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로 폐허가 된 우에노씨 댁. 이 마을에선 유일하게 남은 집이다. 집 앞에 아이들이 놀던 장난감 등이 놓여 있다. 이 사진은 지난 2015년 기자가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촬영했다. 

쓰나미로 폐허가 된 우에노씨 댁. 이 마을에선 유일하게 남은 집이다. 집 앞에 아이들이 놀던 장난감 등이 놓여 있다. 이 사진은 지난 2015년 기자가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촬영했다.  ⓒ 이두희


지난 2011년 3월 11일 쓰나미를 동반한 지진이 일본 동북지역을 덮쳐 약 2만여 명의 희생자가 생겨났다.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참사를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수만 명의 피난민이 있다. 그 일대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됐다.

죽음의 땅, 버림받은 땅에서 아직도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지난 15일, 나고야의 인디영화 영화관 '시네마 스코레'에서 다큐멘터리 <Life>(라이프) 특별 상영회가 열렸다. 이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3월 11일 참사로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는 이들과 5년 넘게 함께했다. <Life>는 지난해에 완성됐지만, 그동안 공동체 상영만 했다. 정식 영화관에서 다큐멘터리를 상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삽자루 하나로 가족을 찾는 사람들

영화는 쓰나미로 집 한 채 빼고 온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미나미소마시의 가이하마지역에서 손에 삽을 든 몇 명의 남성이 마을의 수로를 파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쓰나미로 행방불명이 된 이들을 찾는 수색작업. 그 중심에 있는 우에노 다카유키씨가 바로 이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집의 주인이다. 그는 3.11 당시 함께 살던 노부모, 딸과 아들 둘을 쓰나미로 잃었다. 아내, 그해 9월에 태어난 딸 사리이와 함께 쓰나미로 폐허가 된 집 바로 옆에 새로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잊지 말라고까지는 이야기하지도 않아요. 다만 이곳이 어떤지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딸의 시신은 발견했지만, 업자들도 방사성 물질을 피해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아내도 다른 지역으로 피난했기 때문에 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만 3살이었던 아들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정부의 수색대도 방사능을 이유로 사고가 난 지 한 달도 더 지난 4월 20일에 도착했다. 그가 삽자루를 들고 직접 아들을 찾아 나서야 했던 이유다. 우에노씨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찾을 확률은 '0'이지만 누구라도 찾아 나선다면 적어도 '0'은 아니니까."

 우에노씨 댁. 끝까지 지키려 했던 이 집도 결국 붕괴 위험 때문에 2016년 초에 철거했다.

우에노씨 댁. 끝까지 지키려 했던 이 집도 결국 붕괴 위험 때문에 2016년 초에 철거했다. ⓒ 이두희


살 수 없는 땅이지만 떠날 수 없었다. 쓰나미가 삼켜버린 아이들이, 부모가 아직도 거기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다 무너져 버린 집 안에 들어서면 아직도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걸어 나올 것만 같아 집을 부술 수도 없었다.

그 집을 끝까지 남겨서 이곳을 찾아온 사람에게 '여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는 무너진 집 옆에 새집을 지었다. 방사능이 번진 땅에는 오염을 제거해준다는 유채꽃밭을 만들었다. 부친이 남긴 땅에서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농사도 시작했다. 그렇게 가족을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이곳에 살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우에노씨의 소박한 꿈인지도 모른다.

죄책감, 망설임... 5년 9개월 만에 마주한 딸

기무라 노리오씨가 살고 있던 곳은 후쿠시마 제1 원전이 있는 오구마마치다. 그 역시 3.11 쓰나미로 아버지와 아내, 작은딸을 잃었다. 지금은 나가노에서 큰딸과 방사능 오염을 피해 살고 있다. 아버지와 아내의 시신은 발견했지만 당시 만 7살이었던 작은 딸 유나는 찾지 못했다.

오구마마치는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없고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선 매번 특별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게다가 지금 사는 나가노에서 먼 곳이라 수색 작업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 방사능 오염이 심해 자원봉사자를 찾기도 어렵다. 지원자가 있어도 망설이게 된다.

"다른 사람을 피폭시키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기무라 노리오씨가 끝없는 질문과 망설임에 괴로워할 때 함께 해 준 이가 바로 우에노씨다. 하지만 사람이 좀 늘었다고 해봐야 기껏 할 수 있는 건 삽자루 하나 들고 흙더미를 뒤지는 것뿐이다. 5년여의 세월 동안 가족들의 유품은 찾았지만, 딸의 시신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영화의 말미, 방사능 '오염물질 중간저장 구역' 설치에 앞서 환경성이 진행한 수색 작업에서 사람의 치아 일부분이 발견된다. DNA 검사 결과 그 치아는 기무라 노리오씨의 딸 유나의 것으로 확인된다.

멈출 수 없는 기억의 작업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극장의 모습. 약 60여 석의 좌석이 꽉 찼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극장의 모습. 약 60여 석의 좌석이 꽉 찼다. ⓒ 이두희


이날 특별상영회에는 영화를 제작한 가사이 치아키 감독과 영화에 등장하는 기무라 노리오씨가 참석해 관객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가사이 감독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어떤 순간에도 살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무라씨는 딸 유나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의 기분을 묻자 "기쁘다기보다 오히려 억울하고 화가 났다. 환경성의 수색이 시작되고 채 3주가 지나지 않아서 뼈를 발견했다. 이렇게 쉽게 발견될 것을 5년 9개월 동안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영화 시작에 앞서 가사이 감독(오른쪽)과 영화에 출연한 기무라씨가 인사하고 있다.

영화 시작에 앞서 가사이 감독(오른쪽)과 영화에 출연한 기무라씨가 인사하고 있다. ⓒ 이두희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모습이다.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고 구속되던 날 세월호가 올라왔다. 모두가 '이렇게 쉽게 될 일이었나, 도대체 이제까지 무엇을 한 것이냐'고 분노했다. 권력의 속성은 원래 그런 것일까. 역사 문제에 있어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한국과 일본이, 왜 이런 문제에서는 이렇게도 꼭 빼닮은 것일까.

사람들이 세월호에 관해 한목소리로 '기억하겠다'고 말하듯, 우에노와 기무라 두 사람도 결국 기억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 아닐까. 그 기억은 개인적 기억에 그치지 않고 집단적·사회적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그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자체가 곧 저항이다. 기억을 남기기 위해 싸워나갈 이들에게 멀리서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영화 <라이프> 홍보물. 기억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을 응원한다.

영화 <라이프> 홍보물. 기억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을 응원한다. ⓒ Rain Field Production



동일본 대지진 영화 라이프 방사능 유출 후쿠시마 원전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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