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조 트위터.

존 조 트위터.ⓒ 트위터 갈무리


지난 2009년, <스타트렉 더 비기닝> 개봉 당시 내한한 배우 존 조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인터뷰룸에 들어서는 존 조에게 놀란 건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놀랍도록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그는 1972년생으로 당시 3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또 하나는 그의 지적이고 신중한 면모였다. <해롤드와 쿠마>를 비롯해 필모그래피 중 일정 작품이 코미디로 채워진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존 조가 전하는 사려 깊고 진중한 분위기는 반갑고도 신선했다. 인종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은 심지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임기 첫해였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이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특별히 배우로서가 아니라 모든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겪는 편견이나 오해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다만 배우들이 좀 더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슈화되는 것뿐이고.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우리 아시아인들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분명히 있지만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존 조에게 최근 얼토당토않은 비난이 쏟아졌다.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승객 폭행과 인종차별 사태와 관련해서다. 그는 지난 10일(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가 만든 상황과 이번 일에 분명한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인종 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오버부킹 상황 당시 담당자들이 하차할 승객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하필 동양인 승객 4명을 지명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9000여 회 리트윗된 존 조의 이 트윗 글에는 무려 5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슬로건을 뜻하는 #MAGA란 해시태그를 단 트럼프 지지자들의 이른바 '악플'이었다. 일부 외신은 유독 존 조에게 쏟아진 이러한 '악플'이 존 조가 아시아계 미국인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달았다. 인종 차별을 지적한 글에 다시 인종차별적 항의가 쏟아지는 웃지 못할 씁쓸한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배우 존 조와 제임스 건 감독을 향한 다른 목소리  

유나이티드 항공 사태를 지적한 유명인은 존 조 뿐이 아니었다. 한국에 잘 알려진 가수 리처드 막스 역시 지난 11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사건은 정말 비현실적"이라며 "나와 함께 유나이티드 항공 보이콧 할 사람?"이란 글을 게재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조스 웨던도 소셜미디어에 "다른 승객들의 편안함을 위해 우리는 잔혹한 카니발리즘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미 소셜미디어상에서는 '#BoycottUnitedAirlines', '#boycottunited' 등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어이없는 대처를 비판하고 보이콧을 선언하는 해시태그가 점령한 지 오래다. 배우 마크 러팔로를 비롯해 마돈나, 엘튼 존 등 유명인들도 동참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의 연출자 제임스 건 감독도 유나이티드 항공 사태와 관련해 항의를 받았다. 제임스 건 감독은 지난 14일(현지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유나이티드 항공 사태를 희화화고 조롱하는 사진을 게시한 뒤 "정말 웃긴 장난감이다"라는 글을 적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 레고 장난감 세트 겉면에는 유나이티드 항공 직원들의 폭력과 피로 얼룩진 피해자의 상황을 묘사한 레고 장난감을 백인 아이들이 가지고 놀고 있다. 항의가 잇따른 것은 당연지사. 제임스 건 감독은 다시 "유나이티드 항공을 풍자하려던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도 유머로 승화시킨다"며 해명에 나섰다.

제임스 건 감독은 '반어법'에 가까운 영어식 표현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문화적 차이'를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트위터 사용자의 항의가 계속되자 제임스 건 감독은 관련 글을 삭제했고, 자신이 유나이티드 항공 사태에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한 차례 더 강조하면서 일단락됐다. 

존 조에게 쏟아진 과도한 비난과 제임스 건 감독을 향한 항의는 분명 상징적이다.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단면이자,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미국(을 포함한) 내 인종차별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대중예술계에 드리워진 '트럼프 이펙트'

최근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할리우드 영화가 원작의 유색 인종 캐릭터를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이른바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논란을 겪어야 했다. 잘 알려진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을 할리우드가 영화화면서 주연으로 백인인 스칼 요한슨이 캐스팅되면서 필히(?) 거칠 수밖에 없는 논란이었다. 원작자인 오시이 마무로 감독이 요한슨의 연기를 극찬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할리우드에 만연한 이 '화이트워싱' 문제에 여전히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는 관객들은 적지 않다.

이렇게 할리우드 내 해소되지 않는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지난 3월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진행한 지미 키멜은 "작년에 오스카상이 꽤 인종차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올해 사라졌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다. 감사를 표하고 싶다"며 비꼰 바 있다. 결국 올 아카데미상 작품상은 초유의 시상 번복 사태를 거친 끝에 <문라이트>가 수상했다. 성소수자와 유색 인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문라이트>는 흑인 감독과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는 작품이다.

한편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지미 키멜은 오프닝 멘트를 통해 "현재 나라가 둘로 분열돼 있다. 이제 우리는 한데 모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사람들이 긍정적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걸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이 그리 쉽사리 해소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이 가져다준 충격은 여전히 가시줄 모르고 있다. 존 조가 꼬집은 대로, 이번 유나이티드 항공 사태 역시 '트럼프 이펙트'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희망스러운 것은 존 조가 받은 차별적인 언사들에 대한 반대 의견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이리라. 제임스 건 감독의 '반어법'에 대해 논쟁을 벌인 이들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트럼프 정부의 역주행에 가까운 반역사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존재하느냐 여부는 중요해 보인다. 며칠째 전 세계인을 분노케 한 유나이티드 항공사, 이들을 향한 식지 않은 향한 비난과 우려가 주는 경고도 그와 일맥상통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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