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2 콜드플레이(COLDPLAY)'의 이틀째 공연에서 콜드플레이가 대형 세월호 리본을 무대 위 화면에 띄운 뒤 묵념을 제안했다. 해당 영상은 현대카드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16일 오후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2 콜드플레이(COLDPLAY)'의 이틀째 공연에서 콜드플레이가 대형 세월호 리본을 무대 위 화면에 띄운 뒤 묵념을 제안했다. 해당 영상은 현대카드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HyundaiCard


"잠시만 공연을 멈춰볼까 해요. 지금 부를 곡이 세월호 추모일을 맞아 부르는 노래거든요. 우리 모두 10초 동안 잠시 멈추고 묵념할게요. 여기에 추모의 감정만 가득했으면 해요. 모두 함께 해주면 정말 좋겠네요. 좋아요, 10초만요."

세월호 참사 3주기인 16일 늦은 오후,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세월호 추모로 온라인 공간이 들썩였다. 이날 오후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2 콜드플레이(COLDPLAY)'의 이틀째 공연을 펼친 콜드플레이는 1집 <패러슈트(Parachutes)>의 히트곡 '옐로(Yellow)'의 순서 도중, 대형 세월호 리본을 무대 위 화면에 띄운 뒤 묵념을 제안했다.

공연 관람 중이던 수많은 이들이 갖가지 앵글로 이 광경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수만 중의 일순간 침묵과 3개의 대형 세월호 리본, 그리고 콜드플레이의 '옐로'가 울려 퍼지는 올림픽 주경기장을 담은 영상은 그 자체로 뭉클함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콜드플레이는 전날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한국의 슬픔을 언급한 바 있다.

그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를 강타하던 즈음 방영된 JTBC <김제동의 톡투유>(아래 <톡투유>) 역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고 있었다. '그날'이란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이어나간 이 날 <톡투유>는 주제도 주제거니와 진행자 김제동 외에도 다수 방청객이 세월호 '노란 리본'과 '노란 팔찌'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2주 전 100회를 맞은 <톡투유>는 때때로 방청객들의 사연으로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언급해 왔다. 하지만 이날은 좀 더 특별했다.

콜드플레이의 묵념, <톡투유>의 아픈 이야기들

 16일 방송된 JTBC <김제동의 톡투유>의 한 장면. 세월호 참사 3주기, 우리는 아직 잊지 않았다.

16일 방송된 JTBC <김제동의 톡투유>의 한 장면. 세월호 참사 3주기, 우리는 아직 잊지 않았다.ⓒ JTBC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살아남은) 그 100명이라는 어른 중에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나가야 된다고 소리를 쳤거나 귀띔만 해줬어도 (아이들이) 다 뛰쳐나왔을 거란 얘기죠. 다 살았을 아이들을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했다는 겁니다. 앞으로라도 우리 기성세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내 아이도, 자시도 그런 상황을 겪을 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앞장서서 소리쳐주고 이게 아니라고 빨리 나가라고 얘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김제동의 팔목이 매력 포인트라던 조수영씨는 '어른들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가 든 스케치북 속 문장은 '그날의 세월호'였다. 그러자 객석에서 눈물을 훔치는 청중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앞서 이야기를 꺼낸 23살 강지수씨는 9명의 미수습자 중 한 명인 단원고 고창석 선생님이 중학교 시절 은사였다.

"뉴스 속보로 이름을 봤을 때 잘못 본 줄 알았다"는 조수영씨는 '선생님의 사진을 본 그 날, 4월 16일'이란 주제로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은사에 대한 기억을 길어 올렸다. 엄한 체육 선생님이었으며, 별명이 "미친X"이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올바른 교육이 큰 힘이 됐다"고 기억했다. 그런 기억은 또 있었다. 단원고 2학년 10반 이단비 학생의 사촌 언니라고 소개한 김현주씨였다. 김현주씨는 "이모한테 응원을 드리고 싶다"며 이모의 말을 전했다.

"결국은 우리가 바라는 건, 남은 미수습자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찾는 것, 그리고 정확한 진실규명을 통해서 앞으로는 이런 사고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 그것뿐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젠 힘내라는 말도 너무 죄송스러워요. 자식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힘을 낼 수 있겠어요. 그래도 어쨌든 우리 가족들이 함께하니까, 조금이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리본을 달아주는 것이 공감과 연대의 어떤 상징"

 16일 방송된 <김제동의 톡투유>의 한 장면. 김제동은 프로그램의 진행자라기 보다는 현장에 모여준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서 울고 웃는 사람이었다.

16일 방송된 <김제동의 톡투유>의 한 장면. 김제동은 프로그램의 진행자라기 보다는 현장에 모여준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서 울고 웃는 사람이었다.ⓒ JTBC


"왜 그런지 자세히 생각해 보면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치유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꾸 모여서 단비도 이야기하고, 창석 선생님도 이야기하고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놓고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거나 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럴 땐 잠깐 뒤로 물러났다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은화 얘기든, 다윤이 얘기든, 현철이 얘기든, (유가족)엄마, 아빠 이야기든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우리 안에 있는 죄책감들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가 봐야죠."

이들의 사연을 들은 김제동은 이렇게 모두를 다독였다. 이날 화면 속 김제동은 102회를 거치면서 가장 오랫동안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이어 <미생>의 작가 윤태호는 "저는 못 하겠어요"라며 한마디 해 달라는 김제동의 권유를 애써 물렀다. 이날 녹화장의 청중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공감의 눈물을 많이 흘렸다.

4남매를 키운다는 사회복지사 부부의 "사회적 비용을 국가가 같이 부담했으면 좋겠다"는 사연에도 그랬고, 6년을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최근 "차별 시정 조치를 통해서 정규직과 같은 월급을 받게 됐다"던 노동조합원의 사연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제동의 말처럼,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김제동도, 청중들도, 시청자도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여전히 세월호 얘기만 들으면 세월호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만 보면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나고 너무 고통스럽다,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분들이 주변에 너무 많으세요. 눈물과 기도와 공감, 이것이 저는 공화국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하고요. 기억을 해 주는 것, 이것이 의무이고 그것이 결국은 피해자들한테도 가장 큰 치유죠.

그래서 그것의 어떤 한 작은 상징으로 저는 세월호 노란 리본이 있잖아요. 리본을 달아주는 것이 공감과 연대의 어떤 상징이고 내 표시이기도 하고, 그것이 사실은 피해자나 같이 연대를 하고 공감을 하는 사람한테 세상에 저런 사람들이 아직도 저렇게 많구나라는 확인이 결국은 치유의 아주 기본적인 근간, 기반이 되는 거죠."

세월호 3주기 이틀 전이던 지난 14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안산으로 이사를 하기까지 한 정 박사는 심리공간 이웃의 대표로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의 심리 상담을 맡아 왔다.

15일과 16일,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3주기'를 추모했다. 16일 인천공항에서 노란 리본을 단 모습이 포착된 배우 김고은을 비롯해 많은 연예인, 유명인들도 자신들의 소셜미디어에 추모의 글과 사진을 게재하며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세월호 3주기'의 국민적 추모가 끝일 수 없다. "리본을 달아주는 것이 공감과 연대의 어떤 상징"이라는 정 박사의 말처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연대하고 공감해야 맞다. 그래야만 전 국민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다. 콜드플레이의 공연 속 추모나 <톡투유>의 이야기들, 또 1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세월호 편' 역시 그러한 연대와 공감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영향력이 큰 대중문화, 방송, 예능, 드라마에서 더 많은 '세월호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4주기, 5주기에도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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