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년이 다 되어가는 김태용 감독의 귀한(?) 단독 장편 연출작 중 하나 <가족의 탄생>이다.

데뷔 20년이 다 되어가는 김태용 감독의 귀한(?) 단독 장편 연출작 중 하나 <가족의 탄생>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2015년 기준, 1인 가구가 27.2%로 전체 가구 중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2인 가구도 자그마치 26.1%로, 1인 가구와 2인 가구를 합치면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에는 1인 가구가 30% 이상에 육박할 거라고 한다.  

이에 여러 해석이 난무하고 어떻게든 1인 가구 시대로의 진입을 막아보려 애썼지만, 이제는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관련 대책을 세우고 관련 사업을 시작하고 상품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저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또는 이미 선행된 '발상의 전환'이 있다. 1인 가구를 '가족'의 한 형태로 받아들였다는 것, 더 근본적으로 '가족'의 형태에 제한을 두지 않게 되었다는 것.

1인 가구는 얼마 전에 생겨난 개념이 아니다. 인류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존재해왔을 형태다. 그렇지만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적어도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개념의 가족이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른바 '가족의 탄생'이다.

가족에 대한 고찰

 우린 이 영화를 통해 가족에 대한 고찰을 조금 더 밀고 나갈 수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우린 이 영화를 통해 가족에 대한 고찰을 조금 더 밀고 나갈 수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 롯데엔터테인먼트


1인 가구가 단기간에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는 다름 아닌 2000년대 초반이다. 아마 그때는 심히 우려되었을 것이다. 전통의 4인 가구 체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 와중에 영화 하나가 뚝 떨어졌다. <가족의 탄생>. 가족의 형태에 대한 고찰이 한창이었을 시기, 2006년이다.

1999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무시무시한 장편 데뷔를 한 김태용 감독이 참으로 오랜만에 상업 장편을 들고나온 것이다. 이후 2010년에 <만추>를 찍은 게 김태용 감독 필모에서 단독 장편 연출의 전부이니, 참으로 귀한(?) 작품이다. 작품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정녕 오랜 고심 끝에 좋은 작품을 내놓는 스타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제는 '탕웨이의 남편'으로만 사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가족의 탄생>은 제목이 주는 단조로움과 코미디 요소가 섞인 장르가 주는, 자칫 허술하고 별 볼 일 없다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는 달리 매우 심오하다. 시대의 변화를 캐치해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변화를 일정 정도 선도하면서 설득까지 한다. 억지 설득이 아닌, 여러 가족의 형태를 그저 보여주며 자연스레 생각이 바뀌게끔 한다.

다양한 막장 가족을 들여다본 숨은 걸작

 이 영화에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온다. 하나 같이 '막장'이라 할 만한데, 영화는 그들도 모두 가족이라 말한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온다. 하나 같이 '막장'이라 할 만한데, 영화는 그들도 모두 가족이라 말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세 개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어김없이 가족들이다.

미라(문소리 분)는 떡볶이집을 하며 약해 보이나 똑 부러지게 살아간다. 그녀 앞에 5년 만에 동생 형철(엄태웅 분)이 나타난다. 반건달이나 마찬가지인 형철, 오갈 데가 없으니 빌붙으려고 찾아온 것 같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족히 20살은 많아 보이는 무신(고두심 분)을 데리고 온 거다. 사랑하는 사이이고 결혼도 했단다. 얼마 안 가 또 다른 충격이. 무신의 전남편의 전 부인의 딸이라는 아이가 찾아온다. 이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인지. 한편, 미라에겐 결혼을 약속한 이가 있었는데 형철은 누나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면서 아이를 거둘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과연 이 '가족'의 운명은?

사랑 찾아 이리저리 오갔던 세월이 수십 년인 엄마 매자(김혜옥 분) 때문에 인생이 고달픈 선경(공효진 분). 더 이상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매자는 선경을 계속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매자의 내연남이 찾아와서 매자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와 매자 사이엔 아이도 있다. 선경과 그 아이는 이복 남매지간인 거다. 매자가 죽으면, 어린아이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더군다나 매자의 내연남은 다 큰 자식이 둘이나 있는 엄연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꼼짝없이 선경이 책임져야 할 처지가 된 것인데, 과연 이 '가족'의 운명은?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된 연인, 경석(봉태규 분)과 채현(정유미 분). 곧잘 만나는 것 같으면서도 잘 싸운다. 채현이 너무 헤프다는 이유로 경석이 채근한다. 경석이 보기엔 채현이 자신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아가 채현이 추구하는 사랑의 범위가 너무 넓다. 반면 경석은 한 사람만 보고 그 사람만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각각의 사랑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 둘은 극과 극이니만큼 서로 이해하기 힘들다. 어쩌면 좋을까? 서로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겠지. 이들은 자신의 '가족', 서로의 '가족'을 들여다보며 서로를 이해하고자 한다.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들인 만큼, 얼핏 보면 막장 영화네 하며 지나치기 일쑤이다. 그래서인지 개봉 당시 평단에선 상당한 평가를 받았지만, 20여만 명에 불과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망한 거나 다름없는 수치로, 김태용 감독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게 분명하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설득되지 않아서일까? 여하튼, 이 영화는 '숨은 걸작'이라 하고 싶다. 배우 공효진은 자신의 연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가족의 탄생>을 뽑곤 한다.

생각지도 못한 가족의 형태

 2006년 당시 이 영화의 '실험'은 실패했다. 즉, 영화가 주장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받아들일까?

2006년 당시 이 영화의 '실험'은 실패했다. 즉, 영화가 주장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받아들일까? ⓒ 롯데엔터테인먼트


언젠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연히 가족에 대해 대화를 하다가, "가족이 뭐지, 가족끼리는 어떻게 해야 해"라는 질문에 어머니께서 대답하셨던 바다. 어머니는 "가족은 천륜으로 만들어진 거야. 가족이라면 죽을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가족'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그때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크게 와 닿았고 가족의 정의로 정립되었다. 가족은 천륜.

그런데, 머리가 크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 절대적인 정의가 깨졌다. 아마, 지금은 금이 간 정도일 거고 앞으로 언젠가는 완전히 깨질 게 분명하다. '가족은 천륜'이라는, 인류의 오랜 명제가 말이다. <가족의 탄생>에 등장하는 '막장 가족'들은, 분명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족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명제 자체가 틀린 것이라면? 그들은 더는 막장 가족이 아니라 그냥 '가족'인 것이다.

3여 년 전쯤 EBS <다큐프라임>에서 '가족 쇼크'라는 제목으로 장장 9부작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방송 대상 3관왕에 빛나는 역작으로 나중에 책으로도 나왔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쇼크'는 단연 '타인들로 이루어진 가족' 실험이었다. 남녀노소 1인 가구들이 모여 한 가족을 형성한 것이다. 핏줄 하나 섞이지 않은 이들이 모여 '가족'이 될 수 있는가? 결론은 '될 수 있다'였다.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천륜으로 이루어진 가족보다 가족 같은 모습을 보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런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족의 탄생>이 보여주는 황당한 가족의 형태도 또한 '실험'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름의 확실한 공증이 끝나고 누구든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풍만한 상태에서의 실험. 플롯, 연기, 배경 등이 완벽했던 이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건, 시대를 너무너무 앞서갔기 때문일 테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에 개봉한 <그래, 가족>이란 영화는, <가족의 탄생>의 아류라고 할지언정 시대에 발맞춰 나가는 모양새를 띠었다. 거기에 한국 최초로 '디즈니'에서 배급을 하면서 기대를 모았는데, 참패를 면치 못했다. 영화가 속절없이 저퀄리티였거나, 아직도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이유일 테다.

부디 <가족의 탄생>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빛을 보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1인 가구를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했듯, 가족이라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형태도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하는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영화를 통해 그런 전환을 만끽할 수도 있겠다. 부디 '가족의 탄생'을 지켜보고 함께 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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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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