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빠는딸>에서 여고생 딸 원도연 역의 배우 정소민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아빠는딸>로 정소민은 상업영화로는 첫 주연 캐릭터에 도전했다. 고교생 원도연, 그리고 사고 이후 영혼이 뒤바뀌어 중년 가장 원상태의 모습을 함께 연기해야 했다. 3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내공이 필요한 역할. ⓒ 이정민


의외의 악바리. 조금이나마 정소민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 사이에서 나오는 평가의 일부다. 마냥 맑아 보이고, 대화 중에 생각을 거듭할 정도로 진지하기도 한 그에게서 근성을 엿보기란 어렵다. 다만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 그리고 선택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근 개봉한 <아빠는 딸>에서 정소민은 실제 나이보다 10살 어린 고교생 원도연, 20살 많은 아빠 원상태를 연기했다. 사고로 두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는 일종의 '바디체인지' 설정으로 서로에 대해 소원했고, 벽을 쌓아온 부녀가 점차 마음을 돌려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일본소설 <아빠와 딸의 7일간>을 원작으로 했다.

'아재'로 거듭나기

 영화 <아빠는 딸> 관련 이미지.

영화 <아빠는 딸> 포스터. 해당 이미지 촬영 때 정소민은 적극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대본이 너무 재밌다가도 막상 첫 촬영이 다가오면서 막막하게 느껴졌을 정도로 중년 아저씨 역할은 정소민에게 큰 부담이었다. 촬영장에서 면밀히 윤제문의 말투나 걸음걸이 등을 관찰했지만,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감정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실제 아재들과 깊이 얘기해보기로 했고, 연출을 맡은 김형협 감독 등과 많은 대화를 하며 캐릭터를 잡아갔다.

"2년 전이라 정확히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촬영 내내 얘기하며 찍었다. 시나리오에서 바뀐 부분도 많다. 하다 보니 또 다른 감정이 생겨 이런저런 제안을 했는데 받아주셨다. 예능에서도 얘기했지만 실제로 아빠가 즐겨 입는 파자마 등을 가져와 현장에서 입기도 했다. 감독님이 여러 영화도 추천해주셨는데 <하프 웨이>라는 일본영화가 가장 기억난다. 학교 안 정서를 위한 거였는데 알고 보니 무 각본이더라. 어쩐지 캐릭터들이 다들 너무 살아있다 싶었다.

아무리 아빠를 이해한다 해도 그건 딸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잖나. 스스로 상태로서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 내면이 무겁게 다가왔다. 가장이자 만년 과장으로 굉장히 책임이 크게 느껴졌다. 너무 외로울 것 같고, 허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선 자기보다 어린 상사에게 구박받고, 집에선 딸에게 무시 받고 참 삶이 지치겠다 싶었다. 그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상태와 도연을 오고 가야 했던 정소민은 평소 작품에 들어가기 전 진행하는 일기 쓰기를 시도했다. "실제 나와 다른 점을 파악하려 일기를 써보긴 하는데 이번 캐릭터가 나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캐릭터였다"고 그가 고백했다. "같은 사람이고 한국 국적인 걸 빼고 나와 모든 게 달랐다"며 정소민은 "앞으로도 이런 캐릭터는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때로는 너무 생각하지 않고 소꿉놀이하듯 접근할 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도전의 이유

 영화 <아빠는딸>에서 여고생 딸 원도연 역의 배우 정소민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코미디 연기를 연달아 했지만, 정작 정소민은 코미디 연기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일종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정면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 이정민


2년 전 <아빠는 딸> 촬영 당시 정소민은 <마음의 소리> 속 애봉이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었다. 둘 다 코미디 장르다.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 "코미디 연기가 가장 어렵고 부담스럽다"고 말한 바 있는데 굳이 최근작을 연달아 코미디로 택했다. 이 지점에서 정소민의 승부사 기질이 빛난다. "어떤 전투적 느낌에서의 승부가 아니라 좀 더 멀리 보려고 하는 차원이었다"고 그가 설명을 이었다.

"조금 더 잘하는 걸 어릴 때 계속하다 보면 나중엔 더 도전하기 힘들 것 같았다. 겁이 더 날 수도 있고. 그래서 지금 좀 어렵고 결과가 뒤떨어질지언정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그 시기에 평소 안 해봤던 걸 시도했다. 잘 못 하는 것에 부딪힌 건데, 수월함을 떠나서 하다 보니 그런 캐릭터를 이어서 하게 됐다. 그 시작이 <디데이>다. 의사도 의사였지만 내겐 털털한 캐릭터의 첫 시작이었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어려웠던 게 코미디였다. 코미디 연기를 잘하시는 선배들을 보면 타이밍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더라. 막상 내가 했을 땐 자유롭게 가지고 놀 근육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미 시나리오가 재밌게 나왔으니 거기에 충실 하자였다."

이 모든 말의 전제는 기회였다. 정소민은 "일단 내게 기회가 있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며 "뭔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매번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진짜 근성

 영화 <아빠는딸>에서 여고생 딸 원도연 역의 배우 정소민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배우가 됐다. 정소민은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 이정민


좀 더 이야기를 과거로 돌렸다. 고등학생 때 무용을 따로 배웠을 정도로 이미 연기와 예술 쪽에 꽂혀 있었다. 엄격한 아버지가 심하게 반대를 해서 "성적은 유지하면서 무용도 하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실제로 정소민은 약속을 지켰고, 뒤이어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하며 한 번 더 부녀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왜 그렇게 반대하셨을까" 당시를 회상하면서도 정소민은 "지금은 누구보다도 제 활동에 관심이 많다"며 웃어 보였다.

"엄마는 뭘 하든 응원하는 쪽이었는데 아빠는 제가 평범하게 공부하길 바랐다. 크게 사고 친 적도 없었고, 사실 좀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꾸미는 것도 잘 못 하긴 했지만 (웃음) 그렇게 반대하셨다. 집안에 예술계통 일을 하는 분이 없어서 먼 세계로 느끼신 것 같다. 연기하겠다고 말했을 땐 확신에 차 있었다. 처음엔 무용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접했는데 너무 매력 있더라. 입시 준비하는 친구들이 열정에 차서 하는 모습에 매료됐다.

그때 한창 꿈을 많이 꿨다. 겁도 없었다. 무용이나 연기를 한다면서도 나중에 먹고 살 걱정은 안 한 걸 보면(웃음). 하고 싶은 걸 쫓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연기과 입시에 떨어졌으면 무용과를 지원하려 했다. 다른 학교는 아예 시험을 안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 "아직 연기 외엔 직업을 바꿔야 할 정도로 매력적인 일을 만나지 못했다"며 정소민은 선택에 후회나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아빠는 딸> 홍보와 함께 정소민은 현재 KBS 2TV 주말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로 한창 달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아버지 이야기다. 극 중 인턴사원 변미영 역을 맡은 정소민은 "청춘들이 좀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며 응원의 마음도 보탰다.

"작품을 통해 저 역시 조금씩 생각이 넓어지고 쌓이는 것 같다. 굳이 벗어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캐릭터에서 배워서 좋은 변화가 생길 때가 있다. <아빠는 딸>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가장으로서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지금 하는 작품이 내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영화 <아빠는딸>에서 여고생 딸 원도연 역의 배우 정소민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딸의 연기자 생활을 극구 반대했던 정소민의 부친은 이제 엄마보다 더 열렬한 팬이 됐다. "<아빠는 딸> 개봉일과 상영관 현황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계셨다"며 정소민이 훈훈한 미담을 전했다. ⓒ 이정민


정소민, 이건 몰랐지?
2010년 드라마 <나쁜 남자>로 데뷔하자마자 지금의 이름을 썼기에 본명이 따로 있는 걸 아는 이가 드물다. 본명은 김윤지, 지금의 이름은 작명소에서 받은 자음을 가지고 직접 본인이 지은 예명이다. "일상에서의 나와 일할 때 나를 분리하고픈 생각이었는데 잘한 것 같다"며 그가 이름의 비하인드를 전했다. 한자 이름 '庭沼珉' 역시 본인이 붙인 것.


정소민 아빠는 딸 윤제문 아버지가 이상해 마음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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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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