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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적은 거짓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공공연히 쓰이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구호 또한 세월호 사건이 '잊히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만 유의미하다. 온갖 거짓 정보와 특정 세력의 조작, 선동 등 반대편에 선 이들의 날 선 비판(또는 비난)은 공론화 측면에선 되레 효과적일 수도 있다. 정작 진실을 '수장'시키는 가장 무서운 힘은 따로 있다. 그건 이를테면 "지겹다, 이제 그만 좀 하지"라는 식의 망각 목소리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부정을 역으로 이용해 진실을 되새기는 이야기다.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에 정통한 대학교수 데버러(레이철 와이즈 분)가 나치 독일의 만행을 부정하는 역사학자 데이비드 우빙(티머시 스폴 분)과 법정 공방을 벌이는 과정이 영화의 큰 줄기다. 데이비드를 강력히 비판해 오던 데버러가 그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하고, 두 사람의 공방이 각각 유대인과 나치에 대한 변론으로까지 확장되며 국제적 관심을 끄는 과정을 다룬다. 실제 1996년 이후 5년에 걸쳐 이어진 소송을 모티브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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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데버라와 데이비드의 대결은 감정과 객관성 사이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긴다. 특히 데보라를 돕는 영국 변호인단과 법정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흥미롭다. 그 자신도 유대인인 데보라가 다분히 감정적으로 사건을 대하는 데 반해, 그의 변호인단은 내내 냉정하고 차분한 태도로 재판에 나선다. 재판에 대한 자료 조사와 변론 준비, 법정에서의 실제 변론에 이르기까지. 각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변호사들이 법의 중립성 속에서 최선의 팀워크를 발휘하는 지점은 인상적이다. 특유의 가발과 화려한 법복 차림을 한 판사, 오후 4시 티타임이 되면 휴정하는 영국 재판정의 모습 또한 익히 봐온 할리우드 법정물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이와 맞물려 데보라 일행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유대인 학살을 위한 가스실이 있었다"는 진실을 증명해나가는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변호인단은 누구보다도 진실을 확신하는 데보라에게 법정에서 어떤 증언도 허용하지 않고, "나도 증언하게 해달라"는 수용소 생존자 여성의 요구도 거부한다. 이 와중에 "당신이 증언할 말은 당신이 쓴 책에 다 담겨있다" "가장 옳다고 느껴지는 게 반드시 가장 효과적인 건 아니다"라는 변호사 앤서니(앤드루 스콧 분)의 말은 날카롭게 폐부를 찌른다. 변론 담당 베테랑 변호사 리처드(톰 윌킨스 분)가 의뢰인 데보라를 대변하기에 앞서 상대편인 데이비드의 변론 속에서 자기모순을 끌어내는 지점 또한 인상적이다. 그렇게 영화는 진실 앞에서 '뜨거운 목소리' 대신 '차가운 머리'에 방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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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와 데이비드의 공방과 더불어 영화가 담아낸 법정 밖 여론은 다분히 아릿하게 다가온다. 특히 변호인단의 막내 로라(카렌 피스토리우스 분)가 자신의 남자친구로부터 "다른 것들도 있어. 어느 시점 되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대체 몇 년이야. 그 사람들도 이제 그만 불평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을 듣는 에피소드는 짧지만 굵직하게 남는다. 여기에 각종 미디어와 사교 클럽에서 "홀로코스트는 이제 지루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세월호와 위안부를 대하는 이 나라의 일부 여론과도 맞닿아 기시감을 자아낸다.

결국 <나는 부정한다>가 이야기하는 건 진실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확장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재판을 통해 반유대주의를 고발하고, 이는 나아가 특정 인종이나 동성애자 등 온갖 소수자 차별 문제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불편하고 아픈 진실일수록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다. 영국 역사학자 이안 커쇼가 말했듯, "아우슈비츠로 가는 길은 증오에 의해 만들어졌고 무관심에 의해 닦였다." 오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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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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