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것은 우리 시대의 결혼관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보여주지만, 왠지 가슴 한편에 씁쓸한 감정을 남긴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의 졸혼은 이혼은 하지 않지만, 배우자와의 관계를 지속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졸업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포함된 말이지만 말처럼 끝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를 동반한 시원섭섭함으로 다가오는 단어는 아니다. 

백일섭의 졸혼

 <살림하는 남자들>

<살림하는 남자들>ⓒ KBS


예능 <살림하는 남자들>(이하<살림남>)에 나오는 백일섭은 졸혼이라는 단어를 친숙하게 만든 인물이다. 그러나 이 졸혼이라는 단어는 그의 생각과 가치관에서 출발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백일섭은 <살림남> 기자간담회에서 "졸혼이라는 단어를 몰랐다"고 밝혔다. 이어서 "어느 날 갑자기 기자한테 전화가 와서 '졸혼하셨군요' 하길래 그때야 알았다. 자꾸 그런 기사가 나서 여성분들한테 미움을 사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졸혼 얘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졸혼을 또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 다행스럽다. 오늘을 끝으로 졸혼 얘기는 그만하겠다"고 말하며 오히려 졸혼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담감을 나타냈다.

백일섭의 <살림남> 속 모습은 졸혼으로 포장되지만 뜯어보면 별거와 다를 바가 없다. 혼자서 밥을 챙겨 먹고 설거지하는 일조차 어색하기만 한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혼자라서 자유로운' 인생이 아니다.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삶의 의미를 다시 찾기 위해 배우자와 합의되어 이루어진 성숙한 관계라기보다는, 서로 악화된 관계 속에서 더 이상 혼인을 지속할 수 없어 이른 상황처럼 보였다. 혼자 살지만, 여전히 며느리의 도움이 필요한 그는,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기보다는 가부장 시대의 안타까운 결말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난 5일 방송에서 백일섭은 아내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딸과도 2년째 교류가 끊겼음을 밝혔다. 아들과 만나 술을 마시던 중, "온 가족이 모여 고기를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아들의 말에 눈물을 흘리는 백일섭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나도 가슴이 많이 아프고 미칠 것 같다. 네 마음 안다"는 말끝에 나온 "행복하자, 사랑한다"는 백일섭의 말은 어쩐지, 그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말처럼 들렸다.

백년해로의 어려움

ⓒ KBS


백일섭은 <살림남> 기자 간담회에서도 지금 상황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한다.

"나는 백년해로를 포기하고 (집을) 나왔지만, 부부가 백년해로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 좋든 나쁘든 부부간에 대화를 많이 해야 오래 같이 살 수 있는데 우리 부부는 애초부터 대화가 너무 없어서 결국 혼자 살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워낙 바쁘고 술 한잔 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또 아침 일찍 (촬영하러) 나가야 했거든. 지금은 그 부분을 가장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해를 바라지만, 가족은 오히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무심해지기 쉬운 존재다. 같은 공간에서도 서로와 멀어지고 서로에게 상처만이 되는 가족 간의 관계가 생각보다 빈번히 일어난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갈등이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결국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등을 돌리는 사태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을 나와서 생활해 보니까 그동안 내가 너무 사랑이라는 것을 몰랐고 사랑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강아지 제니를 입양해 함께 생활한 지 두 달 됐는데 제니가 내 행동반경을 먼저 읽는 것을 보면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것 같아요. 같이 살 때보다 아들, 며느리와 대화도 많아지는 등 사이가 좋아졌고 <살림남2>에 함께 출연 중인 정원관, 일라이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을 다시 배워 가고 있습니다."

백일섭의 말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소중함에 대하여 무심하다. '가족이니까' 당연한 관계가 아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끊임없이 환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그런 사고방식은 익숙하지 않다. 항상 무뚝뚝한 얼굴로, 따뜻한 말 한마디 걸 줄 모르고 집안일이나 아이 양육에도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자신을 위해 따듯한 밥을 만드는 부인의 수고로움 따위는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치부하고, 아이들과도 대화보다는 설교와 강요로 일관하기 일쑤다. 평소에 유대관계를 쌓지 못한 상태에서 들리는 설교는 오히려 반항심을 자극하고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히게 한다.

백일섭의 경우 역시, 그런 아버지들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석된다. 예전 <꽃보다 할배>에서 부인이 만들어 준 장조림을 걷어차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그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모습이다. <살림남>에서도 며느리가 나와 그 장면을 언급하며 해명해보았지만, 어디까지나 며느리는 관계가 틀어진 당사자인 부인이나 딸의 입장은 아니다. 그 때문에 여론은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 그런 단편적인 모습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결국 백일섭 자신도 인정했듯, 오랫동안 가족 구성원 사이의 소통 부재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당연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백일섭에게 며느리에게 주었던 "힘들지? 사랑한다"는 편지를 아내에게도 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상황은 다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런 아버지라고 해서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백일섭이 가족관계가 소원해 질동안 열심히 일한 것 또한 혼자만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백일섭 역시 가족의 생계를 아직도 책임지고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결국 살던 집을 나와야 했던 것은 백일섭이다. 아버지의 그런 고생과 희생에 대한 고마움이 희석되는 것은, 가족들과 나누지 못한 마음 때문이다. 가족을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권위를 내세워야 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따듯하게 보듬어야 할 인격체로서 대했다면, 오히려 남편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생겼을 것이다.

구세대 한국 아버지들의 노년

ⓒ KBS


<살림남>은 '살림하는 남자'라는 소재로 삼았다. 남자의 육아, 남자의 살림, 남자의 처가 방문 등이 예능의 소재가 되는 것은,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이 그런 일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소외된 아버지들의 모습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음을 핑계로 외면하고 부정했던 일들이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백일섭처럼 따로 사는 집도 있지만 같은 집안 내에서 본인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졸혼이라는 신 풍속도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우자는 선택할 수 있지만, 저절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자녀들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법적으로 가족이 되지만, 그 관계는 법적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저절로 성장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하는 작은 배려. 던지는 따듯한 말 한마디 같은 것들.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서로의 유대를 만든다는 단순하고 간단한 진리. 가족이기에 그 진리를 잊어버리기 십상이지만,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그 진리를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살림남> 속 백일섭에게서 느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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