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의 포스터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의 포스터 ⓒ 시네마테크KOFA


안성기는 세대와 취향, 정치적 입장을 막론하고 누구나 친근감을 느끼는 우리나라의 '국민 배우'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배우로서 한국의 대중들을 울리고 웃긴 지도 벌써 60년이란 세월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다섯 살 때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에 출연한 이래, 지금가지 모두 130여 편의 작품에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학업과 군복무, 무역회사 근무 등으로 10년 정도 영화계를 떠나 있었던 기간을 제외한다면 연평균 2~3편씩 꾸준히 영화 작업을 해 온 셈입니다. 특히 에로 영화의 범람으로 한국 영화가 삼류 취급을 받았던 80년대 초중반에도 이장호, 배창호 같은 감독들과 의기투합하여 좋은 영화들을 꾸준히 내놓은 것은, 90년대 이후 한국 영화가 급성장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도 흥행 보증 수표로 꼽히던 배우였던 그는, 이후 조연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지만 여전히 영화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미도>(2003), <라디오스타>(2006), <부러진 화살>(2011) 같이 한국영화 역사에 이정표가 될 만한 작품들은 그런 노력의 산물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시네마테크KOFA에서는 4월 13일부터 4월 28일까지 안성기의 데뷔 6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총 27편의 영화가 상영되는데, 주로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대표작들을 소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라디오스타>(2006), <부러진 화살>(2011) 같은 2000년대 이후의 대표작들도 일부 포함돼 있지요.

언제부터인가 대중에게 각인된 안성기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소탈한 외모와 특유의 미소를 바탕으로 한 지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훨씬 넓습니다.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의 어수룩한 소시민부터 <고래사냥>(1984)의 자유로운 영혼,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의 감정 없는 킬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까요.

이번에 상영되는 27편의 영화들 중에서 안성기라는 배우의 다채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작품 다섯 편을 따로 꼽아 보았습니다.

[하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스틸 컷.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스틸 컷. ⓒ 이장호


덕배(안성기), 춘식(이영호), 길남(김성찬)은 시골에서 상경한 청년들입니다. 이들은 각각 중국집, 미용실, 여관에서 일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혈기왕성한 청년들답게 애정 문제에도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아무 기반도 없는 그들에게 서울 생활은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안성기는 어수룩하지만 우직한 하층민 청년 덕배라는 캐릭터를, 늘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멍한 표정과 어눌한 발음, 단 두 가지 요소로 탁월하게 형상화합니다. 당시 조감독이었던 배창호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작품이기도 한데, 배창호 감독은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 이후 거의 모든 영화에 안성기를 주요 배역으로 기용하며 80년대 대표 감독으로 성장합니다.

[둘] <고래사냥>(1984)

짝사랑에 실패하여 실의에 빠진 병태(김수철)는 매사에 거침 없는 거지 민우(안성기)를 만나 정처없는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들은 여행 도중 윤락가에서 일하는 벙어리 여인 춘자(이미숙)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녀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기 위한 여행을 함께 떠납니다.

배창호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며, 김수철의 주제가가 크게 히트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작품입니다. 안성기가 맡은 자유분방하고 시원시원한 민우의 캐릭터는 당시 전두환 정권 아래서 답답함을 느꼈던 많은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을 제공했습니다.

[셋]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어릴 때부터 아버지(최불암)와 단둘이 살아 온 영민(안성기)에게 짝사랑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바로 영문과 출신으로 연극 무대에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혜린(황신혜)입니다. 그러나 혜린은 산부인과 의사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납니다. 몇 년 후, 우연히 혜린을 다시 만나게 된 영민은 그녀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안성기의 연기는 사실적인 디테일과 다소 과장된 슬랩스틱 사이를 넘나듭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지질한 못난이 취급 받기 십상인 영민이란 캐릭터를 진심어린 캐릭터로 바꿔 놓은 것은 온전히 그의 공입니다. 영민과 아버지 사이의 친밀한 관계와 영민과 혜린의 사랑이 남기는 감동적 여운이 뛰어난 수작입니다. 과감한 시점샷과 잘 통제된 조명이 돋보이는 유영길 촬영 감독의 촬영술도 볼거리입니다.

감독 배창호와 조감독 이명세가 같이 쓴 각본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한데, 두 사람의 협업은 이명세의 감독 데뷔작 <개그맨>(1988)과 배창호의 차기작 <꿈>(1990)으로 이어집니다. 안성기와 황신혜는 세 편의 작품 모두에서 연달아 호흡을 맞추며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죠.

[넷] <남자는 괴로워>(1994)

 <남자는 괴로워>의 스틸컷.

<남자는 괴로워>의 스틸컷. ⓒ 이명세


대기업 오성전자의 신제품 개발부. 여기에는 다양한 유형의 회사원들이 각자의 고민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중년 샐러리맨 과장 안성기, 마마보이 신입사원 박상민, 똑 부러지는 여성 사원 김혜수, 엘리트 차장 송영창 등의 일상을 코믹하게 담아냅니다.

90년대 초반 안성기의 필모그래피는 <남부군>(1990)-<하얀전쟁>(1992)-<태백산맥>(1994) 같은 대작부터, <투캅스>(1992) 같은 최고 흥행작, <그대안의 블루>(1992)-<그 섬에 가고 싶다>(1993)-<영원한 제국>(1994) 같은 신진 감독들의 문제작을 총망라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국민 대표 배우다운 행보였죠.

하지만 이 시기의 연기 톤과 이미지가 워낙 비슷비슷했기 때문에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합니다.(실제로 한국 영화 관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석규라는 대안을 찾아내게 됩니다.)

하지만, 극장 개봉 당시 일주일도 못 버텼던 이 영화 <남자는 괴로워>에서 안성기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연기를 선보입니다. 이명세 감독 특유의 동화적인 휴머니즘이 극대화된 이 영화에서 다양한 슬랩스틱 코미디와 독특한 뮤지컬 시퀀스들을 소화해 낸 것이죠. 그야말로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열연을 보여 주었습니다.

[다섯] <부러진 화살>(2011)

대학 입시 수학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부당 해고된 교수 김경호(안성기)는,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내지만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기각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분을 못 이긴 그는 담당 판사의 집을 찾아가 판사를 석궁으로 위협하면서 공정한 재판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던 도중 판사가 상해를 입고, 사법부는 이를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그를 엄중 처벌할 것을 공언합니다.

이른바 '판사 석궁 테러 사건'으로 잘 알려진 김명호 교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음에도 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했죠. 실제 사건의 진위 여부와는 관계 없이, 사법부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주인공의 마음 속에 담긴 불신과 분노를 온몸으로 표현해 낸 안성기의 연기가 아주 큰 몫을 합니다.

시네마테크KOFA의 상영작들은 좌석이 매진되지 않는 한 모두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한국 영화 같은 경우에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유튜브와 네이버를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시간이 안 맞아 놓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의 자세한 상영 일정 및 작품 소개는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https://www.koreafilm.or.kr/)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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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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