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년 전이었다. 전주 KCC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상민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팀을 떠났다. '절친' 서장훈을 영입하려던 팀을 위해 자진해서 연봉 삭감까지 했던 터라 충격이 컸다. KBL의 어처구니없는 FA 선수 관련 규정이 만들어낸 비극이었지만, 이상민을 보호 선수에서 제외한 KCC 역시 비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상민이 누구인가. 9년 연속 '올스타전 팬 투표 1위'라는 기록이 보여주듯, 한국 농구 역사상 이상민만큼 큰 사랑을 받았던 선수는 없었다. 실력도 대단했다.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고, 연세대학교 시절에는 서장훈과 문경은, 우지원 등과 호흡을 맞추며 국내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성장했다.

이상민은 1992년 농구대잔치 신인상, 1993년부터 4년 연속 농구대잔치 베스트 5에 선정된 선수였던 만큼, 프로 생활도 매우 화려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프로에 데뷔한 1997·1998시즌, 이상민은 대전 현대 다이넷을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컴퓨터 가드'란 별명이 딱 알맞은 정확한 패스, 흠잡을 때 없는 경기 운영, 183cm의 키에 덩크슛까지 터뜨릴 수 있는 운동 능력과 3점슛까지, 강동희 이후 국내 최고 포인트 가드는 이상민이었다.

이상민은 1998·1999시즌에도 팀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다. 시즌 베스트 5는 당연했고, 프로농구 최우수 선수상 역시 그의 몫이었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4강전 필리핀과 맞대결에서는 극적인 버저비터 3점슛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며, 20년 만의 금메달 획득에 큰 역할을 했다. 2003·2004시즌에는 허재와 김주성이 버틴 원주 TG(현 원주 동부)를 맞아 승리를 따내며, 세 번째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도 성공했다.

이 정도면 한국 농구의 '전설'이자, KCC의 '레전드'로 손색없다. 그랬던 그가 '프로의 냉정함'을 느끼며 팀을 떠나야 했던 만큼, 그때의 상처는 지우기 어렵다. 서울 삼성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지만, KCC가 그의 등번호인 11번을 영구결번한 것은 미안한 마음의 표시였을지도 모른다.

삼성에서 준우승만 2차례, 이상민의 세 번째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KCC의 전설이었지만, 이상민의 삼성 시절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상민은 강혁, 이정석, 이시준 등과 함께 '가드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2007·2008시즌부터 2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도 진출했다. 다만, 최정점에 섰던 김주성(동부)과 하승진(KCC)의 높이를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2008·2009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1승 3패에서 3승 3패로 동률을 이뤄내며 마지막 7차전에 승부를 걸어봤지만, 하승진의 높이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결국, 이상민은 "다섯 손가락에 챔피언 반지를 끼고 은퇴하고 싶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농구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선수가 아니지만, 감독으로 네 번째 챔피언 반지 획득에 나선다. 2014년 4월 삼성 감독으로 취임해 꼴찌도 경험했고,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단단한 팀을 만든 만큼, 자신감은 넘친다.

물론 이상민 감독이 넘어야 할 안양 KGC가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무엇보다 KGC는 체력적인 부분에서 삼성에 많이 앞서있다. 올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KGC는 플레이오프를 3경기뿐이 치르지 않았다. 반면 삼성은 6강과 4강 플레이오프 모두 5경기씩 치렀다. 삼성이 KGC와 정규리그 맞대결에서는 4승 2패로 앞섰지만, 체력적인 면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성은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더욱 단단해진 팀의 모습에 기대를 건다. 삼성은 6강 플레이오프 전자랜드와 맞대결에서 1승 2패로 탈락 위기에 놓였었다. 이때 이상민 감독의 속을 꽤나 썩였던 마이클 크레익이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서, 삼성은 4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고양 오리온과 벌인 4강 플레이오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성은 고양에서 열린 1, 2차전에 모두 승리하며 손쉽게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라가는 듯했지만, 홈에서 열린 3, 4차전을 모두 패하며 승부를 마지막 5차전까지 끌고 갔다. 삼성의 운명이 결정될 마지막 5차전, 이번에는 이상민 감독의 속을 썩였던 김태술이 폭발했다.

이상민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전성기가 지났다', '부활은 어렵다'는 평가를 받던 김태술을 과감하게 끌어안았다. 삼성의 박재현과 오리온의 이현민을 트레이드했고, 다시 이현민과 KCC의 김태술을 맞바꿨다. 특히, 삼성은 김태술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다음 시즌 신인 선수 지명권까지 내줬다. 선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으면, 있을 수 없는 트레이드였다.

삼성에서 부활을 다짐한 김태술은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이상민 감독을 미소 짓게 했다. 특히, 올 시즌 1라운드에서 MVP를 수상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 화끈한 속공 및 공격 농구를 가능하게 했고, 삼성을 강력한 우승 후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김태술은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냈고, 시즌 초반과 같은 안정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정규리그 막판에는 부상까지 당하면서, 플레이오프를 앞둔 이상민 감독에게 큰 고민을 안겼다. 실제로 김태술의 플레이오프 활약은 최악이었다. 장기인 뱅크슛은 림을 돌아 나왔고, 패스와 경기 운영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불혹의 주희정이 많은 시간을 소화하며 그의 공백을 메웠지만, 삼성으로서는 김태술의 부활이 절실했다.

그래서였을까. 이상민 감독은 김태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오리온과 벌인 4강 플레이오프 5차전, 승부의 향방을 알 수 없는 4쿼터 막판 김태술은 3점슛을 터뜨리며 포효했다. 사실상 이 득점으로 승부가 결정됐고, 삼성은 챔피언 도전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김태술이 이상민 감독의 믿음에 보답한 것이다.

체력적인 열세만 이겨낼 수 있다면, 이상민 감독의 도전은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크레익과 김태술이 부활하면서, 삼성의 강렬했던 시즌 초반 모습도 되살아났다. KGC 데이비드 사이먼에 특히 강한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문태영, 김준일을 앞세워 골밑의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도 이상민 감독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정확히 10년 전, 이상민 감독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우승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돌아온 것은 '냉정한 현실'이었다.

당시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다면, 2차례의 준우승으로 삼켜야 했던 아쉬움도 털어낼 수 있다. 과연 이상민 감독은 10년 전의 아픔을 날려버리고, 선수 시절 이루지 못한 마지막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이상민 감독이 과거의 아픔을 씻어낼 최고의 순간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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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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