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을 소비하는 현재지만, 정작 우리 영화 관객들은 '정성일'이 <아발론>부터 짐작했지만, 생산자 입장에서 추정했던 미래, 혹은 '김영진'이 사가(史家)로 남을 것이라던 기존 영화와 연속성이 단절된 미래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씨네21> 2010년 766호). 만약 미래가 그러하다면, 영화 <더 플랜>과 <옥자>가 동시에 화제가 된 건 필연적이다.

두 영화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장르도, 감독의 표현 방식도, 제작비 규모도, 어떠한 목적도 다르다. 그런데 배급 과정이 기존 영화와 다르고, 그게 공통점이다. 영화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사실, 영화를 영화라고 우리가 여전히 부르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다. 만화를 웹툰, 책을 웹북이라고 호환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아직 다른 단어로 호환하지 않고 있는 이유다. 영화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영화관 배급 때문이다. 두 영화의 투자 배급 과정은, 기존 영화를 기준으로 하면, 다르다는 표현도 맞지 않는다. 틀리다. 그렇게 하는 건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두 영화는 우리 관객들에게 그렇게 질문한다. 그러면서 영화 관객은 영화티켓값을 무엇 때문에 영화관에 내고 있는지 묻는다. 서로 다른 두 영화가 닳고 닳아버린 디지털이라는 단어 안에서 똑같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옥자>가 영화일까?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이 작품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넷플릭스


칸 영화제가 <옥자>를 경쟁 부문에 초청한 뉴스는 영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옥자>가 영화인가? 칸 영화제는 전통적인 영화를 품평하는 행사다. 그런 영화제에서 주문형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넷플릭스가 투자한 콘텐츠를 영화라고 동의했다는 말인가?
칸 영화제는 <옥자> 뿐만 아니라 <메이어로위츠 스토리>까지 넷플릭스의 두 콘텐츠를 끌어들였다. 칸 집행위원장 발언에서 그 의도를 해석하면, 칸은 넷플릭스를 레드카펫 계단으로 인도해서, 그 화려함에 사로잡힌 넷플릭스가 앞으로도 콘텐츠를 영화관에서 먼저 배급하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칸이 초대한 이상, 칸의 바람이 실현되든 말든, <옥자>를 영화관에서 상영하든 말든, 메시지는 명확하다. 영화의 미래는 3D 같은 게 아니라 배급 과정의 변화일 수 있다.

<옥자>는 영화관에서 개봉한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현시점에서 <옥자>의 국내 배급사는 뉴(NEW)이기 때문에 확실해졌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넷플릭스 한국 홍보 담당 관계자는 <옥자>는 나라에 따라 넷플릭스 온라인과 극장에서 동시에 선보일 수 있고, 극장 개봉이 먼저 일 수 있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뒤끝뉴스] '옥자'는 정말 극장에서 볼 수 없나요?). 관계자 말에서 주의를 끈 것은 극장은 옵션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그나마 '감독 봉준호의 나라'이고 넷플릭스가 통신사 VOD 서비스보다 시장 지배력이 약하기 때문에 영화관은 더 후한 대접을 받을 뿐이다. 한국 관객은 전 세계 영화 관객 중에서 유일하게 <옥자>는 전통적인 영화라는 착시 현상을 겪을 수 있다.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이 작품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넷플릭스


영화는 영화관에서 개봉하고 부가적으로 다른 매체에서 상영한다.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종종 있는 'IPTV와 동시 개봉작'은 영화관 위주의 '영업'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마치 비디오 시절에 'OO극장 동시 개봉작'의 다른 모양일 뿐이다. 영화에게 영화관은 필연적인 숙주 매체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옥자>에게 영화관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다. 넷플릭스가 주문형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만큼 <옥자>는 영화관에서 개봉하든 말든 이다. 넷플릭스의 사업 구조 아래서 <옥자>에게 영화관은 부가적이고 선택적인 매체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에 영화관은 숙자 매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옥자>는 영화인가? 공부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는 <옥자>를 영화관에서 볼 것이다. 그런데 영화관이 아니어도 우리는 <옥자>만큼은 어떻게든 볼 것이다.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에 진출한 작품이니까. 그것도 각종 설문조사 선호도 1순위 감독, 봉준호 작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옥자>의 영화티켓값을 어떤 이유로 낼까? 인터넷이 탄생하면서부터 출시된 VOD 서비스가 던졌던 질문, 우리는 그 질문을 비로소 이제야 관객 입장에서 진지하게 던지게 된다. 다시, 우리는 영화티켓값을 왜 지불하고 있는가? 꼭 그 공간에 돈을 지급해야만 영화를 봤다고 할 수 있을까?

<더 플랜>이 영화일까?

 영화 <더 플랜>

ⓒ 엣나인필름


이거 봐라? 그랬다. <더 플랜>의 뉴스는 그렇게 깜짝 놀랐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보다 그 뉴스를 들었을 때가 더 놀라웠다.

<더 플랜>은 관객에게 여러모로 아주 특별한 영화일 수는 없다. 당장 그 표적과 방식과 배포 시기는 <화씨 9/11>이 선례로 떠오른다. <화씨 9/11>보다 <더 플랜>은 더 똑똑한 방식을 취했다. 영화에서 취한 가설-반론-검증 방식이 똑똑한 게 아니다. 그런 건 '루비아빠'들을 향한 러브레터 문법이다. 관객을 향한 태도가 똑똑하다. <화씨 9/11>이 부시 지지자들에게 이래도 지지할 거냐며 조롱했다면, <더 플랜>은 누구를 지지했든 간에 그건 유권자 탓이 아니라고 돌려서 말한다. 적어도 감성적으로 어느 유권자들을 특정해서 저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게 똑똑하다.

그래도 결국은 같은 영화다. 아마도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처럼 <더 플랜>은 주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고 그게 이 영화의 목적일 것이다. 도구로서 효과는 원심력보다는 구심력일 것이다. 당장 관람 독려성 리뷰들이 그렇다. 볼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 서로 독려하는 효과가 있겠으나, 반대로 보지 않을 사람들은 그런 리뷰에 반응은커녕 반발할 테니 서로 외면하는 셈이다. <화씨 9/11>이 그랬단 이야기다.

<더 플랜>의 소재도 미국 드라마 시청자 입장에서는 친숙하다. 미국 드라마 <스캔들>은 전자개표를 조작해서 당선된 대통령과 주인공 홍보전문가가 외도하면서 재선을 향해 시즌을 이어가고 있으며, 미국 드라마 <굿 와이프>는 주지사 남편이 '표떼기'로 당선됐다는 의심에 고발당해 사퇴하며 종영됐으며, 미국 드라마 <부통령이 필요해>는 은닉된 투표함이 있어서 주인공이 대선에서 낙선됐다는 걸 마지막 에필로그로 삼았다. 야비한 정치를 다룬 <보스>나 <하우스 오브 카드>까지 갈 것도 없으니 영화 목록은 아예 검색할 필요도 없다. <더 플랜>의 시도는 알겠는데, 그러한 '이야기'는 꽤 친숙하다는 게다.

<더 플랜>의 완성도도 의문이다. 제작자가 가성비 차원에서 완성도를 자찬했는데 영화를 가성비로 따져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상황을 인정하더라도 과연 그 정도인가는 의문이다. 물론 완성도 기준이라면 그건 전문가들이 답할 문제다. 관객으로서 영화평점가들의 별점이 궁금하기도 하다. 영화평점가들에게 바라는 바는 마치 <귀향>을 평가했던 딱 그 태도로 <더 플랜>도 평점을 매겨주길 바란다. 그러니까 현재성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천년만년 길이 남을 예술품 여부를 판정하던 그 기준으로 "제 점수는요"가 궁금하다.

 영화 <더 플랜>

ⓒ 엣나인필름


이거 봐라? 그랬던 뉴스는 <더 플랜>의 배급 과정이었다. <더 플랜>이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문자 그대로 독립영화였다. 우리는 지금 이상한 독립영화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아무리 인증시대라지만 독립영화나 예술영화가 정부기관이 인증해야 하는 그러하게 불리는, 전혀 독립되지 않은 독립영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더 플랜>은 '영화' 방식에서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

<더 플랜>은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무료로 먼저 공개하고, 극장에서 유료로 상영한다. 더 정확하게 하면, 선후는 그러하되, 현재 시점에서 무료와 유료가 공존한다. 관객은 <더 플랜>을 보려면 해괴망측한 선택을 해야 한다. 공짜로 볼 것이냐, 돈 내고 볼 것이냐.

관객은 더 큰 화면과 사운드를 통해 몰입감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공유하고 싶다면, 극장에 가서 돈을 내고 볼 수 있다. 집에서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누워 보겠다면, 지하철에서 잠깐씩 끊어 봐도 괜찮다면, 작은 화면으로 이어폰을 꽂고 봐도 무방하다면, 그저 이 영화의 내용을 보고만 싶다면 무료로 볼 수 있다. 이상한 선택이지만 <더 플랜>의 관객은 '영화티켓값'의 본질을 새삼스럽게 체험할 수 있다.

<더 플랜>의 이야기 전달 방식은, <더 플랜>이 독립 영화이되, 자본주의 영화에서도 독립시킨다. <더 플랜>은 파일이 공개된 유튜브 채널의 광고를 별도로 붙이지 않았다. 콘텐츠 내의 PPL이 있지만 스킵이 가능하다. 그 점이 <화씨 9/11>과도 다르다. <화씨 9/11>은 극장 개봉 후에 아카데미 수상 후보 규정을 어기며 페이퍼 뷰 방식으로 대선 전날 케이블에 공개됐지만, <더 플랜>은 모두가 양해할만한 동영상 광고마저도 안 붙였다. 영화가 돈'들'로 만들어진 이상 제작자는 투자금만큼은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더 플랜>의 제작자는 유튜브 환경에서조차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제작자는 투자자들이 투자 본연의 목적을 포기했다고 간주한다. 암묵적인 합의로 영화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콘텐츠에 사전 제작비로 선지불한 게 된다. <더 플랜>의 제작비 모금 방식은 결과적으로 기존의 관객 참여 펀드와 전혀 달라졌다. 여느 영화 제작자가 이 영화는 일단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니까 일단 공짜로 풀겠다고 하면, 소액투자자들조차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더 플랜>은 그런 반발이 없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영화들을 이 영화에 대는 건 잘못된 비유다. 이건 다른 방식이다. 그래서 <더 플랜>은 일반적인 영화보다 오히려 유튜브의 웡푸 프로덕션 콘텐츠들과 더 유사하다.

<더 플랜>은 기존 영화라면 하지 않았을 전달방식을 통해 영화 관객에게 당연한 주문을 한다.

'영화관에서 보려면 돈을 내고 보세요.'

<더 플랜>은 영화 관객에게 <옥자>의 넷플릭스와 똑같은 주문을 한다.

'영화를 다른 곳에서 보려면 데이터 사용료를 내세요.'

두 영화의 콘텐츠는 봉준호와 김어준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이 작품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넷플릭스


 영화 <더 플랜>

ⓒ 엣나인필름


디지털. 촌스러운 단어가 되었지만, 영화에서 우리는 디지털을 체험한 적이 없다. 우리가 그동안 체감한 건 화질 정도이다. 영화비평가 정성일-김영진-이동진들이 7년 전 고민했던 디지털 기술의 또 다른 이름 3D를 경험하기는 했다. <아바타>가 촉발한 3D는 할리우드가 주도하는 영화 산업에서 분명 영화의 미래였다. 놀이동산에서 아이들이나 보던 3D를 영화관으로 옮기려는 시도, 그걸 다름 아닌 디즈니에서 공을 들였다. 9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이 하나둘씩 3D로 다시 작업 되어 개봉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는 왜 3D 상영관이 더 비싼지 의문을 품는 시기에 이르렀다. 그래봤자 '영화'라는 걸 우리는 이제 알았다.

그런데 <옥자>와 <더 플랜>은 디지털이라는 질문을 영화에 던진다. <옥자>와 <더 플랜>은, 영화가 영화관을 드디어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운을 뗀다. 더 정확히, 영화가 영화관에서 독립할 수 있는 시대여도 괜찮지 않냐고 묻는다. 영화 관객 앞에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내민다. 영화는 무엇인가? 영화 푯값은 무엇 때문에 내는가?

영화 두 편이 얼마나 변화를 시키겠는가, 그렇게 볼 수만도 없다. 두 영화의 진짜 콘텐츠는 그 화자들이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선호도 1순위 감독 봉준호의 <옥자>와 영화인이 아닌 제작자 김어준의 <더 플랜>이, 두 영화의 진짜 콘텐츠가 아닌가.

감독 봉준호는 2000년 <플란다스의 개>부터 18년째다. 한국영화가 맞는데 한국영화가 아니야, 봉준호의 영화들이 그러했다. <살인의 추억><괴물><마더><설국열차>까지 고작 5편이 수많은 관객이 한국영화를 보게 만드는 동력이지 않은가. 김영진이 모범생이라고 평했던 봉준호가, 전혀 모범적이지 않은 방법을 선택해 만든 <옥자>는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방식의 지지자들에게 질문할 것이다. 영화로 평할 것인가?

<딴지일보>부터니까 김어준은 봉준호보다 약간 더 오래됐다. 언론이라는데 언론이 아니야, 그렇게 그는 치고 나왔다. 게다가 김어준은 스마트폰 시대에도 이미 우리에게 두 가지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의 라디오화와 실시간 검색어 교차 체크 습관화다. <나꼼수> 이후, 우리는 스마트폰을 음악과 교통 소식이 없어도 수다만 듣는 라디오로 이용하게 됐다. 실시간 검색어에 연예인들이 줄줄이 뜨면 정치적인 이슈가 있는지 살펴보게 됐다. 우리는 이제 어쩔 수 없이 김어준식 음모론자가 되어버렸다. <더 플랜>을 통해 김어준의 목표가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영화 방식과 독립된 <더 플랜>의 배급은 관객에게 질문할 것이다. 이렇게 보는 영화여도 괜찮지 않은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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