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막 겨울로 넘어가던 작년의 일이다. 아직 난방을 틀만큼 춥다고 여기지 않아서였는지 관리실에선 보일러를 켜주지 않던 때였다. 하지만 조금 쌀쌀한 정도였던 낮 시간이 지나면 기온은 뚝 떨어졌고 바닥에선 한기가 올라왔다. 결국 솜이불로도 그 차가움을 막을 수 없는 때가 왔고,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고장난 전기 장판을 바꾸거나 매트리스라도 들이거나. 하지만 그 대신 나는 밤이면 두터운 파카를 꺼내 입고 잠에 들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새로 이사간 집이 생각보다 너무 추운데, 보일러는 아직 수리 중인데다 월급도 아직 들어오지 않아 전기 장판도 사지 못했다며 침울해 했다. 위로 혹은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입에선 이런 소리가 나왔다.

"집에 겨울 잠바 없어? 그거라도 입고 자."

한동안 의문으로 남았다. 나와 친구는 그런 식의 무심한 상처를 줄 만큼 서로를 아끼지 않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나도 당연히 그리 살고 있으니 친구도 그럴 수 있으리라 여긴걸까. 여지껏 부인해왔지만 사실 그 시기 나는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운 때였고 그래서 집을 가꾸거나 나를 돌보는 것은 완전히 관심 밖에 있었다. 누구나 살면서 그런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종종 이런 일은 집단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 19일 오후 7시 올랜도 다운타운 레이크 이올라 파크에서 열린 촛불 추모집회에 온 한 여성이 동성애자들을 지지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5만 여명이 모였다. ⓒ 김명곤

19일 오후 7시 올랜도 다운타운 레이크 이올라 파크에서 열린 촛불 추모집회에 모인 올랜도 시민들이 총기난사로 숨진 49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53명의 부상자들의 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 김명곤


가령 나는 올란도 게이 클럽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을 때, 트럼프의 당선으로 노골적인 혐오 폭력이 기승을 부리던 때의 성소수자 친구들을 기억한다. 당사자로서 이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공동체 전반에 비통함이 흘렀다. 모든 신경이 우울한 정서에 쏠려 있을 때, 그 친구들은 일상의 즐거움이나 소소한 행복 따위는 말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대부분 무표정 하거나 괴로워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무력함과 혼란에 압도된 상황에서 자신을 챙기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Hey You>가 전하는 운동의 중요한 원칙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그 시간 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때로 거리로 나서거나 장문의 글을 쓰며, 혹은 일상 생활 속에서 혐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며 마주한 상황들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말하자면 흔히 말하는 투쟁이나 운동을 한 셈이다. 물론 이런 실천들은 분명 친구들의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린 구석도 있다.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스스로가 원한다고 쉽게 분리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마돈나의 앨범 < Hey you >

마돈나의 < Hey you > ⓒ Madonna


그래서일까? 현장에서 그런 절박한 목소리를 듣다보면 사회적 투쟁을 이상적으로 찬미한 노래들에 냉소적이어지곤 했다. 마돈나의 <Hey You>도 그런 노래들 중 하나였다. 이 노래의 가사 중 하나가 '우리의 축제는 밤새 계속될거야'였다. 축제? 죽지 못해 사람들은 뛰쳐 나왔는데 이게 무슨 축제란 말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노래를 늘상 떠올리고 듣게되는 이유가 있다. 노래의 절정에서 마돈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선 너 스스로를 사랑해라, 그러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네가 다른 사람들은 변화시킨다면, 그들을 구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노래 전반에 배치된 듣기 좋고 당연한 말들과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가사가 운동의 중요한 원칙을 간명하게 짚어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것이 당사자 운동일지라도 나만 잘 살자고 그 일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다. 공동체에는 같은 조건으로 묶인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래서 운동은 집단 전체를 위해 이루어진다. 이것은 아무리 자신과 멀지라도 공통성을 지닌 이들의 비극에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지 못해 결국 소진되어 버린다면, 어떻게 다른 누군가의 삶을 구해내겠는가. 내가 살지 못하면 남도 살릴 수 없다.

우리가 서로를 아낄 수 있는 조건

<Hey You>의 가사가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또 하나가 있다. 바로 내가 다른 사람을 아낄 수 있는 조건에 관한 것이다. 단체에 가입하고 활동에 참여하며, 나는 운동이란 결국 헌신에 관한 문제라고 여겼다. 누구도 그렇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사회를 바꾸는 싸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얼마나 스스로를 내던지고 희생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단적인 고통을 마주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전혀 돌보지 않은 때가 많았다.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고 해결은 커녕 여파도 가시지 않은 시기에 그런 일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일상이 그런 사건들에 묻혀버리고 분노와 무기력함으로 삭막해진 생활이 만성이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불행을 겪는 이들에게 '원래 그런거야, 특별한 일 아니야'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고, 추위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친구에게 "겨울 외투를 입으면 되지"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공감과 애정이 서려있다고 볼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무력감은 현실적이다. 부조리한 상황을 단숨에 바꿀 수 있는 개인은 없다. 문제는 항상 거대할 수 밖에 없고 그 앞에서 우리는 작아지길 반복한다. 모인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진전은 더디고 사람들이 관심조차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에 너무 큰 힘을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면하고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만과 외면은 결국 더 큰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수용과 협상이다. 필연적인 우울과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감정들에 함몰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방치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삶의 매마름이 너무나 당연한 조건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같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그것이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라고 느끼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까.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고 그래야만 한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3일 오전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군 동성애 색출 지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소장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6항 추행죄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는 제보를 올해 초 복수의 피해자들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2017.4.13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3일 오전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군 동성애 색출 지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소장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6항 추행죄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는 제보를 올해 초 복수의 피해자들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2017.4.13 ⓒ 연합뉴스


사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얼마전 벌어진 육군 내 동성애자 탄압 사건과 그것에 대한 성소수자 친구들의 반응을 보면서 였다. 친구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같은 나라 안에서,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들이 존재 자체만으로 범죄인냥 색출당하고 처벌까지 받게 될 위기에 놓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특히나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참여하거나 관심을 기울이던 이들은 더욱 그랬다. 스스로가 추구하던 가치가 완벽하게 무너지는 것은 큰 고통이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나도 아파했고 암담해 했으며 무력감을 호소했다. 그런 감정들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기에 안타까움과 우려가 컸다. 언젠가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속에서 친구들이 함몰되진 않을지, 스스로를 지나치게 돌보지 않아 사실상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경고를 하거나 도덕적 책무까지 부여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부조리한 비극 탓에 지나치게 매말라져버린 나머지 결국 서로에게 나눌 애정과 친밀함도 모자라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말하고 싶다. 아마 내가 걱정하는 이들 중 누구도 그런 결과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막 사건이 터진 시점에선 성급한 이야기일지라도 미리 부탁해두고 싶다.

때로는 문제를 놓아두는 시간도 가지자.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고 누워 있어도 좋고 하루 종일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정신을 놓고 있어도 좋다. 삼삼오오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 날의 좋았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어도 괜찮다. 미용실에 가서 평소 해보고 싶던 머리를 해봐도 된다. 이 끔찍한 세상과 당신을 짓누를 감정 속에서도, 당신은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되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일상을 소소한 행복들로 채우길 포기하지 않을 때, 그 때에 고꾸라진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Hey You> 마지막 가사를 공유하며 글을 닫고자 한다.

"우선 너 스스로를 사랑해/ 그러면 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 만약 네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넌 그 사람들을 구하게 된 셈이야/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먼저 해야하는 일이 있어(But you must first love yourself/ Then you can love someone else/ If you can change someone else/ Then you have saved someone else/ But you must first)"

마돈나 HEY YOU 운동 사랑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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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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