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의 첨삭을 받고 기분 좋아하는 울프.

맥스의 첨삭을 받고 기분 좋아하는 울프.ⓒ (주)영화사 오원


예전엔 책의 성취는 모두 작가의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책의 대부분 성취는 작가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 뒤에 익명의 편집자가 존재한다는 걸 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자가 출판하지 않는 이상, '거의' 모든 책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다. '거의'를 붙인 건, 때때로 어느 작가는 '내 글에 털끝만큼의 손도 대지 말라'고 주문한다고 들어서이다.

이런 작가의 책을 제외한 책은 편집자에 의해 변형을 거친다. 그 결과 '더 좋은' 책이 탄생한다. '더 좋은' 책의 의미는 '정말 더 좋은 책' 일 수도 있지만, 어느 면에서는 '더 상업적'인 책일 수도 있다. 독자의 눈을 염두에 둔 편집자는 과감히 문장에 가위질하고, 문단을 삭제하거나, 구성에도 변화를 준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불편한 진실이 생겨난다.

절제된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글로 유명한 레이먼드 카버의 글이 편집자에 의해 재탄생된 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명작으로 꼽히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어느 단편은 거의 70%가량을 편집자가 임의로 덜어냈다. 심지어 엔딩을 바꾼 것도 있다. 그렇다면 독자는 누구의 글을, 누구의 의도를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카버일까, 그의 편집자일까. 이 단편집을 출판한 후 둘 사이는 멀어졌다고 한다. 그 후 레이먼드 카버는 편집을 거치지 않은 원본으로 책 <풋내기들>을 출판한다.

잠을 못 자는 편집자

 울프의 글을 읽고 있는 맥스.

울프의 글을 읽고 있는 맥스.ⓒ (주)영화사 오원


영화 <지니어스>에서 책의 성공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감사의 말'을 전하는 소설가 토마스 울프(주드로 분)에게 편집자 맥스(콜린 퍼스 분)는 이렇게 말한다.

"편집자들이 잠을 못 자는 이유가 있지. 작가가 처음 가지고 온 글의 본질을 내 마음대로 바꿨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편집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맥스가 하는 일은 '컷, 컷, 컷'이다. 울프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과연 이 글을 울프 혼자 썼다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와 편집자 사이의 관계를 농밀이 그려낸 이 영화는 뉴욕의 출판사들에 거절당할 만큼 당한 토마스 울프의 소설을 노련한 편집자 맥스가 마음에 들어 하면서 시작한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의 편집자이기도 한 맥스는 울프의 책을 정성 들여 다 읽고 바로 출판하기로 결정한다. 그간 가치 없는 글을 쓴다는 악평에 시달려온 울프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한다. 하지만 출판 전에 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엄청난 양의 퇴고. 맥스의 의견을 거의 100% 수용한 울프는 글을 고치고 또 고쳐, 핵심 문장만 남긴다.

두 권의 책을 함께 만들면서 울프는 맥스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머리에서 연상되는 모든 이야기를 글로 늘어놓기만 하면 맥스는 그 이야기들을 알맞게 '편집'해준다. 맥스의 편집에 불만을 품은 울프는 '내 단어들을 더는 줄일 수 없다'고 화를 내지만, 실은 이 과정을 한없이 즐긴다.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보석 같은 존재가 바로 맥스 같은 사람일 것이다. 글을 쓴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장점 또한 알아보면서, 종국에는 취약점을 제거하도록 도와주는 사람.

작가 그리고 편집자의 사랑

 맥스와 울프의 즐거운 한 때.

맥스와 울프의 즐거운 한 때.ⓒ (주)영화사 오원


반면,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영원한 사랑'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자존심이 세면서, 또 혼자 있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하는 사람인 작가를 대하는 일이 편집자에게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토마스 울프처럼 영감에 쉽게 포획되며, 괴짜이고, 또 야수 같다면 더 어려울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도 편집자가 미워도 한참 미울 것이다. 결국, 편집자가 늘 하는 말이란, '당신 글은 완벽하지 않다' 아닌가. 울프가 몇 년 공들여 써온 글에 빨간색 펜으로 찍찍 사선을 거대는 맥스는 울프에게 천사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 책 두 권이 나올 때까지는 맥스가 '천사처럼' 보이던 울프였지만 이제는 '악마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울프는 홀로 서보려 한다. 자기가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맥스의 공이라는 걸 아는 울프는 자존심이 상해 괜히 맥스 뒷담화까지 하는데, 이때 이 뒷말을 들어주는 게 스콧 피츠제럴드다. 당시 스콧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쓴 후 몇 년간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 피츠제럴드에게 울프는 묻는다.

"과연 10년 후, 100년 후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할까?"

피츠제럴드의 대답은 이렇다.

"나 역시 그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지. 하지만 지금은 좋은 한 문장을 쓸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야."

이 대화에서 피츠제럴드는 작년에 <위대한 개츠비>로 번 돈이 2달러 13센트였다고 말한다. 불멸하는 작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문장에 집중하게 된 건 바로 이 이유라고 말이다. 하지만 울프는 피츠제럴드의 말에 절대 수긍하지 못한다. 내 글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고뇌는 계속 이어진다.

토마스 울프의 생애를 모르는 사람에게 마지막 15분은 조금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천재 작가 토마스 울프와 그를 있게 한 편집자의 '찡한' 우정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한 번쯤은 해볼 것 같다. 과연 편집자는 글에 얼마만큼 관여해야 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완성도 높은 글 뒤엔 실력 좋은 편집자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보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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