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의 여왕>의 주인공 유설옥(최강희 분)은 놀라운 추리실력을 가졌지만, 그 특출난 능력을 발휘하고 살 기회가 없었던 인물이다. 누군가의 학력이나 사회적 위치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기준이 된다. 명문대나 대기업이라는 간판은 한 사람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게 만든다. 금수저라는 말이 유행한 것 또한 '스펙'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됐다. 가끔은 비아냥을 가장하기도 하지만 '금수저'에 대한 단어에 숨겨져 있는 것은 '금수저'에 대한 호기심과 부러운 시선이다. 이런 현상 역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라는 가치가 그 사람의 삶 전반을 평가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삶에 대한 행복도는 그 사람의 인간관계나 인격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지만, 제 3자가 누군가를 평가할 때는 막연히 그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많을수록, 지위와 명예가 높을수록,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것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이것은, 더 가지지 못한 자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에 시달리고 불행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편견을 뜻하기도 한다.

스펙 속여야 능력 발휘할 수 있는 주인공

 <추리의 여왕> 속 최강희는 뛰어난 추리력에도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여주인공을 맡았다.

<추리의 여왕> 속 최강희는 뛰어난 추리력에도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여주인공을 맡았다.ⓒ KBS


유설옥은 그런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결혼 8년 차 주부. 학력은 고졸이다. 거기에 시누이와 시어머니의 지독한 시집살이까지. 남편이 검사라는 멀쩡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유설옥에게 오히려 그 타이틀은 버거운 짐이다. 남편에 비해 스펙이 없는 유설옥은 집안에서 제 목소리 한 번 내기 어려운 존재기 때문이다. 유설옥의 희생은 남편이 검사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실제로 스펙을 가진 것은 남편이고 유설옥은 그저 별 볼 일 없는 아줌마일 뿐이다.

그런 유설옥에게도 특기가 있었으니, 바로 추리력이다. 추리소설은 물론, 각종 범죄학 전공 서적과 흥미로운 사건들에 대한 기사 스크랩까지. 한때 형사가 꿈이었던 유설옥은 돈 주고도 배우거나 살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지식과 간접경험을 쌓았다. 물론 이것은 학위가 없는 한, 단순한 취미일 뿐 결코 인정받을 수 있는 스펙은 아니다.

 스펙을 '속여야'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여주인공

스펙을 '속여야'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여주인공ⓒ KBS


그런 유설옥과 엮이는 형사 하완승(권상우 분)은 처음에는 유설옥의 추리를 무시하지만, 유설옥이 정리한 자료들을 본 후에야 "범죄학 박사냐"고 묻는다. 유설옥은 "뭐 비슷한..."이라며 대답을 얼버무린다. "심리학?"이라고 다시 묻는 말에 다시 말끝을 흐리는 유설옥을 심리학 박사로 오해한 하완승은 그제야 그의 추리를 새겨듣게 된다. 결국 '고졸' 학력의 여성이 가진 한계로는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일조차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그토록 염원했던 사건 현장에 투입되어 추리를 시작하는 유설옥의 가슴은 설렌다. 클리셰라도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인물의 뛰어난 능력 발휘는 충분히 흥미롭다. 내용 전개는 크게 새롭지 않지만, 여성 탐정이라는 소재는 한국에서 좀처럼 사용되지 않은 소재이기도 하다. 아줌마에, 고졸. 이 모든 편견을 뛰어넘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유설옥의 모습은 꽤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드라마는 유설옥의 이 평범함 속에 숨겨진 비범함을 증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도 모자랄 순간에 유설옥을 현실로 끌어내린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울리는 시어머니의 전화가 대표적인 예다. 추리에 점점 몰입하는 유설옥은 강하게 주장하여 증거 자료를 확인하거나, 취조실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여주인공이 그런 억지를 부린 후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포인트는 여주인공의 멋진 능력 발휘의 순간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이 모든 기대를 산산이 부수며 여주인공을 '민폐형' 캐릭터로 전락시킨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댁에 매여 살 수밖에 없는 여성의 캐릭터는 구태의연하다. 자신의 권리나 요구조건을 관철하지 못하는 며느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한 캐릭터의 변주에 불과한 것이다. 아니, 구태의연함을 신선하게 풀지 못한 탓이 더 크다. 능력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을 만들어 긴장감을 주려는 속셈이었겠지만, 문제는 이런 여주인공의 현실이 공감보다는 답답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굳이 유설옥의 스펙이 발목을 잡는 장면이 추리의 한 가운데 일 필요는 없는 일이다. 드라마가 4회 동안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의 스펙에 대한 편견은 이미 깨진 후다. 그러나 다시 등장한 유설옥의 시어머니라는 마이너스 '스펙'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포인트 잡지 못한 엉성한 긴장감

 추리의 완성도에 집중해야 드라마가 산다.

추리의 완성도에 집중해야 드라마가 산다.ⓒ KBS


<추리의 여왕>의 포인트는 바로 '추리'에 있다. 추리라는 소재를 살리지 못하면 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보장할 수 없다. 시집살이나 스펙에 대한 한계 등은 어디까지나 양념이다. 그 양념을 활용하여 완성해야 하는 것은 바로 주인공이 하는 추리의 기승전결이다. 그 세부사항이 얼마나 잘 조율되느냐에 드라마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추리의 여왕>은 '추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살인사건이라는 심각한 상황에서 울리는 전화벨과, 코믹함으로 넘어가는 설정은 엉성한 사건 구조를 메우기 위한 장치지만, 오히려 추리과정에 대한 엉성함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사건의 긴박함이나 이야기의 반전 등에 힘을 싣지 못하고, 여주인공의 주변 상황에 힘을 빼앗기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야기는 점점 긴박해지기보다는 느슨해지고 피곤해지며 사건의 해결은 다음 주로 넘어간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추리의 여왕>에서 시청자들은 '추리'를 보기를 원한다. 그 추리란, 긴박함과 반전으로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정도의 몰입력을 갖춰야 한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 많은 마니아들이 열광한 이유를 생각해 보라. 사건에 맞닥뜨린 주인공은 독특한 캐릭터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그리고 한 사건의 호흡은 2회를 넘기지 않는다. 자칫 늘어지면 추리극은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추리극은 보통 드라마보다 훨씬 더 긴밀하고 치밀한 구성을 갖추어야 한다.

잡다한 이야기를 빼고 번잡스럽지 않은 추리극을 <추리의 여왕>으로 보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시청자는 주인공의 긴박한 '추리'의 현장에 동화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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