어떤가. 지금의 청년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시작으로 3개를 넘어 N개를 포기하고 사는 세대라는 뜻의 이 말을 청년들은 싫어한다고 한다. 이건, 정말이지 당연한 말이다. 만약, 나라는 사람을 누군가가 제멋대로 규정하는데, 규정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제 기준에서 나의 미흡해 보이는 속성만 쏙쏙 뽑아 규정한다면, 이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최서윤은 우선, 어른들이 함부로 사용한 '포기'라는 단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이렇다.

"포기라는 말에는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거나 스스로 갈망하는 일인데, 도저히 여건이 안 돼 하지 못하게 됐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런데 연애, 결혼, 출산이 요즘 세상에서도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던가? " - 본문 중에서 

어른 세대에게는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지만, 지금 세대에게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일 뿐인 연애, 결혼, 출산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포기하고 사는 세대'라니. 최서윤은 우리는 포기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어른들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상황 속에서 나름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며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가는" 것뿐이라고.

대표적으로 '88만 원 세대'를 포함하여 기존에는 청년에 대해 청년이 아닌 그 윗세대가 정의를 내리곤 했다. '청년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청년다움에 대한 정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이(윗세대들이) 말하는 노력이니 도전이니, 열정이니 패기니 하는 청년다움에 대한 강조는 청년에게 도리어 억압과 폭력이 되곤 했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 세 사람의 주장이다.

우리는 왜 계속 뛰고 있는가 

그래서 최서윤, 이진송, 김송희 세 저자는 청년이 직접 청년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를 '무슨무슨 세대'가 아닌 그냥 '미운 청년 새끼'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아무리 봐도 이 사회는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듯이 달려가고 있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해도 청년 앞에 보이는 건 아늑한 방이나 희망 어린 미래가 아니라 어두 컴컴한 터널일 뿐이며, 가뜩이나 살기가 어려운데 이 사회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청년들에게 심리적, 정신적 짐마저 지우고 있으니, 이 사회에서 우리 청년들은 미운 청년 새끼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은 말한다. 청년을 궁지로 몰아넣는 이런 상황에서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우선은 전속력으로 달리고 보는 일이라고. 어떤 청년은 불안한 마음에 전공 네 개를 이수하고, 어떤 청년은 취업 전선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졸업을 미루며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린다.

또, 어떤 청년은 오로지 스펙을 위해 빚을 내 어학연수를 가고, 어떤 청년은 4.24평도 안 되는 방에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몇 개의 알바를 전전한다. 잠시 멈춰 서 지금의 삶을 응시해볼 시간 없이, 다른 미래를 그려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앞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다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뛰고 있는 거지?

"앞에 있는 사람을 이기기 위해 내 페이스를 잃고 다 같이 달린다. 그러다 보니 기준은 점점 높아지고 해야 할 일은 갈수록 많아진다.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것저것 다 해내려다 보면 금방 지치게 되고, 죄다 페이스를 잃어 결국 넘어져 버린다.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 채 '내가 왜 뛰는지'까지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왜 계속 뛰고 있는가." - 본문 속에서 

그래서 이 시대의 청년은 뛰다가 지친 청년이다. 넘어졌다고 해서 잠시 쉬어갈 수도 없다. "다수의 20대는 실패를 극복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나 스펙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사회에서 "젊음은 더 이상 밑천"이 아니다.

차선책이 없기에 뛰면서도 조마조마하고, 넘어져서도 얼른 일어날 궁리뿐이다. 이런 세대에게 '달관'이라는 그럴듯한 말은 사치일 뿐이며, '포기'라는 한가한 말은 팔자좋은 소리일 뿐이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아주 적은 선택지를 향해 달려갈 뿐인 거니까.

책에서 세 명의 저자는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현실을 접목해 '어떻게 청년을 바라봐야 할지' 그 시선을 제공한다. 어른들의 낡고 느린 시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청년을 그 모습 그대로 바라봐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요구는 윗세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답습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의를 내린답시고 힘을 쓰지 않고, 대신,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바로 청년들의 삶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책 속 글들은 지적이고 단단하다. 저자 모두가 소위 '글발'이 있다. 독립 잡지 <월간 잉여>를 펴내고 다양한 사회적 실험에 매진 중인 최서윤, 단행본 <연애하지 않을 이유>와 독립잡지 <계간 홀로>를 펴낸 이진송, 그리고 '캠퍼스 씨네 21'기자 김송희.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 의미로 치환하는 능력은 쉽게 나오지 않지만, 이들에게서는 나온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이들 자체가 청년이라서 더 의미가 있다.

덧붙이는 글 | <미운 청년 새끼>(최서윤, 이진송, 김소희/미래의창/2017년 04월 13일/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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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청년 새끼 - 망가진 나라의 청년 생존썰

최서윤.이진송.김송희 지음, 미래의창(2017)


태그:#미운 청년 새끼, #최서윤, #이진송, #김소희 ,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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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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