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변하고 있다. 아니 변화가 강제된다. 대통령 후보부터 너도 나도 자신이 4차 산업 혁명의 주역이라 단언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던 그 시점부터, 사람들은 이제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인공 지능'이 판을 친다는 세상을 도대체 어찌 맞이해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 우리가 몸담아 왔던 세상과 산업혁명으로 만들어진 세상이 무엇이 다르단 것일까? 

이를 위해 미-중 등 선진국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저 산업적 변화만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적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사회와 교육이 변화하고 있다. 그 중 돋보이는 건 미국의 '스타트업'. 교육에 있어서의 '메이커(maker)'와 산업에서의 '스타트업(start-up)'이라는 트렌드는 창의력에 기반을 둔 '무한도전'과도 같은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다수의 스타트업 기업이 창업중이다. 이 중 정작 성공하는 기업은 1%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달라진 사회 분위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고무한다. 바로 여기, 이 달라진 트렌드에 4월 16일 <SBS스페셜- 나의 빛나는 흑역사>의 배경이 자리잡는다.

 나처럼 망하라는 동아대 한석정 총장

나처럼 망하라는 동아대 한석정 총장 ⓒ SBS


나처럼 망해라

동아대학교의 한석정 총장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이상한(?) 강연을 하곤 한다. 이른바 '나처럼 망해라.' 한석정 총장의 또다른 이력서는 들어가는 기업마다 망해서 마흔이 되도록 전전했던, 심지어 그가 유학을 가자 그곳 대학도 망하는 것 아니냐는 친구들의 웃음섞인 우려를 들었던 그의 실패사로 가득차 있다. 한 총장은 재수, 폐업, 그리고 총장이 된 이후에도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서의 실패로 가득찬 자신의 또 다른 이력서를 학생들에게 자랑하며 '실패'는 인생에서 당연한 것이라 '권'한다.

이렇게 4월 16일 방영된 <SBS스페셜-나의 빛나는 흑역사>는 우리 사회에서 '두려움'의 대상이 된 '실패'를 불러낸다. 과연 그 '실패'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실패'의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초대한 사람은 '성신제 피자'의 성신제씨다. '피자'라는 말이 낯설던 시절 우리나라 최초로 해외 피자 브랜드인 '피자헛'을 도입하여 30대의 입지전적 사업가가 되었던 그. 이후 미국 팝가수 케니 로저스 치킨의 실패를 딛고 자생 피자 브랜드인 성신제 피자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암 수술 이후 몇 평의 가게에서 홀로 재기를 꿈꾸는 처지이다. 그런 그가 뒤늦게 자신의 실패를 돌아본다. 자신이 했던 실패를 되돌려 보기 싫어 처음 성신제 피자를 열었던 명동엔 발걸음도 하기 싫었다던 그. 그러나 그보다 더 실패를 했던 7전8기의 김승호 대표도 있다. 미국으로 건너가 하는 사업마다 족족 망했던 그는 도시락 사업으로 이제 4000억대의 자산가가 되었다.

김승호 대표를 통해 성신제씨는 비로소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은 실패를 부끄러워하고 아파했지만 정작 자신의 실패를 되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 뒤늦게 그는 예전 자신이 성공하던 시절, 그리고 실패를 하던 시절의 메모를 들춰본다. 그와 함께 사업을 했던 동료의 말처럼, 되돌이켜 보니 지난 시절 그가 했던 말 속에 '성공'의 자양분이 있었다.

 김승호 회장을 통해 성신제씨는 비로소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다.

김승호 회장을 통해 성신제씨는 비로소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다. ⓒ SBS


실패는 곧 도전 

이렇게 <나의 빛나는 흑역사>가 주목하고자 하는 건, 성공의 밑받침이 되는 실패다. 우리도 익히 아는 접착제의 성능 부족이 오늘날의 3M을 만들었던 사례에서 부터, 노키아의 도산 이후 그 인재들의 창업이 오늘날 새로운 핀란드의 부흥을 이끌어 냈던 사례까지 '실패'로 부터 시작되는 '성공'이다.

또한 이렇게 '실패'가 새롭게 조명되며 달라지고 있는 우리 사회 내 변화도 주목한다. 10대 시절부터 창업을 시도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던 젊은 스타트업 대표주자 양준철 대표는 자신의 실패를 거름 삼아, 회사에 실패의 경험을 단 실패목을 세우고, 직원들의 실패담을 회의에서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한다. 가장 큰 실패를 한 직원에게 상을 주는 회사도 생겼다.

왜 실패가 외면대신 '격려'를 받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앞서 말한 4차 산업 시대를 이끌어 갈 달라진 산업 환경에 그 이유가 있다. 노키아의 실패 이후 새로운 핀란드를 이끌고 있는 핀란드 최대 모바일 게임 회사 CEO는 '실패 장려 정책'을 벌인다. 10개의 게임을 만들면 그 중 9개가 실패를 하는데 바로 그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 다음의 성공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데 '장려 정책'의 취지가 있다고 말한다. 양준철 CEO 역시 계속된 실패를 놓치지 않은 것이 오늘날 성공의 기반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렇다고 상까지 준다고? 하지만 실패의 다른 말은 '시도'요, '도전'이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의어로 쓰인다. 유튜브의 스타이자 강연가로 활동하는 전문 블로거 지아 장이 있다. 미국에서 비자를 받는 것에서부터 취업까지 모든 것을 실패했던 그는, 그런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100번 거절 당하기 동영상을 시도한다. 처음 거리를 지나는 사람에게 1달러를 빌리기 위해 주저하고 목소리를 떨었던 그는, 이제 '거절'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능숙하게 요청하고, 여유롭게 거절당하는 전문가로 거듭났다. 즉, '두려움'의 대상인 '실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 '실패'로 인한 '늪'에서 자신을 건져낼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핀란드 최대 게임 회사 CEO 일카 파나넨. 10개의 게임을 만들면 그 중 9개가 실패를 하는데 바로 그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 다음의 성공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데 '장려 정책'의 취지가 있다고 말한다.

핀란드 최대 게임 회사 CEO 일카 파나넨. 10개의 게임을 만들면 그 중 9개가 실패를 하는데 바로 그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 다음의 성공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데 '장려 정책'의 취지가 있다고 말한다. ⓒ SBS


4차 혁명을 앞두고 달라질 산업 환경, 굳이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춘 트렌드가 아니더라도, 한 번 실패가 곧 인생의 망함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 견고한 의식에 대한 재고로 다큐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남는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실패는 긍정적이지만, 그것 역시 어쩌면 그 지난 시대의 '하면 된다'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언제나 그렇듯 실패를 해도 되는 '환경'에 대한 고민이 먼저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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