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왼쪽부터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 EPA/ 연합뉴스


시대의 아이콘을 중심으로 논할 때, 1970~1980년대가 차범근, 2000년대가 박지성의 시대였다면 2017년 현재 한국축구는 그야말로 '손흥민의 시대'다. 스물 다섯의 젊은 나이에 손흥민은 벌써 한국축구의 한 시대를 빛낸 위대한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리빙 레전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절정의 골 감각 보인 손흥민, 지금은 손흥민 시대

손흥민은 최근 절정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손흥민은 지난 15일 본머스전(4-0)에서 자신의 리그 12호골이자 올 시즌 총 19호골을 터뜨렸다. 손흥민은 지난 4월 1일 번리전부터 쉴 새 없이 득점포를 가동하고 있다. 번리전부터 리그 4경기에서 5골 1도움이다. 손흥민이 지난해 9월에만 5골을 터뜨리며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를 받았을 때를 뛰어넘는 페이스다. 이 기간 토트넘은 손흥민의 득점과 함께 파죽의 연승행진을 이어갔다.

손흥민은 이미 기성용이 보유하고 있던 아시아 프리미어리거 한시즌 최다골(8골) 기록, 자신이 2015년 레버쿠젠 시절 기록한 개인 한 시즌 최다골(17골) 기록을 모두 뛰어넘었다. 이어 '차붐' 차범근이 1985-1986시즌 레버쿠전에서 기록했던 역대 아시아 선수 유럽무대 한 시즌 최다골(19골) 기록과도 마침내 타이 기록에 도달했다. 또 박지성(전 맨유·QPR)이 프리미어리그에서 8시즌을 뛰며 기록한, 역대 아시아 선수 프리미어리그 최다득점(27골) 기록과도 불과 2시즌 만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제부터 손흥민이 골을 넣을 때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축구의 역사가 새롭게 바뀌는 것이다.

토트넘은 현재 리그 6경기를 남겨두고 있으며 FA컵에도 준결승까지 진출한 상황에서 손흥민은 최대 8경기 정도를 더 출전할 수 있다. 최근 페이스를 감안할 때 손흥민이 올 시즌 내에 차범근과 손흥민의 기록을 뛰어넘어 한국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수립할 것은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한 시즌 10골 정도만 넣어도 수준급 공격수로 평가받는데 20골은 그야말로 특급 선수를 증명하는 지표다. 그것도 변방 리그도 아닌 세계 최고의 리그로 꼽히는 EPL 무대에서 한 시즌 20골을 달성한 것은 세계 축구계에 내로라하는 스타 공격수들도 쉽지 않은 기록이다. 더구나 손흥민은 시즌 내내 주전으로 활약한 것도 아니다. 팀 상황에 따라 선발과 교체 멤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주어진 기회마다 놀라운 득점력을 선보이며 '주전의 자격'을 스스로 증명했다.

손흥민은 이제 단 1골만 더 넣어도 반세기 가까이 아시아 선수들 중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꿈의 한시즌 20골을 이루게 된다. 설사 훗날 손흥민의 기록을 경신하는 누군가가 나온다고 할지라도 손흥민이 '최초의 20골'을 달성한 개척자라는 상징성은 바뀌지 않는다.

차범근-박지성-손흥민, 모두 한국이 아닌 해외 리그에서 선수경력의 대부분을 보내며 한국 축구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들이다. 이들이 활약한 독일 분데스리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모두 과거나 지금이나 유럽에서도 최고 수준의 리그로 꼽힐 만큼 경쟁이 치열한 무대다. 차범근과 박지성은 이미 그들이 활약한 소속팀에서 외국인 선수임에도 당당히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다.

24세 손흥민, 차범근과 박지성 뛰어넘을까

 지난 4월 8일 잉글랜드 피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와 왓퍼드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2골 1도움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지난 4월 8일 잉글랜드 피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와 왓퍼드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2골 1도움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 EPA/ 연합뉴스


완벽해 보이는 이들의 축구인생에도 조금씩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차범근이 활약하던 시절의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은 전력상 그리 강호로 평가받던 팀은 아니었다. 차범근은 두 팀에서 모두 유로파리그를 들어올리는 업적을 세웠지만 리그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당시는 사실상 차범근이 에이스로서 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일 차범근이 지금 시대에 현역으로 뛰었다면 더 높은 수준의 빅클럽에서 훨씬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더 위대한 슈퍼스타 대접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축구가 아직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멀던 시절이라 당시 이론의 여지없는 월드클래스급 기량을 지니고도 차범근은 정작 월드컵같은 큰 무대에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적었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었다. 박지성은 유럽무대 첫 팀이었던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번을 포함, 소속팀에서 리그 우승만 6회나 차지했다. 또 챔피언스리그와 클럽월드컵 우승도 한 차례씩 경험하는 등 역대 아시아 선수 중 최고의 우승 청부사로 통했다. 다만 맨유 시절에는 부동의 주전은 아니었고 항상 로테이션 멤버에 만족해야 했다. 득점력과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들이 많은 팀 사정상 스스로 돋보이는 역할보다 팀을 위해여 희생한 면도 많았다.

그러나 공이 없는 상황에서의 움직임, 멀티 포지션과 전술 소화력, 큰 경기에서의 활약도 등은 어쩌면 차범근-손흥민보다도 더 뛰어난 선수였다. 특히 국가대표팀에서 이룬 업적만 놓고 보면 여전히 역대 한국축구 레전드 중 NO.1으로 꼽힐 만하다.

그 뒤를 잇는 손흥민은 차범근-박지성의 커리어에서 못내 미진했던 아쉬움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존재다. 손흥민은 분데스리가와 프리미어리그를 넘나들며 정상급 선수로서 차범근-박지성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차범근은 19골 기록을 수립했을 당시 이미 30대를 넘긴 베테랑이었지만 손흥민은 아직도 25세에 불과하다. '소리없는 영웅'에 가까웠던 박지성에 비해 손흥민은 전형적인 '골잡이'로서도 EPL같은 큰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차범근-박지성 같은 전설들과 동급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아직 손흥민이 이뤄내야 할 것이 많다. 당장 손흥민은 프로 데뷔 이후 아직 한번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으며 이렇다 할 개인 타이틀도 없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업적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가 속한 토트넘은 현재 리그 정상권을 다투고 있고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유럽클럽대항전에 나갈 만큼 현재보다 미래가 더 밝은 팀이다. 당장 올해만 해도 리그와 FA컵 우승 등의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

무엇보다 손흥민은 아직 젊다. 아시아 프리미어리거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토트넘에 입성한 손흥민은 올 시즌의 활약을 바탕으로 토트넘의 재계약 우선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시즌 중에도 이미 유럽 명문팀들의 이적설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유럽무대에서 순탄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고 했을 때 앞으로 10년은 더 활약하며 무수한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 갈 수 있다.

하지만 변수는 그가 아직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차범근은 공군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독일에 다시 진출했고, 박지성은 2002 한일월드컵 4강으로 인한 병역혜택을 받았다. 손흥민은 병역혜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2012 런던올림픽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대표팀 승선에 실패했고, 지난 리우올림픽에는  참가했지만 팀이 8강에서 탈락하며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다.

1992년생, 만 24세인 손흥민은 최종학력이 중학교 졸업이어서 4급 보충역 소집 대상자이며 늦어도 2019년까지는 병역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현재로서 손흥민이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가오는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밖에 없다. 손흥민이 유럽무대에서 차범근-박지성의 업적을 뛰어넘어 선수경력을 이어가기 위해서 병역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어쩌면 최대의 관건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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