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스틸 이미지. 이런 '페미니즘' '교도소' 드라마가 또 있었던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스틸 이미지. 이런 '페미니즘' '교도소' 드라마가 또 있었던가.ⓒ 넷플릭스


2년여 동안, 교도소 생활을 했더랬다. '수감자'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것이 죄라면 죄랄까. 군 복무 기간의 대부분을 '춘천교도소'에서 보냈다. 지금은 폐지된 법무부 소속 경비교도대로 근무했다. 교도소 담장 안에서 군 복무를 하며 '주변인'으로 살며 교도소 생활을 엿본 감상은 셋 정도로 정리된다.

'인식구속'의 처절한 고통과 한국식 교정시설의 열악함, 그리고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와 같은 인간 본연의 놀라운 적응력들. 지금은 법무부가 '선진 교정 시설'로 탈바꿈했다고 홍보하곤 하지만, 과거 간접 체험했던 교도소의 실상은 결코 추천(?)해주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소설가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은 그 실상과 그 속에서 꽃피는 인간애를 적나라하게 그린 역작이다. 그러나, 돈과 권력을 보유한 소위 '범털'들은 분명 경우가 다를 것이다.

지난 2015년 9월 1000회 특집으로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아래 <그알>)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 1부는 이 '범털'들이 안락함을 영위하도록 배려하는 교도소(와 구치소)의 실상을 고발한 바 있다. 이들은 "교정 호텔"이라 불리는 1인실에서 변호사 접견으로 온 하루를 보냈고, 맘 편히 휴식을 취했고, TV를 시청했으며, 의료함을 가장한 식통에 담긴 사식까지 먹었다.

담장 밖에서 온 의료진에게 마음껏 진료도 받았다. 새 옷도 입고, 이른바 '개털'이라 불리는 일반 수감자들과는 다른 특별한 옷을 입는다. 당시 제작진과 만난 전 수감자들과 교정 시설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증언했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구속,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박근혜씨는 역대 전직 대통령 가운데 3번째요, 22년 만에 구속된 전직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벌써 CCTV가 제거됐다느니, 4~6인실을 독방처럼 사용한다느니, 구치소장이 휴일 면담을 했다느니 하는 특혜나 예우에 대한 온갖 설들이 무성하다. 즉각 과거 경험했던 교도소의 풍경과 <그알>이 재연한 '범털'들의 담장 안 생활이 '오버랩'됐다.

물론 박근혜씨가 재판 이후 수감될지도 모를 공간은 일반 교도소는 아닐 터. 넷플릭스의 공전의 히트작인 '미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아래 <오뉴블>)이야말로 박근혜씨가 <태양의 후예>보다 먼저 봤어야 했던 드라마다. 미국의 한 여자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2013년 1시즌을 시작으로 2017년 5시즌 방영을 앞두고 있다)는 단순한 교도소 대리 체험을 넘어 뜻밖의 감동과 색다른 재미, 페미니즘 드라마의 정수를 안겨 주는 필견의 드라마다.

전 세계 유일무이한 '페미니즘 교도소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주인공 파이퍼. 백인 중산층 여성이나 '여성 수감자'가 되면서 상황이 바뀐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주인공 파이퍼. 백인 중산층 여성이나 '여성 수감자'가 되면서 상황이 바뀐다.ⓒ 넷플릭스


주방 실세에게 찍히면 국물도 없다. 실제 '돌아이', 아니 번뜩이는 눈을 한 '크레이지 아이'가 호시탐탐 친구를 하자고 들이댄다. 공용 샤워실은 붐비기 일쑤고, 전화 한 번, 매점 이용 한 번 하려면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변태 같은 남성 교도관의 성희롱을 동반한 이죽거림도 참아내야 한다.

유리창도 없고, 마이크를 사용할 필요도 없는 면회는 비교적 자유롭다. 마주 앉아 손도 잡을 수 있다. 대신 오랜 스킨십도, 키스도 안 된다. 봉제든, 전기든, 작업장에서 노역하는 건 한국과 동일하다. 인종의 전시장인 미국답게,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에 중국인까지 모인 여기는 <오뉴블>의 리치필드 '여성' 교도소다.

주인공은 백인에 금발인 파이퍼 채프먼이다. 수년 전 사귀었던 애인이 하필 마약 딜러였고, 얼떨결에 마약 운반의 공범으로 몰렸다. 유대인 약혼자와 생이별을 하게 된 파이퍼는 15개월간 징역을 살아야 한다. 단 한 순간도 꿈조차 꾸지 않았던 감방 생활도 죽을 맛인데, 자신을 밀고했을지도 모르는 전 애인 알렉스도 같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이 암울한 상황을 가지고도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유니크한' 휴먼 코미디로, '세상에서 처음 보는' 페미니즘 드라마로 만들어 냈다. 원작은 '파이퍼' 커먼이 쓴 체험기 'Orange Is the New Black: My Year in a Women's Prison'이다. 실제 자신의 교도소 체험을 수기로 썼고, 베스트셀러가 된 이 작품을 '미드' <위즈>의 크리에이터 젠지 코한이 제작했다. 원작도, 각본/제작도, 주요 배우들도 모두 여성인 작품인 셈이다(배우이자 감독 조디 포스터도 초반 2개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위즈>는 '평범한 중산층 백인 여성이 어떻게 마약 범죄자로 전락하는가'를 소재로 한 걸작 '미드' <브레이킹 버드>의 여성 코미디 버전과 같은 작품이었다. 중산층 백인 여성이나 '범죄'와 '마약'이란 소재,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다는 점에서 <오뉴블>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상상력이 발동하지 않는가. 다인종에 개성 강한 캐릭터 열전과 여자 교도소에서 펼쳐질 쉽사리 웃지 못할, 그러나 웃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보편과 특수, '막장'을 넘나드는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류의 이야기들에. 사실 그보다 박근혜씨가 이 드라마를 봐야 할 진짜 이유는 어렵지 않다. 불리할 때마다 '여성 대통령'을 강조했던 전직 대통령이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여성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교도소라 불리는 학교에서 박근혜가 배워야 할 것들

 주요 캐릭터들. 이 작품 속 주요 인물들 대부분은 '수감자'라는 정체성을 통해 자신에 대해 돌아본다.

주요 캐릭터들. 이 작품 속 주요 인물들 대부분은 '수감자'라는 정체성을 통해 자신에 대해 돌아본다.ⓒ 넷플릭스


강요되고 혐오 받는 '여성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레즈비언과 이성애자와 트렌스젠더도, 엄마와 딸도, 강력범과 마약범과 좀도둑도, 부유하건 가난하건 이곳에선 모두 '수감자'다. 세상 남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비록 남(여)성 교도관들의 눈치를 봐야 하지만, 그래 봤자 수감자들에게 교도관들은 피하지 못한다면 이용하고 놀려 먹어야 할 철저한 대상들일 뿐이다. <오뉴블>의 여성 수감자들은 그 제한된 감시의 공간에서 오히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로 거듭나면서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러시아 출신 '레드'는 어떻게든 주방을 사수해야 한다. 소문난 작업꾼 '니키'는 약을 끊기가 그리 어렵다. '로나'는 세상 또 없는 '사랑꾼'이고, '티파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아이'이다. 간절히도 친구가 필요한 '크레이지 아이' 워런의 눈은 진짜 휘둥그레하고, '테이스티' 제퍼슨은 사실 흥이 넘치며, 프랑스계 흑인 '푸세'는 나이나 외양보다 훨씬 성숙하다. 교도관과 사랑에 빠진 철없던 디아스는 아이를 낳고 함께 수감 중인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이 여성 캐릭터들의 향연은 <오뉴블>만의 매력이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도 무리 없이 펼쳐낼 수 있는 넓고 다채로운 서사의 원천이다. 그 안에서 <오뉴블>은 '여성성'을, '차별과 차이'를, '이기심과 인간애'를, '다인종 국가 미국의 단면'을 발랄하면서도 무게 있게 성찰한다.

그 안에서 '백인 금발' 중산층이라는 인종과 계급적 우위에 섰던, 그래서 다른 수감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같은 인종의 교도관에게 기대려던 파이퍼는 마침내 이 교도소에 완벽하게 적응하기에 이른다. 우왕좌왕했던 시행착오도 시즌이 거듭되면서 종지부를 찍고, 그 안에서 '비즈니스'를 펼칠 만큼 능숙한 일원으로 거듭난다.

물론 <오뉴블>에도 '범털'이 등장한다. 시즌4에서 특혜를 받는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당연히 소외되고 매력 없는 캐릭터로 비친다. 그럴 수밖에.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라. 박근혜씨처럼 휴일에도 구치소장이 면담하며 챙겨주고, 널찍한 방을 쓰는 '특혜'의 주인공을 일반 수감자 중 누가 반길 수 있으랴.

다행히, 이 전직 대통령이 공동 샤워실을 경험한다는 소식이다. 비록 수감자들과 함께는 아니지만 말이다. 비록 박근혜씨가 고령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라도 '보통', '여성'들이 어떤 감정과 눈높이로 생활하는지 체험하고 배웠으면 하는 심정이다. 교도소를 다들 '학교'라고 하지 않던가. '미쿡' 이야기지만 한국의 여성 시청자들마저 환호시킨 <오뉴블>도 꼭 챙겨볼 수 있길 바란다.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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