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모태로 하고 있는 삼성은 스포츠 부문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명문이었다. 전통의 일등주의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다양한 종목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며 국내 스포츠 역사를 선도하는 명가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정경유착으로 인한 모기업의 이미지 추락-오너의 구속-구조조정으로 인한 스포츠단의 투자 위축 등 잇단 악재와 맞물려 영원히 해가 지지않을 것같은 '삼성 왕국'에도 잇달아 암흑기가 찾아왔다. 야구-축구-배구 등 삼성 소속 구단들이 나란히 전례없는 동반 부진에 빠지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 2016시즌 7시즌 만에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9위라는, 창단 이래 역대 최악의 팀 순위를 기록했다. 이어 올시즌에는 초반부터 최하위로 추락하며 3승 1무 13패로 승률이 1할대(1할8푼8리)에 불과하다. 2011년부터 4년 연속 한국시리즈 통합우승과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에 빛나던 삼성이 리그 최약체팀으로 전락하는 데는 불과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삼성은 지난 겨울 투타의 주축이던 최형우(기아)와 차우찬(LG)마저 잇달아 팀을 떠나면서 전력이 더욱 약해졌다는 평가다. 삼성 야구는 프로 원년 이래 아직까지 최하위를 기록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역대 최약체 전력으로 꼽히는 올시즌에는 불명예 기록을 깰 가능성도 대단히 높아졌다.

무승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원 삼성

프로축구를 대표하는 명가로 꼽히던 수원 삼성도 올시즌 6라운드까지 5무 1패의 부진에 빠지며 무승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체 12개 구단중 10위다. 개막 이후 아직까지 승리가 없는 팀은 수원과 최하위 인천(3무 3패) 두 팀 뿐이다.

지난해 FA컵 우승으로 겨우 체면을 세웠지만 리그에서는 하위 스플릿 추락의 굴욕을 피하지 못했던 수원은 아직 초반이지만 이 페이스라면 올시즌 2년연속 하위스플릿은 물론이고 강등까지 걱정해야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16일 광주전 0-0 무승부 이후에는 흥분한 일부 극성팬들이 선수단에 오물을 투척하고 욕설을 퍼붓는 사건까지 일어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고참 수비수 이정수가 전격 은퇴를 선언하는 등 여전히 후폭풍이 거세다.

또한 남자배구를 대표하는 강호로 군림했던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는 지난 3월 창단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실패했다. 지난 시즌 사상 최초로 챔피언결정전에 오르지못한데 이어 2년 연속 구단 최악의 성적을 경신했다. 최근 삼성화재는 임도헌 감독이 물러나고 구단의 레전드 출신인 신진식 수석코치를 신임감독으로 낙점하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삼성 스포츠가 너나할 것 없이 동반 침체기를 맞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것이 바로 남자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다. 이상민 감독이 이끄는 삼성은 최근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여 22일부터 안양 KGC 인삼공사와 7전 4선승세의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있다. 삼성이 챔프전에 진출한 것은 2009년 이후 무려 8년만이며 마지막 우승은 2005-06시즌으로 무려 11년 전이다.

삼성은 80년대 실업 삼성전자 시절부터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명문구단으로 군림해왔지만 프로에서는 오히려 실업 시절만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편이다. 삼성의 프로 우승은 2회(2000-01, 2005-06)로 라이벌 전주 KCC(5회)나 울산 모비스(6회), 원주 동부(3회) 등에 비하여 뒤처진다. 2000년대 초반부터 9년연속 PO진출(2003-2011)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꾸준한 성적을 올렸지만, 최근 몇 년간은 야구, 축구 등 다른 종목들보다 더 일찍 암흑기를 맞이하며 최하위권을 전전하는 부침을 겪었다.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두터운 인기 누렸던 이상민

올해로 3년째 삼성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상민 감독은 부임 첫해 11승 43패로 최하위를 기록하며 창단 최악의 성적을 경신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6강진출에 성공했고 올시즌에는 마침내 챔프전 무대까지 밟으며 삼성농구의 재건에 성공했다. 특히 올시즌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인천 전자랜드와 고양 오리온을 잇달아 최종 5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른 끝에 극적으로 챔프전까지 진출했다.

만일 올시즌 삼성이 정상에 오른다면 이상민 감독은 프로무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역대 두 번째 인물이 된다. 현재 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은 허재 현 국가대표팀 감독(전 전주 KCC 감독)이 유일하다.

'산소같은 남자'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이상민 감독은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두터운 인기를 누렸던 슈퍼스타 출신이다. 흔히 스타 출신은 지도자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역시 '농구대통령'으로 불리우던 허재 감독이 KCC 지휘봉을 잡고 두 번이나 정상에 오르며 이런 속설을 불식시켰고 이제는 이상민 감독이 그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만일 이상민 감독이 올시즌 정상에 오른다면 허재 감독과는 묘한 평행이론을 이루게된다.  허재 감독도 첫 우승을 차지했던 2009년 당시 정규시즌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6강-4강-챔프전까지 모두 최종전까지 치르는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특히 당시 결승에서 패배를 안긴 상대가 바로 이상민 감독이 현역으로 뛰고 있었던 삼성이라는 것도 묘한 인연이다. 허재 감독도 이상민 감독처럼 사령탑 부임 초기에 꼴찌(2006-07시즌)를 기록한 바 있다. 이상민 감독이 우승을 차지한다면 허재 감독에 이어 한 팀에서 꼴찌와 우승을 모두 체험하는 이색적인 기록도 세우게 된다.

이상민 감독은 사실 '원조 삼성맨' 출신은 아니다. 이상민 감독은 현역 시절 KCC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며 팀을 세 번이나 정상으로 이끌었지만 2007년 보호선수 지명으로 최대 라이벌팀이던 삼성으로 이적했다. 당시 이상민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하며 삼성으로 이적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바로 허재 감독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지금도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쇼킹한 이적사례로 거론된다. 이후 이 감독은 삼성에서 3시즌을 활약한 이후 은퇴했고 코치를 거쳐 2014년부터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이제는 완전한 삼성맨으로 거듭났다.

22일부터 진행되는 챔프전에서 삼성이 상대해야 하는 팀은 정규리그에서 우승한 안양 KGC 인삼공사다.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삼성은 인삼공사에 비하여 열세로 평가된다. 하지만 삼성은 정규시즌 전적에서 4승 2패로 오히려 인삼공사에 강한 모습을 보인만큼 승부는 장담할수 없다. 이상민 감독이 이끄는 썬더스가 부진의 늪에 빠져있는 삼성 스포츠의 마지막 자존심이 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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