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케이블 채널 XTM의 예능 <남원상사>가 첫 방송을 시작했다. 딱히 흥미를 끌만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중년 남성들이 대다수인 출연진이나 남자들의 원기를 살려주겠다는 모토를 보면 이제는 너무도 흔한 '아재 예능'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니 말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프로그램 소개와 출연자 모집 공고에 '상처받은 남자, 여자에 대한 복수'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커지자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위트있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했다며, 공감이 가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게 세밀하게 제작에 주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궁금해진다. 정말로 그렇게 만들었을까?

 여론의 뭇매를 맞은 <남원상사> 모집 공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남원상사> 모집 공고ⓒ XTM


제작진이 발표한 입장에는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바로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가 '남성에 대한 이해를 도와 남녀 공감을 돕기 위함'이라고 밝히는 부분이다. 이와 비슷하게 메인 진행자인 신동엽은 방송 중간에 "남자들도 여성의 생각을 잘 알 필요가 있고, 여성들도 남자들의 생각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내가 의아했던 것은 누군가가 기가 죽고 주눅이 드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와 해결책이 있을 텐데, 왜 이들은 하필이면 그 타개법으로 '여성의 공감과 이해'를 이야기 했냐는 것이다. 그게 남성의 기를 펴는 데 무슨 역할을 하기에?

<남원상사> 속 여성들의 역할

실제로 <남원상사>의 여러 코너들 속에는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가령 '운전을 잘 하는 것이 남성의 자부심인가'를 실험하는 코너에서, 여성 스태프들은 운전 능력이 미숙해 남성 출연자들에게 주차를 부탁하는 역할을 맡는다. 썩 마음에 드는 설정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들이 그런 역할로 등장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프로그램이 이들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남성들이 능숙한 주차 실력을 뽐내며 차를 대는 동안 여성 스태프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들은 조수석과 뒷좌석을 꽉 채우고 앉아 진행자들이 '걸그룹 리액션'이라고 찬사를 보낸 행동들을 반복한다. 적당한 비음과 혀 짧은 소리로 애교를 남발한다.

말하자면 그 코너 내내 남자들은 운전 '능력'을 보이고 그 대가로 잘 꾸민 여성들의 인정과 지지, 호감을 얻어간다. (물론 가장된 것이지만) 이를 단순히 남성들의 이성애적 판타지 충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어떤 환상이며, 그 각본을 따르지 않은 여성을 <남원상사>가 어떻게 그리느냐이다. 가령 이 프로그램의 두 번째 코너에는 계속해서 속옷에 손을 집어넣는 남편을 멈추기 위해 자신도 똑같은 행동을 보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름의 기지를 발휘해 실력 행사를 한 셈인데 실제로 이 방법은 성공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의 여성에 대한 진행자들의 평가는 딱 한마디로 요약된다. '독하다.'

반면 남자들의 기를 살려주었던 실험카메라 코너의 여성들을 살펴보자. 차를 대지 못해 주차장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 여성들은 설정된 실험 상황 속에서 철저히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이들에게 시혜를 베풀고 '걸그룹 리액션'이라는 것을 얻는다. 말하자면 이 남자들의 기를 세워주는 것은 스스로의 운전 능력이 아니라 그런 능력이 없고, 그래서 무력하며, 그런 상태로 자신을 선망해주는 여성의 존재이다. 그래서 실험에 참가한 남성들은 설정된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 우위에 서며, 여성 출연자들은 마치 아이 같은 태도로 그 격차를 계속해서 확인시킨다.

 남자의 기를 살려준다는 <남원상사>

남자의 기를 살려준다는 <남원상사>ⓒ XTM


그들의 '기 살림'이 전제하는 것

물론 사회에서 우리는 이런 식의 이성 관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원이 있는 남성이 상대적으로 어리고 아름다운 여성을 '성취물'처럼 옆에 두는 사례는 흔하다. 그리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말처럼 이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적 자원에 접근하는 것이 힘들며, 그래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가장 용이한 방법이 외모를 가꾸는 것인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존재하는 것과 이를 욕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러한 욕구의 성취는 관계 내부에 있어서든 사회적으로든 성별에 따른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됨으로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바로 프로그램의 마지막 코너인 몰래카메라다. 이 코너에는 프러포즈를 하지 않고 결혼식을 했다는 이유로 아내로부터 지속적으로 불만을 듣는 남성이 등장한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사람이 남자의 기를 살려주는 프로그램에 등장해야 할까. 그가 겪는 문제는 기껏해야 관계의 작은 불화에 불과하다. 이건 조정과 협상이 필요한 문제이고, 필요하다면 프러포즈를 하고 말고의 문제이지 출연자가 주눅이 들고 위신이 깎일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이 여성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이성애 연애 각본 속에서, 이 문제는 출연한 남성의 약점이 된다. 그리고 적어도 프러포즈 문제에 있어서, 그는 무력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렇게만 살려지는 기라면 죽이는 게 낫다

그래서 코너에 등장한 출연자는 프러포즈를 받지 못해 아쉬워하는 아내가 마음에 걸리거나 그게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계속 그 이야기가 나오고 스스로가 위축되는 것이 지겹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그리고 몰래카메라에 참여한 진행자들은 여기에 화답하듯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프러포즈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그래서 모든 과정이 과잉이다. 이들은 출연한 여성을 가마에 태워 번화가를 돌고 대규모 악단을 동원하며 치어리더까지 등장시킨다. 여기에는 우리가 프러포즈하면 떠올리는 친밀과 애정, 신뢰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나는 너의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며 그렇게 하고야 말겠다는 힘의 과시만이 느껴질 뿐이다.

늘 당당함을 유지하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 누구나 살면서 위축되고 주눅이 드는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백번 양보해 이성과의 관계를 통해, 혹은 그 속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여 그런 난관을 극복해보고자 시도할 수도 있다. 마치 <남원상사>가 그렇게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력하며 의존적인 상대방과 대비된 우월한 위치에서 출연자들이 즐거움을 얻도록 하거나, 누군가를 대등한 협상의 대상이 아닌 단지 아무런 불만이나 불평을 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방식으로 이를 이룬다면 과연 그게 옳은 것일까.

그렇게 했을 때만 살아나는 게 남자의 기라면 그냥 죽이고 있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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