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사랑하고 재즈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도전정신이 있어요. 돈과 인연이 없는 음악이지만,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외국에는 음악을 클래식과 재즈와 대중음악으로 나눕니다. 그 정도로 재즈의 권위와 존재를 인정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중음악 안에 재즈를 포함합니다.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재즈를 듣는 방법을 저에게 물어요. 재즈를 듣고 느끼는 자체가 재즈예요. 뭔가 의미를 부여하려 하면 오히려 재즈로부터 멀어져요. 내 필(feel: 느낌), 그 자체가 재즈입니다."

지난 10일 S&S(Sea & Sky) Jazz Big Band(아래 빅밴드) 합주실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빅밴드 지휘자 정정배, 빅밴드 대표 변영학, 빅밴드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 김휘동씨가 그들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빅밴드의 핵심 멤버다. 빅밴드는 20일 오후 8시,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1회 콘서트를 연다. 콘서트 준비로 몸과 마음이 바쁜 이들과 재즈의 세계를 만났다.

음악의 힘

  변영학(왼쪽) 빅밴드 대표와 정정배(오른쪽) 지휘자는 공군 군악대 동기다.

변영학(왼쪽) 빅밴드 대표와 정정배(오른쪽) 지휘자는 공군 군악대 동기다. ⓒ 김영숙


"인천에도 유명한 연주자가 많은데 서울과 인접해있다 보니 그들이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더라고요. 그래서 인천이 많이 취약합니다. 300만 도시 인천은 대단한 도시죠. 개항지라는 역사와 전통이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공항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각되지 않고 있어요."

정 지휘자의 말이다. 그는 인천 출신이 아님에도 인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전했다. 인천과 재즈 사랑이 라틴 재즈의 최고 권위자로 정평이 나 있는 그를 인천으로 이끌었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일본의 재즈 시장이 가장 큽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지션들이 매해 일본을 방문해요. 일본은 포장마차에서도 온종일 재즈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작은 농촌 지역이나 소도시 항구 어촌에 가도 동네마다 재즈콘서트 포스터가 붙어있고, 공연하면 동네 사람들 200~300명이 좌석을 가득 메웁니다. 자기 문화가 아닌 재즈를 나름 정착시킨 거죠. 그 나라는 중·고등학교나 주부들 대상의 브라스 밴드가 많아요.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까지 많이 있다가 없어졌잖아요. 지금은 음악이 선택과목인데 무식한 교육인 거죠. 미국은 1인 1악기를 다루는 교육을 합니다. 음악으로 인성교육을 하고 문화예술의 기본 교육도 하는데 그러면서 버릇없던 아이들이 예의를 갖추는 경우가 많아지죠."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정 지휘자는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열정'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하기에는 부족했다. 변 대표도 말썽부리는 아이들을 음악으로 교육해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사례를 신문에서 봤다고 덧붙였다. 정 지휘자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란 베네수엘라의 불우한 청소년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이다. 엘 시스테마는 시스템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인데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통한다. 엘 시스테마의 정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이다.

이 프로그램은 1975년에 경제학자이자 오르가니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로부터 시작됐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에서 빈민층 청소년 11명을 단원으로 시작한 엘 시스테마는 범죄와 마약에 노출되기 쉬운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 전 세계 음악교육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미국 명문 오케스트라인 LA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를린 필하모닉 역대 최연소 오케스트라 단원 에릭슨 루이스 등을 배출함으로써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과 함께해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잖아요. 시스템을 도입해 좋은 효과를 일으켰어요. 우리가 스윙 재즈 빅밴드를 시작한 이유가 있어요.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재즈를 독립 장르로 구분하지 않고 대중음악에 포함했어요. 클래식처럼 재즈도 기초음악이어야 합니다. 이 훌륭한 재즈로 우리도 시스템을 도입할 고민을 시작해야 합니다."

재즈란 흑인 할머니의 웅얼거림?

<두산백과>에서는 재즈를 '미국 흑인의 민속 음악과 백인의 유럽음악 결합으로 미국에서 생겨난 음악'이라고 정의했다.

또 다른 음악용어 사전에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미국 뉴올리언스 일대의 흑인 사이에서 연주됐던 노래와 춤을 재즈라 불렸다. 재즈란, 곡의 형식이나 곡 그 자체가 아니라 연주 스타일이나 연주 자체를 말한다.

재즈 연주를 목적으로 작곡된 명곡은 적지 않지만 아무리 재즈의 명곡이라 하더라도 연주자에게 재즈의 감각과 표현력이 없다면 그 연주는 재즈와 거리가 멀다. 재즈는, 연주자가 항상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재즈를 듣는 사람은 곡을 듣기보다는 연주 그 자체가 감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빅밴드 단원들이 하는 말과 같다.

"뉴올리언스에서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시카고로 와서 시카고 재즈가 생기고, 그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재즈는 클래식과 달리 즉흥연주를 합니다. 음악 선진국은 클래식과 재즈를 동등하게 인정해요. 음악인들은 재즈의 위대함을 부정하지 않아요. 일반인들이 재즈 감상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해요. 자기가 느끼는 걸 받아들이면 돼요. 재즈를 듣다 보면 연주자가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러면서 재즈를 깊이 알게 됩니다. 재즈를 쉽게 얘기하면 흑인들의 크고 강한 터치라고 할 수 있어요. 흑인 할머니가 웅얼거리는 것도 재즈입니다."

재즈는 시대의 흐름과 스타일, 발생지에 따라 지명을 붙여 일컬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뉴올리언스 재즈, 딕실랜드 재즈, 빅밴드 재즈 등이 있다. 빅밴드 재즈란 10여 명으로 편성된 오케스트라 재즈로 주로 댄스홀에서 연주됐다. 편곡에 따라 각 악단의 특색을 드러내고, 듀크 엘링턴처럼 뛰어난 솔로 주자가 인기였다.

빅밴드 연주는 세 파트로 나눌 수 있다. 왼쪽에 리듬 섹션(피아노·베이스·드럼·기타)이 있고, 오른쪽에 브라스(금관악기) 섹션(트럼펫·트롬본)과 리드 섹션(목관악기, 색소폰·클라리넷)이 자리를 잡는다. 재즈의 주요 악기인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이 주요 자리를 관악기에 양보하는데 그만큼 금관과 목관 악기의 앙상블이 중요하다. 악기군 두 개가 곡의 선율과 반주를 질의응답 형식으로 주고받으며 연주한다. 그 사이를 멤버들이 뛰어난 연주력으로 빼곡히 채운다.

지휘자인 정정배씨는 빅밴드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섹션 3개를 구분해서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금관인 트럼펫과 목관인 색소폰의 구별은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재즈 빅밴드의 핵심 세 명

 20일 콘서트 준비를 위해 연습하는 빅밴드 단원들.

20일 콘서트 준비를 위해 연습하는 빅밴드 단원들. ⓒ 김영숙


인천 출신인 변영학씨와 서울 출신인 정정배씨는 공군 군악대 출신으로 군대 동기다. 둘은 군 제대 후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변씨는 정통 재즈에 가까운 음악을 하다가 인천에서 먹고 살기 위해 카바레에서 연주하는 자신의 손을 보면서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적도 있었다고 했다. 정씨를 만나 다시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지금까지 50년간 인천의 레전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 뮤지션 중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노장의 중후한 울림을 연출한다는 정평이 나있다. 빅밴드 대표이자 부평올스타재즈빅밴드 드러머 성원이고 실버 오케스트라 드러머이기도 하다.

"5년 전에 공군 군악대 60주년 행사가 열렸는데, 전역자와 현역자가 같이 연주했어요. 82세 선배가 드럼 치는 걸 보고 '나도 저 나이에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건강을 유지해서 그때까지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정정배씨는 제대 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혈혈단신으로 브라질로 유학을 떠났다. 그때 나이 37세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하기 1년 전 프레올림픽이 열렸어요. 당시 최고의 팝스타들이 와서 공연한 걸 비디오로 찍어 판매해 기금을 마련했어요. 그중에 미국 6인조 밴드와 내가 퍼커션으로 참가해 컬래버레이션을 했는데 주눅이 들어서 연주가 안 됐어요. 그때 고민했어요. '음악을 계속하려면 공부를 하고 안 하려면 다른 일을 하자'고요. 결혼해 아이도 있어서 2년 고민하다가 집에 통보하다시피 하고 연고도 없는 브라질로 떠났습니다."

브라질에 가면 라틴음악을 다 배울 줄 알았지만, 언어가 안 돼 석사 과정인지도 모르고 전문가 과정에 등록해 애를 먹기도 했다. 나중에 브라질 민속 악기까지 배우고 쿠바로 옮기려 했지만, 당시에는 수교국이 아니면 입국이 안 됐다. 대신 라틴음악이 활발한 뉴욕에서 공부를 더 하다 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라틴음악 최고의 권위자가 된 정씨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유학 가서 고생 많았습니다. 청소부터 파티장 연주까지 하루에 잠을 3시간 정도밖에 못 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했어요. 미치지 않으면 못합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라틴음악을 정통으로 배워 한국에 들어왔지만, 재즈로 돈을 벌지는 못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행복이지만 불행의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웃음)"

정씨가 김휘동씨를 '인천의 재즈 전령사'라고 소개하자, 김씨가 마음에 든다고 좋아했다. 정씨의 칭찬은 이어졌다.

"인천에 재즈를 정착시키기 위해 혼자서 애썼어요. 이런 분을 인천에서 문화정책을 주관하는 사람들과 연계하면 인천에 좋은 문화가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많이 아쉽습니다. 내가 이번에도 깜짝 놀란 게, '죽을 때까지 멋있게 일을 해보겠다'는 마음이 강해요. 휘동씨를 만나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연수구립관악단 단원이었고, 지금은 미추홀 빅밴드 단원인 김씨는 "잃었던 꿈을 화산 폭발하는 것처럼 표출할 수 있어서 좋다"며 "정 지휘자를 만난 건 인천에 복이 굴러들어온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군대 동기인 변씨와 정씨가 인천에서 음악을 해보자는 생각에 2014년 가을에 만나 그 이듬해 3월 이곳의 문을 열었다. 인천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개하는 하우스콘서트 장으로 일주일에 한 팀씩 공연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공연장이자 합주실을 운영하면서 빅밴드를 만들기 위해 멤버를 모아 지난해 4월 창단했다. 몇 번의 멤버 교체 시기를 거친 후 지난해 9월부터 안정돼 연습을 시작해 20일 1회 콘서트이자 창단 연주회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공연에는 귀에 익숙한 멜로디와 전형적 레퍼토리를 토대로 16곡을 준비했어요. 휘동씨가 기획 능력도 갖추고 있고 홍보도 열심히 하고 있죠. 공연이 열흘 남았는데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과 빅밴드 창단을 계기로 인천에 흩어져있는 재즈모임을 모아 사단법인을 띄울 계획입니다. 사단법인으로 공신력을 갖게 되면 인천에 재즈 보급 확산을 위해 본부 역할을 하고, 재즈 모임을 활성화해 인천시민들에게도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재즈 페스티벌이나 빅밴드 페스티벌을 국제 규모로 준비하고, 인천이 전국적으로 재즈를 확산하기 위한 토대 마련을 위해 청소년 재즈 빅밴드와 같은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영숙 시민기자는 <시사인천>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정배 변영학 김휘동 재즈빅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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