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우필름


"북한군에 게이 병사가 있다."

지난해 초 TV조선 시사프로그램 <황금펀치>에 소개된 내용이다. 당시 방송에서는 전방 지역 카메라에 포착된 두 인민군 남성 병사의 모습이 공개됐다. 그들은 마주 선 채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고, 서로를 향한 스킨십은 얼핏 보기에도 꽤나 농밀해 보였다. 탈북자 출신의 전문가는 "북한에서는 10년 넘게 군복무를 하다 보니 동성 병사 간에 성행위를 통해 해방감을 얻기도 한다"고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공공연히 동성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영화 <어느 여름날 밤에>의 시작은 바로 여기에서부터다. 흐릿한 영상 속 두 인민군 병사의 모습은 오프닝 신을 통해 적나라하게 재현되고, '북한군'과 '동성애'라는 두 모티프가 미묘하게 결합하며 서사를 견인한다. 그렇게 영화는 남겨진 빈 칸을 하나하나 채운다. 3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북한군 게이 병사는 탈북 새터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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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용준(김태훈 분)이다. 그는 서울에 정착해 새로운 연인 태규(신원호 분)와 동거중이다. 용준은 한 아이의 눈을 다치게 한 태규를 대신해 그 아버지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돈을 건네고, 이 때문에 바쁘게 일하면서도 늘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용준 앞에 북한에 남았던 전 남자친구 재성(최재성 분)이 나타난다. 각각 과거와 현재의 두 연인 사이에서 용준은 혼란스러워 하고, 서로의 감정이 얽히고설키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용준의 서사를 내내 사적으로 대하는 영화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탈북자이자 동성애자로서 중첩된 용준의 약자성은 그저 배경으로 머물 뿐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영화가 내내 뒤따르는 건 보편적 청춘으로서 용준의 모습이다. 용준은 연인 태규 때문에 골치를 썩으면서도 그를 사랑하고, 아르바이트로 바쁜 와중에도 그와 즐거운 데이트를 이어간다. 재성의 등장으로 형성되는 삼각 관계도 다르지 않다. 세 사람 사이의 문제는 미련과 애정, 집착과 질투 속에서만 발생할 뿐, 사회적 시선이나 제삼자의 개입은 없다. 말하자면 <어느 여름날 밤에>는 퀴어 작품이기에 앞서 청춘 로맨스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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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코드에 비해 오히려 영화에서 더욱 부각되는 지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민낯이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탈북을 선택한 용준이 또다시 자유를 얻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은 특히 아릿하다.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한 그가 탈북자 친구를 통해 성매매에까지 발을 들이는 전개는 "돈을 벌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 한다"는 대사와 더불어 폐부를 찌른다. 다친 아들을 이용해 끊임없이 자신의 돈을 뜯어내는 남자에게 "당신도 김정은이랑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용준의 외침은 영화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만큼, 영화 속에 이어지는 성애 장면들의 수위는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특히 용준이 집 안에서 태규, 재성과 각각 벌이는 정사 신들은 강렬하면서도 관음적인 시선으로 연출돼 세 인물의 내면을 극적으로 대변한다. 해당 신들이 단순히 자극적 장치가 아니라 감정의 결을 담아낸 장면으로 보여지는 이유다. 특히 농밀한 동성애 장면을 연기한 세 주연배우가 모두가 이성애자란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연기에 진정성을 더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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