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닐슨코리아 기준), 지난 19일 KBS가 주관한 2차 대선 후보 TV토론회의 시청률이다. 13일에 열렸던 SBS 토론회(1부 11.6%, 2부 10.8%)보다 2배 이상 뛰었다. 시청 점유율은 무료 43%에 달했는데, 당시 TV를 틀었던 시청자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사람들이 토론회를 지켜봤던 셈이다. 생방송, 스탠딩 토론, 자료 없이 펼치는 자유토론이라는 요소들이 불러일으킨 기대감과 궁금증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보다 최악의 토론회는 없었다고 할 만큼 수준 이하였다.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중에서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중에서 ⓒ KBS


높은 시청률, 그러나 최악의 토론회

'스탠딩'은 말 그대로 '서 있기만 해야 하는' 의미에 국한됐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후보들이 왜 서서 토론을 해야만 했는지 원론적인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정말 '건강 검진'을 위한 것이었나? 또, 왜 자료 없이 토론을 시켰는지 그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물론 앵무새처럼 원고를 읽는 대통령을 경험했던 탓에 제법 수준 있는 대통령을 원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대본을 비롯해 그 어떤 자료에도 의존하지 않은 상태에서 토론 배틀을 벌여 진정 준비된 후보가 누구인지 가려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기대하기엔 (미안하지만) 19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의 토론 능력은 (전반적으로) 수준 미달이었다. 게다가 5자 토론이라는 현실에서 차용하기 어려운 형식이었다. KBS는 의기양양하게 '9분 발언 총량제'를 도입했지만, 역시 후보가 5명이나 되다 보니 말이 뒤엉켜 난장판을 연상케 할 만큼 정신이 없었다. '초시계'로 전락한 사회자는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결국,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후보에게 질문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문 후보는 방어에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중에서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중에서 ⓒ KBS


"마치 문재인 대통령을 4야당 대표가 각자의 무기를 들고 몰아치는 듯했다. 홍준표는 색깔론으로, 유승민은 재원(財源)론과 핵무장론으로, 심상정은 더 많은 진보론으로 몰아쳤다. 안철수의 무기는 불분명했다. 문재인은 집권 후 닥칠 일을 연습했고 나머지는 각자의 방식으로 야당을 연습했다" (조국 교수)

문 후보(와 그 지지자들)로서는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조국 교수의 말을 위안 삼으면 될 일이다. 그것이 여론조사 1위 후보와 지지자들이 보여줘야 할 품격과 여유가 아니겠는가. 이번 KBS 토론회를 가장 최악이라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토론' 그 자체라기보다는 토론회가 끝난 후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쏟아진 문 후보 지지자인 듯한 이들의 반응 말이다. "비례대표 정당 투표할 때 항상 정의당을 찍었는데 이제 그만하겠다"단다. 그 이유는 문 후보와 공동 전선을 펼치지 않고, 되레 신랄히 비판을 했기 때문이란다.

"모두 1등 후보 공격, 심 후보마저 편승하는 것을 보니 정의당이 정의가 아닌 듯하다."(송영길 민주당 선대위 총괄본부장)

토론이 끝나자 송영길 민주당 선대위 총괄본부장은 공지영 작가가 심 후보를 비판한 글을 리트윗하며, "정의당은 온몸에 화살을 맞으며 버티는 문에 칼질하는 정치공학적 접근시정필요"라는 글을 올렸고, "숟가락 심상정"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아마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심 후보가 문 후보를 몰아치자 적잖이 배신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심 후보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냈던 다수의 문 후보 지지자들의 심정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물론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싶어하는 그들의 뜻을 모르는 건 아니다.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중에서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중에서 ⓒ KBS


심상정에게 쏟아진 비난

하지만 한 정당의 대선 후보가 타당의 후보에게 (그것도 정당한) 질문과 비판을 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황당한 일 아니겠는가. 당선을 목표로 선거를 뛰고 있는 후보에게 이러한 요구는 부당한 것 아닌가. 이에 대해 박원석 정의당 공보단장은 "심 후보는 민주당을 돕기 위해 출마한 것이 아니다. 공격이든 방어든 스스로 하라"고 맞받아쳤다. 지난 KBS 토론회에서 심 후보가 문 후보에게 질문(과 비판)했던 포인트는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 변화에 대해 지적하며)

심: 문재인 후보님, 6차 핵실험하면 사드 찬성하시겠다는 겁니까?
문: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중국이 제어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배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답을 했죠 제가 정확하게

심: 저는 우리 문재인 후보께서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말씀하실 때 굉장히 당혹스러웠습니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은 평론가의 언어지 정치 지도자의 언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미온적 태도를 지적하며)

심: 국가보안법 얘기를 하셨기 때문에 제가 이어서 묻겠는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국가보안법은 박물관에나 보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왜 폐지하지 못합니까? 국가보안법 왜 페지하지 않으시려고 하십니까?
문: 폐지 반대한 적 없습니다.

심: 그럼 폐지를 한다고 하셔야죠.
문: 여야 간의 합의가 7조 폐지 쪽에는 모아졌으니 그것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심: 그건 몇 년 전 이야기 아닙니까. 그건 몇년 전 참여정부 때 얘기고요. 대통령으로서 자기 소신을 밝혀야 되지 않습니까?
문: 제 입장은 그렇습니다. 제 입장은 지금 남북 관계가 엄중하기 때문에, 여아 간의 의견이 모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자는 것, 그것이 제 생각입니다.

3. (민주 정부 10년 동안의 노동 정책을 비판하며) 

심: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권의 경제 대국인데, 노동자들의 삶은 최악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노동하고, 비정규직 가장 많고, 저임금 노동자 비중도 높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의 처지가 왜 이렇게 참담하게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문: 노동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것이죠. 앞으로 다음 정부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 김대중 정부 때 정리해고법, 파견법 만들어졌죠. 노무현 정부 때 이른바 비정규직법 만들어졌죠. 지난 SBS 토론 때 지적을 드렸던 것처럼, 휴일 근로를 주 40시간제에 포함시키지 않아서 68시간 장시간 노동을 허용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2000년도에 그 지침이 나왔고, 참여정부 때도 시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민주 정부 10년 동안 제정된 이 악법들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 현실을 크게 규정했다고 생각해요. 그 점에 대해서 앞으로 잘하겠다, 이렇게 하시면 되는 겁니까? 법인세도 뚜렷하지 않고, 정리해고 요건 강화에도 입장을 유보하고 계세요.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크게 느끼신다면 그것을 더 극복하기 위한 더 극복한 제안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 (복지 공약 축소 의혹을 제기하며)

심: '복지 공약 후퇴는 대국민 사기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그동안 민주당 10년 동안 새누리당 정권을 향해서 비판했던 말입니다. 기억하시죠? 문 후보님 복지 공약이 굉장히 많은데, 증세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어요. 지난 총선에는 그나마 13조 7천 억 정도 증세 계획이 포함돼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것도 없습니다. 결국은 증세 없는 복지, 박근혜 정부 따라가는 것 아니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드 배치에 대해 입장을 변경한 부분이나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해서조차) 후퇴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부분들은 분명 '진보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노동 정책에서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니 얼마나 열불이 나겠는가. IMF 이후 노동 관련 악법을 잇달아 제정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을 최악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던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오히려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노무현 정부 당시 구속된 노동자가 천 명이 넘는 불편한 진실을 잊어선 곤란하다.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중에서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중에서 ⓒ KBS


"아니, 도대체 대북 송금이 도대체 몇 년 지난 이야기입니까. 매 선거 때마다 대북 송금을 아직도 울궈 먹습니까. 국민들 실망할 겁니다. 앞으로 대통령이 돼서 뭘 할 것인지를 말씀하셔야지, 그 선거 때마다 대북 송금 얘기 계속 재탕 삼탕하면 무능한 대통령이지 뭐예요, 그게."

심상정 후보는 민주당의 후보가 아니라 정의당의 후보이고, 문 후보의 당당한 경쟁지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정한 수의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정당의 후보다. 그가 토론회에 나와서 이런 말들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지지자들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심 후보가 '잘못'을 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심상정 후보의 '간단한' 질문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어물거렸다면, 그건 문재인 후보의 토론 능력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져야 마땅한 일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를 했던 심상정 후보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를 했던 심상정 후보 ⓒ 조선일보


오히려 심 후보는 '대북 송금' 문제로 코너에 몰렸던 문재인 후보를 구하러 뛰어들지 않았던가. 또, 지난 2012년 심상정 후보가 후보 등록을 포기하면서 "사실상 야권의 대표주자가 된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교체의 열망을 모아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던 사실을 잊어서도 곤란하다. 우리는 지나치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또 매우 중요했던 과거들을 잊은 채 당장 표면적 느낌들에 의존하는 것 아닐까.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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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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