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농구만화 '슬램덩크'를 보면 전국 최강 산왕 공업고의 주전 센터 신현철의 친동생 신현필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210cm 130kg의 엄청난 신체조건을 자랑하지만 기본기가 약했던 신현필은 도진우 감독으로부터 큰 체구를 이용한 포스트업 공격을 집중적으로 훈련 받는다. 물론 주인공 보정을 받은 강백호를 만나는 바람에 금방 밑천이 드러났지만 초심자였던 신현필을 경기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다.

두산 베어스의 좌완 투수 유희관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구속이 매우 느린 투수다. 유희관도 프로 초창기에는 구속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구속이 늘어나긴커녕 오히려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는 역효과가 생기고 말았다. 결국 유희관은 구속을 쫓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인 제구력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고 오늘날 베어스 역대 좌완 최다승 투수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미프로농구(NBA)에도 좋은 신체조건과 엄청난 운동 능력을 자랑하는 선수가 있다. 하지만 그의 저주받은 농구 지능(BQ) 때문에 프로 데뷔 후 10년 동안 5개 팀을 옮겨 다니는 저니맨이 됐다. 그런 그가 이번 시즌 놀랍게도 우승에 도전하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쏠쏠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주는 감독과 동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시즌 모든 NBA 선수들의 꿈인 우승반지를 끼게 될지도 모를 자베일 맥기 이야기다.

 맥기는 워리어스 이적 후 비로소 농구 선수로서 행복을 찾았다.

맥기는 워리어스 이적 후 비로소 농구 선수로서 행복을 찾았다. ⓒ NBA.com



뛰어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을 따라가지 못했던 맥기의 농구 지능 

네바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NBA에 도전장을 던진 맥기는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8순위로 워싱턴 위저즈에 지명됐다. 당시만 해도 맥기가 동갑내기이자 드래프트 동기 디안드레 조던(LA클리퍼스)과 함께 '동맥기 서조던'이라 불리며 전세계 NBA팬들의 놀림거리가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물론 오늘날 조던은 2016년 리우 올림픽 드림팀 멤버로 선발될 정도로 NBA 정상급 수비형 센터로 성장했다).

NBA 입성 후 두 시즌 동안 식스맨으로 활약하던 맥기는 2010-2011 시즌 주전 센터 브랜든 헤이우드(은퇴)가 팀을 떠나면서 워싱턴의 주전 센터로 도약했다. 비록 화려한 득점력을 자랑하는 공격형 센터는 아니었지만 든든한 골밑 수비와 림 보호 능력을 갖춘 괜찮은 센터가 될 가능성을 보였다. 맥기는 2011년 올스타전 덩크 콘테스트에 참가, 골대 2개를 설치해 덩크를 성공시키는 멋진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는 맥기의 BQ가 떨어진다고 판단해 2012년 3월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맥기를 덴버 너기츠로 보냈다. 그리고 디안드레 조던이 닥 리버스 감독을 만나 개과천선한 것과는 달리 맥기는 덴버에서 본격적으로 개그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스포츠 채널 TNT의 인기프로그램 '샥 틴 어플'에서는 맥기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샥 틴 어플'은 매주 NBA 선수들의 실수 장면들을 모아 방영하는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으로 샤킬 오닐이 고정패널로 출연해 선수들에게 거침없는 독설을 남기곤 한다. 그런 오닐이 특히 아끼던(?) 선수가 바로 맥기였는데 2013-2014 시즌 5경기 만에 맥기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자 오닐은 "맥기, 우리 쇼는 네가 필요해"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물론 맥기 본인은 자신이 그 프로그램의 '에이스'가 된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맥기는 2015년 2월 다시 트레이드를 통해 필라델피아 76ers로 이적했고 그 해 8월에는 댈러스 매버릭스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단 34경기만 출전한 채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제 NBA에서는 더 이상 맥기를 받아들일 팀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하지만 맥기는 이번 시즌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것도 지난 시즌 정규리그 역대 최고 승률 기록(89%)을 세운 골든스테이트였다.

커 감독 만나 준수한 백업센터로 변신한 맥기 

골든스테이트는 지난 시즌 우승이 끝난 후 리그 최고의 득점기계 케빈 듀란트를 영입하기 위해 앤드류 보거트(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페스터스 에질리(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모리스 스페이츠(LA클리퍼스) 등 기존의 빅맨들과 대거 결별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자 파출리아와 데이비드 웨스트 같은 좋은 빅맨들을 확보한 상태에서 굳이 NBA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맥기와 계약한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골든스테이트의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팀을 NBA 파이널 우승으로 이끈 스티브 커 감독은 '맥기 사용 설명서'를 가지고 있었다. 커 감독은 맥기의 엄청난 운동능력에 취해 그를 장시간 코트에 방치(?)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대신 경기당 10분 안팎의 출전시간 만을 부여하며 코트에 들어간 시간 동안 림을 보호하고 스테픈 커리와 드레이먼드 그린의 패스를 받아 쉬운 득점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맥기는 이번 시즌 77경기에 출전해 6.1득점 3.2리바운드 0.9블록슛을 기록했다. 비록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절에 비해 전체적인 기록은 많이 하락했지만 데뷔 후 가장 높은 65.2%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했다.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황당한 실수도 대폭 줄어 들었다. 맥기는 감독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시한폭탄 같은 선수에서 짧은 시간에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유용한 백업센터로 거듭났다.

맥기의 활약은 플레이오프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 특히 주포 듀란트가 종아리 부상으로 결장했던 포틀랜드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2차전에서 맥기는 단 13분 동안 출전해 15득점 5리바운드 4블록슛을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7개의 야투를 시도해 7개를 모두 적중시키는 엄청난 효율을 과시했다. 맥기의 알토란 같은 활약 덕분에 골든 스테이트는 포틀랜드를 110-81로 가볍게 누르고 홈에서 2연승을 거뒀다.

맥기는 작년 12월 자신의 SNS에 "내 농구인생 동안 이보다 즐거운 적은 없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맥기도 10년 가까이 여러 매체와 농구 팬들에게 놀림을 당하면서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맥기는 황금전사들과 함께 하는 한 슬프거나 외롭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장점을 잘 아는 감독과 이를 코트에서 완벽하게 활용할 줄 아는 든든한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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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자베일 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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