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재개봉된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13년 만에 재개봉된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주)이수 C&E


올해 극장가는 재개봉이 대세인가보다. 1월 <반지의 제왕> 3부작, <빌리 엘리어트>를 신호탄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 <제리 맥과이어> 등이 관객들을 찾아갔다. 3월 들어선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일 포스티노> <라빠르망>, 4월엔 제레미 아이언스,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미션> 그리고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차례로 개봉됐다. 그리고 메릴 스트리프, 앤 해서웨이 주연의 <악마를 프라다>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날 명작들을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건 영화팬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무엇보다 나이 들어 다시 보는 추억의 명작들은 지난날 삶의 경험이 부족한 탓에 미처 잡아내지 못했던 심오한 인생의 메시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그러나 유독 옥에 티 같이 껄끄러운 영화 한 편이 눈에 띈다. 바로 멜 깁슨이 연출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다. 이 영화는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느낌은 똑같다. 바로 공포다. 이 영화는 다시 봐도 무섭다.

이 영화가 한국에 소개된 시점은 2004년 4월이었다. 마침 이 시기는 그리스도교 최대 절기인 부활절을 앞둔 시점이어서 각 교회의 단체관람이 줄을 이었다. 특히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엔 예수 그리스도역을 맡은 배우 짐 카비젤(Jim Cavizel)의 영문 이니셜이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와 똑같다며, '성령의 역사'라고까지 치켜세웠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공포감이 엄습했다. 영화 초반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군 병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이 대목까진 그럭저럭 봐줄 만 하다. 예수가 로마군에게 심문당하는 장면부터 잔혹성은 두드러진다. 갈퀴가 달린 채찍에 맞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은 지금 봐도 끔찍하다. 기자는 다니던 교회에서 단체관람으로 영화를 봤다. 함께 영화를 봤던 성도 중 몇몇은 이 장면을 보면서 비명을 지르며 흐느껴 울기까지 했다. 영화이기에 망정이지, 아마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 정도 고문을 당했다면 진즉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원조마초' 멜 깁슨, 성찰 없이 잔혹함으로만 일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는 로마 군인에게 모진 고문을 받아 살점이 뜯겨져 나간다. 이 장면은 잔혹함의 극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는 로마 군인에게 모진 고문을 받아 살점이 뜯겨져 나간다. 이 장면은 잔혹함의 극치다.ⓒ (주)이수 C&E


십자가 처형 장면은 잔혹함의 극치다. 예수의 손에 큼지막한 못이 박히고, 이내 십자가에서는 피가 뚝뚝 흐르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 이래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뮤지컬 등등 모든 장르를 망라해 예술에서 중요한 주제로 각광 받아왔다. 말 그대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다. 그러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만큼 예수의 고난을 잔혹하게 묘사한 작품은 이제껏 없었다. 앞으로도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공포감이 들었던 이유는 잔혹함 때문만은 아니다. 잔혹성만으로 따지자면 <13일의 금요일> 류의 슬래터 무비가 훨씬 더 수위가 높다. 영화가 두려운 이유는 예수의 수난을 잔혹하게 묘사하면서도 정작 그가 왜 수난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 없어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당해야 했던 고난의 본질은 정치적 박해였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권력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 활동을 불온하게 여겼다. 이들은 예수를 체포해 이스라엘을 식민 통치하던 로마 제국에게 넘겼다.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에게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사회혼란을 우려해 결국 예수를 십자가 처형한 것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그리스도교라는 특정 종교의 영역을 뛰어넘어 정의롭지 못한 권력으로부터 탄압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그러나 연출자인 멜 깁슨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담긴 역사적, 신앙적 맥락은 싹둑 잘라 낸 채 예수의 수난을 가학적으로만 묘사한다.

사실 멜 깁슨의 예수 수난 묘사는 일정 수준 강한 남성성, 즉 '마초이즘'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멜 깁슨은 1980년대 실베스터 스탤론,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더불어 마초이즘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속에선 그의 마초적 본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곳곳에 눈에 띈다. 더구나 영화가 그리는 예수는 그리스도교의 메시아라기보다 '예수'를 내세운 서구 문명의 또 다른 은유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이 같은 은유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는 장면에서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연민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즉결 심판이라도 할 기세다. 본디오 빌라도는 고뇌를 거듭하다 결국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내린다. 이러자 유대인들은 환호성을 내지른다. 서구 우월주의, 그리고 반유대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예수 수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과도한 폭력과 반유대주의가 강했지만, 각 교회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과도한 폭력과 반유대주의가 강했지만, 각 교회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주)이수 C&E


이 지점에서 한국의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계가 이 영화를 어떻게 소비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 개봉 당시 많은 교회가 단체로 영화를 관람했다. 극장 안 분위기는 예배와 다를 바 없었다. 무슨 말이냐면, 예수가 수난을 당하는 장면에서 탄식과 기도가 넘쳐났다는 말이다. <굿데이>라는 기독교계 언론 매체는 당시 극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잔인한 보복과 짐승 같은 폭력이 도를 높여가는 동안 극장 안은 어느덧 울음과 기도 소리에 휩싸인다. 옆자리 사람도, 그 옆도 눈물을 훔쳐내면서 반복적으로 '아멘'을 읊는다. 그리스도가 가혹한 고문을 당할 때 아들의 처절한 고통을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한없는 모성애 등은 신도들뿐 아니라 일반 관객의 마음도 울린다."

첫 개봉 이후 13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교회에서는 부활절 즈음해서, 특히 예수께서 못 박힌 성금요일에 이 영화의 영상을 튼다. 신도들은 영상을 보면서 눈물 흘리고 가슴을 치며 회개 기도를 드린다. 이 모든 게 실제 상황이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불편하기 그지없다. 예수의 수난 당하심의 의미는 간데없이 오로지 자신이 저지른 사소한 잘못만 들춰 자학적으로 고백하는 것 같아서다.

이런 이유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재개봉은 반갑지 않다. 사실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반그리스도 영화라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영화를 보는 안목이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반면교사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주 한인매체 <미주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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