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부터 프로농구(KBL) 챔피언결정전이 시작되지만 안양KGC와 서울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벌써 다음 시즌 준비를 시작했다.

창원 LG 세이커스 구단은 2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팀의 7대 감독으로 MBC 스포츠플러스의 현주엽 해설위원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 3년에 연봉은 상호 합의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2009년 LG 유니폼을 입고 현역에서 은퇴했던 현주엽은 이로써 8년 만에 친정팀 사령탑으로 현장으로 돌아오게 됐다.

패스하는 신개념 빅맨, KBL 최고의 '포인트 포워드' 현주엽

현주엽은 이미 휘문고 시절부터 '초고교급 포워드'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1년 선배 서장훈과 함께 뛰던 시절에는 고교 무대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었다(당시 휘문고에는 프로무대에서 괜찮은 활약을 펼쳤던 파워포워드 윤영필도 있었다). 하지만 연세대로 진학한 서장훈과는 달리 현주엽은 고려대를 선택했다. 90년대 중반을 화려하게 수놓은 연세대와 고려대의 치열한 라이벌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현주엽은 대학 시절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신기성 같은 좋은 동료들과 호흡을 맞췄지만 끝내 농구대잔치 우승은 이루지 못했고 대학 졸업 후 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 청주SK 나이츠에 입단하며 서장훈과 재회했다. 하지만 휘문고의 무적 콤비는 프로 무대에서 그 위력을 재현하지 못했다. 전천후 포워드였던 현주엽이 대학 진학 후 서장훈을 막기 위해 빅맨으로 활동한 탓에 정작 같은 팀이 됐을 때 둘의 동선이 겹쳐 버린 것이다.

결국 SK는 1999년 12월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로 현주엽을 트레이드시켰다. 골드뱅크에서 활동반경이 자유로워진 현주엽은 본격적으로 패스에 눈을 뜨며 '리바운드와 어시스트 수치가 비슷한 빅맨'이라는 독특한 스타일의 선수가 됐다(굳이 비교하자면 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드레이먼드 그린와 플레이스타일이 비슷했다).

현주엽은 상무시절 2000년대 한국 농구 최고의 순간으로 꼽히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4쿼터 막판 동점골을 성공시키는 등 한국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엔 군복무 중인 선수가 금메달을 따도 즉시 전역하는 규정이 없어 현주엽은 복무 기간을 모두 채웠다). 전역 후 골드뱅크를 인수한 KTF로 복귀한 현주엽은 '포인트 포워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맹활약했다.

특히 2004-2005 시즌에는 평균 14.2득점 3.6리바운드 7.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파워포워드 포지션임에도 김승현에 이어 어시스트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현주엽은 그해 전주KCC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2경기에서 평균 23득점8리바운드6.5어시스트로 엄청난 활약을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연약했던(?) 현주엽의 무릎은 195cm의 신장에 100kg이 훌쩍 넘는 거구를 견뎌내지 못했다.

FA 자격을 얻어 창원 LG로 이적한 현주엽은 고질적인 무릎 통증으로 해마다 성적이 하락했고 2008-2009 시즌이 끝나고 무릎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현주엽은 재활 도중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다. 현주엽은 농구대잔치와 프로농구를 아우르는 슈퍼스타였지만 정작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은퇴할 때까지 우승은커녕 챔피언결정전 무대조차 밟은 적이 없는 비운의 선수이기도 했다.

해설위원, 예능 등으로 외도(?)하다가 LG 감독으로 현장 복귀

LG에서 활약하던 2007년 결혼해 슬하에 2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 현주엽은 은퇴 후 모교인 고려대 감독 취임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현주엽은 지도자 대신 2010년 스포츠 재활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렇게 농구팬들의 시야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현주엽은 2014년 지도자가 아닌 중계석에서 해설위원으로 농구팬들 앞에 나타났다.

2015년에는 휘문고 선배이자 '6000억의 자산가(?)'로 알려진 서장훈과의 인연으로 MBC 인기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 예능 늦둥이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베개싸움에서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서장훈과 박혁권 등을 차례로 제압하며 파죽의 5연승을 달리기도 했다. 그날 개그맨 김영철이 노래로 불러 유행어가 된 "힘을 내요 슈퍼파워"가 바로 현주엽을 위한 응원가였다.

'무한도전' 이후 현주엽은 지상파, 케이블, 종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서장훈이나 안정환 같은 스포테이너로서의 길을 걷는 듯 했다. 다만 현주엽은 고정보다는 주로 패널로 많이 출연하면서 농구 해설위원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은퇴 후 코치나 감독 등 현장 경험이 전혀 없었던 현주엽의 프로팀 감독 선임이 그나마 덜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 해설 활동을 통해 경기장에서 자주 얼굴을 비췄기 때문일 터.

LG는 이번 시즌 23승31패의 성적으로 10개 구단 중 8위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LG는 가드 김시래, 슈터 조성민, 센터 김종규 등 포지션마다 국가대표급 선수를 보유한 스타군단이다. 구단에 대한 홈팬들의 사랑도 남다르다. 좋은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고 조직력을 잘 가다듬는다면 결코 하위권에 맴돌 팀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음 시즌 현주엽 신임 감독의 지도력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현재 KBL은 SK 문경은 감독과 삼성의 이상민 감독(이상 연세대), 인삼공사의 김승기 감독(중앙대), KCC의 추승균 감독(한양대) 등 농구 대잔치 시대를 풍미했던 90년대 대학농구의 스타 출신들이 대거 프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여기에 고려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현주엽 감독까지 가세했다. 다음 시즌 KBL에서는 20년의 세월을 뛰어 넘은 스타 출신 감독들의 자존심 대결이 농구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L 창원LG 세이커스 현주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