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3년을 기다렸다. K리그와 안양이 꿈에 그리던 경기가 드디어 펼쳐졌다.

지난 19일 수요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KEB하나은행 FA컵 32강전에서 FC서울(서울)과 FC안양(안양)의 경기가 있었다. 안양 팬들은 물론이고 K리그 팬들 모두가 기다리던 매치업이었다.

지난 2004년 '안양 LG 치타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K리그를 호령하던 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두 팀의 악연은 시작됐다. 여러 가지 이유가 겹치면서 수원 삼성·성남 일화(현 성남FC)와 함께 리그를 주도하던 안양은 본래의 연고지를 뒤로 한 채 서울 연고 이전을 결정했다.

충격 그 자체였다. 최용수·이영표 등 거물급 스타들이 거쳐갔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K리그의 강팀으로 불리던 팀이 하루 아침에 없어진 것이다. 안양의 지지자들은 삭발 투쟁부터 LG 제품 불매 운동 등을 벌이며 안양의 연고 이전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렇게 사라졌던 팀이 2012년 다시 부활했다. 안양 시민들의 노력에 힘입어 안양시를 대표하는 시민 구단 형태로 FC안양이 태어났다. 이때부터 K리그 팬들은 고대했다. 서울을 '철천지 원수'라 여기는 안양과 K리그의 강호로 자리잡은 서울의 맞대결을 말이다.

만남 자체가 역사인 대결

 서울 팬들마저 감탄하게 만든 안양 서포터즈의 퍼포먼스.

서울 팬들마저 감탄하게 만든 안양 서포터즈의 퍼포먼스. ⓒ 봉예근


K리그의 문제점 중 하나가 '라이벌 구도의 부족'이다. '더비 경기'라고 명명되는, 같은 연고지 팀 간의 대결이 가장 흥미롭지만, 축구 팀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한국에서 더비 경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K리그의 대표 상품인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인 '슈퍼 매치'와 지난 해 수원FC의 K리그 클래식 승격으로 성사된 수원 삼성과 수원FC의 '수원 더비'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라이벌 매치는 부족하다.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가 맞붙는 '동해안 더비',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의 '현대가 더비' 등 여러 라이벌 구도가 있지만 인위적인 느낌을 준다.

물론 지난 시즌 수원FC와 성남FC의 구단주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두 팀의 '깃발 더비'는 대중과 미디어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두 팀 모두 챌린지 무대로 떨어지고 구단주들 또한 지난 해 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자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1년짜리 단기 라이벌로 그친 모양새다.

그러나 안양과 서울의 만남은 다르다. 대중이 원하던 매치였고 두 팀 팬들의 반목도 크다. 진정한 의미의 '라이벌 매치'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첫 만남이었지만 안양은 '북패(서울을 비하하는 단어)'가 쓰여진 걸개로 서울을 자극했고, 서울은 안양 창단 당시 안양에 흡수 합병된 '고양 KB국민은행의 눈물을 기억하라'라는 걸개로 안양을 공격했다.

지난 시즌 K리그는 수원 더비가 만들어 낸 환상적인 경기 분위기와 미디어의 관심을 체감한 바 있다. 단순히 같은 지역에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기를 더 뜨겁게 만들어 줄 조건들을 갖춘 서울과 안양의 경기는 이제 다시 시작됐다. K리그를 선도할 새로운 더비가 시작된 것이다.

아직은 큰 두 팀의 간극

   양 팀의 전력 차는 아직 크다

양 팀의 전력 차는 아직 크다 ⓒ 프로축구연맹


안양 팬들과 2004년의 연고 이전 사건에 불만을 품은 다수의 K리그 팬들이 안양의 승리를 원했지만 승부는 냉정했다. 이날 호기롭게 서울 원정에 나선 안양 선수들은 실력과 경험 모두 서울에게 밀리면서 0대2 패배를 당했다.

K리그 챌린지에서 중위권에 위치한 안양이 전북 현대와 함께 수년간 K리그 클래식 무대를 선도하는 서울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양은 경기 초반부터 왼쪽 측면 공격수로 나선 조시엘의 돌파를 중심으로 서울의 수비에 균열을 가하며 안양 팬들을 흥분시켰다. 하지만 전반 27분 서울의 이상호가 오른쪽 측면에서 넘겨준 크로스를 윤일록이 헤더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았다. 수비 진형이 갖춰진 상황이었지만 순간 방심한 안양 수비진이 윤일록의 선제 득점을 야기했다.

전반 34분 터진 서울의 추가골은 안양에게 더욱 뼈아팠다. 코너킥 상황에서 안양 수비가 걷어낸 공을 주세종이 곧바로 중거리 슈팅으로 가져갔지만 공은 허무하게 공중에 높게 떴다. 모두가 방심한 순간 공의 낙하지점을 파악한 윤일록이 슈팅을 시도했다. 슈팅은 약하게 안양 김민식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지만 어이없게도 김민식이 공을 옆으로 흘리면서 추가골을 허용했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드높았던 안양 팬들의 응원 소리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반전 안양의 2실점으로 김이 빠질 것 같았던 경기는 후반전 들어 김민균을 중심으로 한 안양의 공격진이 힘을 내면서 달아올랐다. 안양의 '에이스' 김민균이 빠른 템포의 드리블과 패스로 서울 수비진을 곤경에 빠뜨렸지만, 서울의 골키퍼 유현이 결정적인 위기 때마다 슈퍼세이브를 보여줬다. 후반 중반부터 체력적인 한계를 보인 안양 선수들은 서울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큰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결국 패배했다.

이날 0대2 패배는 안양에게 명확한 과제를 던졌다. 실력에서 안양이 서울과의 객관적인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꿈에 그리던 복수극은 정말 꿈으로 그칠 수도 있다. 실제 라이벌 매치는 탄생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두 팀의 전력이 비슷해야 진정한 라이벌 매치로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맨체스터 더비', '마드리드 더비'와 같은 세계적인 더비들도 팀들의 격차가 큰 시기에는 라이벌 매치로서 빛을 잃었었다.

이제 시작이다. 아직도 수많은 문제와 무관심으로 고통받고 있는 K리그지만 이날 경기로 새로운 콘텐츠를 얻었다. 안양과 서울이 만들어 낼 수많은 이슈들은 K리그의 훌륭한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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