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리스>의 한장면

<모놀리스>의 한장면 ⓒ 이언픽쳐스


왕년의 아이돌 스타 샌드라(카트리나 보우든 분)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살배기 아이의 엄마다. 그는 남편 칼이 선물한 최첨단 인공지능 SUV 자동차 '모놀리스'를 타고 아들 데이비드와 함께 부모님 댁을 향한다. 운전 중 칼과 통화하던 샌드라는 이상한 낌새를 느낀 끝에 칼이 자신의 친구와 외도를 저질렀다고 의심하고, 결국 남편이 있는 LA로 목적지를 바꾼다. 인적 드문 밤길을 달리던 자동차는 샌드라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사슴과 충돌하고, 샌드라가 놀라 차 밖으로 나온 사이 대형 사고가 터진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데이비드로 인해 차 문이 잠긴 것. 온갖 수를 써도 끄떡 하지 않는 자동차에 샌드라는 점점 초조해지고, 휑한 사막 한복판에서 하루를 꼬박 지새우며 차 안에 갇힌 아들을 두고 전전긍긍한다.

영화 <모놀리스>는 이른바 '스마트 자동차'라는 소재를 이용해 기술의 양면성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초강력 소재와 첨단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모놀리스'는 어떤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가장 튼튼한 자동차이자 사용자의 편의에 초점을 맞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자동차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안전'과 '편의성'으로 대변되는 이 자동차가 인간을 위협하는 강력한 힘으로 변모하는 지점이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막는 밀폐성이 반대로 내부의 생존을 위협하고, 인간의 편의를 위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모놀리스>의 한장면

<모놀리스>의 한장면 ⓒ 이언픽쳐스


말 그대로 '안에서 잠긴' 모놀리스는 일종의 난공불락으로서 묵직하게 서사의 중심을 관통한다. 돌덩이는 물론 거대한 몽키스패너로 실컷 내리쳐도 실금 하나 가지 않는 자동차 앞에서 샌드라의 그 어떤 시도도 무력하기만 하다. 눈앞에 아들을 두고도 구해내지 못하는 샌드라의 처지는 조금씩 탈진 상태로 치닫는 데이비드의 모습과 교차되며 불안감을 더한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 아래 점점 뜨거워져가는 자동차 안에서 눈물 범벅이 되어 빨갛게 익어가는 데이비드의 얼굴은 보고 있기 힘들 정도다. 그렇게 휑한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선 샌드라의 무력감은 스크린 밖에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아들을 구하기 위한 샌드라의 사투에 초점을 맞춘 서사와 연출은 다분히 경제적이라고 할 만하다. 샌드라가 결혼 전 '힙스타즈'란 걸그룹으로 활동했다거나 당시 유부남이었던 칼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등의 전사, 그리고 영화 초반부 잠시 등장하는 20대 남녀 불량배와의 에피소드까지. 도입부의 몇몇 에피소드들은 딱 호기심을 돋우는 정도의 역할만을 수행한 채 가볍게 지나간다. 여기에 데이비드에 대한 샌드라의 독백, 상상 속 장면들 또한 그가 느끼는 연민과 책임감, 자괴감을 짤막하고도 효율적으로 조명한다. 드라마에 치우치는 대신 사건과 심리에 방점을 찍는 영화의 태도는 군더더기 없이 스릴러를 부각하는 할리우드 장르물로서 손색이 없다.

 <모놀리스>의 한장면

<모놀리스>의 한장면 ⓒ 이언픽쳐스


세련된 만듦새에 비해 사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몇몇 설정은 다소 아쉽다. 특히 영화의 주요 모티프인 인공지능 SUV 모놀리스의 알고리즘은 곳곳에서 구멍이 발견된다. 좌석에 앉은 사람을 감지하고 몸무게까지 측정 가능한 인공지능이 정작 홀로 남은 데이비드를 위해 어떤 조치도 하지 않는 점, 그리고 스마트폰 이외에는 어떤 방식으로도 차 문을 열 수 없다는 점은 퍽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배우 카트리나 보우든의 감정 연기와 모성애를 자극하는 두 살배기 아이는 단순한 서사를 든든히 견인하지만, 러닝타임 대부분을 우뚝 서있는 모놀리스는 무력감을 넘어 답답함마저 자아낸다. 이는 한편으론 인공지능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감독의 메시지로도 읽힌다. 20일 개봉.

모놀리스 인공지능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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