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일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이날 레알 마드리드는 알라베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바로 그들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후아니토의 25주기를 기념하는 추모식이었다. 이날 레알 마드리드는 후아니토의 등번호였던 7번과 선수 시절 때 그의 사진으로 거대한 현수막을 만들며 그를 추모했다.

1980년대 레알 마드리드는 그 덕분에 기적과도 같은 역사적인 명승부들을 연출해냈다. 그리고 그가 남긴 '후아니토의 정신'은 오늘날 레알 마드리드 철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선수 시절 후아니토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리고 후아니토 정신의 유래는 무엇일까?

1)안달루시아의 열혈아

후아니토는 1954년 11월 10일, 에스파냐의 안달루시아 지방인 '푸엔히롤라'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1969년에 지역 유소년 팀인 푸엔히롤라에 입단한 후아니토는, 1972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후아니토의 신장은 169cm에 불과했지만, 그는 상대방에게 지기 싫어하는 투지와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소년 선수 시절 때 정강이뼈가 골절되면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성인 무대 데뷔 꿈과 멀어졌다.

결국, 1973년에 후아니토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떠나서 2부 리그 팀인 부르고스로 임대를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 완전 이적했다. 부르고스에 이적한 후아니토는 그곳에서 많은 득점을 기록하지 못 했지만, 영리한 플레이를 펼치며 부르고스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그리고 1부 리그에서 9득점을 기록하며 에스파냐 최고의 선수들에게 주는 '돈 발론' 상을 수상했다. 부르고스는 후아니토의 활약에 힘입어 14위로 시즌을 마치며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이처럼 후아니토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많은 팀들이 후아니토의 재능에 높은 점수를 주며 그를 영입하고 싶어 했다. 결국, 후아니토는 1977년에 그의 친정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을 결심했다.

2)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90분은 길다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을 맺은 후아니토는 산티야나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을 이끌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산티야나와 울리 슈틸리케, 비센테 델 보스케,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호르헤 발다노 등과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후아니토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첫 번째 시즌에 자신의 첫 번째 라 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1979/1980시즌 때까지 3년 연속 라 리가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1980/1981시즌부터 1984/1985시즌 때까지 후아니토는 라 리가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레알 소시에다드와 아틀레틱 빌바오 등과 같은 바스크 지방의 클럽들이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4년 연속 라 리가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1984/1985시즌 때는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 클럽인 바르셀로나가 라 리가 우승을 차지했던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라 리가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비록 5년 동안 라 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이 시기는 후아니토 개인의 경력에 있어서 만족할 만한 일들이 많았다. 그는 1983/1984시즌에 라 리가 17득점을 기록하며 피치치(라 리가 득점 왕)를 수상했다. 또한, 후아니토 본인을 포함하여 축구 역사상 길이 남을 일들이 생겼는데, 바로 '기적'이었다.

1980년대의 레알 마드리드는 영화에서 볼 법한 기적과도 같은 역전극을 많이 만들어냈다. 가장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1984/1985시즌 UEFA컵 3라운드 2차전과 4강, 1985/1986시즌 UEFA컵 라운드 2차전 경기였다.

1984/1985시즌 UEFA컵 3라운드 2차전 때 레알 마드리드는 안더레흐트 원정에서 0-3으로 패배했다. 그들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골이 필요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마놀로 산치스, 호르헤 발다노 등의 득점에 힘입으며 6-1로 승리했다.

UEFA컵 4강에 진출한 레알 마드리드는, 1차전에서 인터 밀란에게 0-2로 패배했다. 2차전 홈경기를 앞두고 후아니토는 그 유명한 말을 남겼다.

"걱정할 것 없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90분은 매우 길다."

후아니토의 말대로 레알 마드리드는 45분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산티야나의 멀티 골에 힘입어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후반 15분에 미첼이 결승골을 기록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인터 밀란을 꺾고 종합 3-2로 승리하며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리고 헝가리의 비데오톤을 꺾고 UEFA 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다음 해인 1985/1986시즌 UEFA 컵에서도 그들의 기적은 계속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3라운드 상대였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원정 경기에서 1-5로 패배했지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호르헤 발다노와 산티야나의 멀티 골에 힘입어 4-0으로 승리했다.

이처럼 2년 연속으로 기적과 같은 역전극이 일어나자,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후아니토를 경이롭다고 여겼다. 또한, 이때부터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유럽 대항전이 열리면, 지고 있는 경기도 언제든지 역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후아니토의 정신'이다.

하지만 열정적이면서 지기 싫어하는 후아니토의 성격은 독이 되기도 했다. 그는 경기에서 지고 있거나,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이성을 잃기도 했었다. 그는 1978년에 그라스호퍼 취리히와의 UEFA컵 경기에서 주심인 아돌프 프로콥을 폭행하며 2년 동안 유럽 대항전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다. 또한, 1986/1987시즌 유로피언 컵 4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로타어 마테우스를 고의적으로 밟았다.

특히, 아무리 같은 팀 동료라고 해도 후아니토와 맞지 않는 선수라면, 그 선수는 후아니토와 충돌을 피하기 어려웠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울리 슈틸리케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때 슈틸리케는 정말 대단한 선수였고, 그만큼 레알 마드리드에서 입지가 남달랐던 선수였다. 하지만 그 역시 후아니토와 충돌을 피하기 어려웠다. 두 선수는 라커룸에서 자주 충돌했고, 결국 슈틸리케는 1985년에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스위스의 뇌샤텔로 이적해야만 했었다.

울리 슈틸리케는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후아니토를 만나야만 했다. 바로 1985/1986시즌 UEFA 컵 8강 상대가 친정 팀인 레알 마드리드였기 때문이다. 슈틸리케와 만난 후아니토는 슈틸리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이처럼 열정적이고 지기 싫어했던 후아니토였지만, 그 역시 나이를 거스를 수 없었다. 후아니토는 여전히 레알 마드리드와 라 리가 역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우고 산체스와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등과 같은 젊은 공격수들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1986/1987시즌 라 리가 44경기 중에서 후아니토가 풀타임으로 소화한 경기는 5경기였고, 득점은 1득점에 불과했다.

결국, 후아니토는 좀더 많은 출전 시간을 위해서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CD 말라가와 로스 보리체스 등과 같은 하위권 팀들을 전전하다가, 1991년에 그가 맨 처음 축구를 시작했던 고향 팀인 푸엔히롤라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기적으로 끝나지 못한 생애, 레알 마드리드의 철학으로 살아 숨 쉬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아니토는 지도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메리다의 코치 부임하며 지도자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2년 4월 1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토리노의 UEFA컵 4강 1차전 경기를 관전했던 후아니토는 레알 마드리드의 2-1승리를 지켜봤다. 후아니토는 경기가 끝난 후에 자신이 살던 메리다로 돌아갔다. 그리고 4월 2일 새벽 2시 10분. 후아니토가 탄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트럭과 충돌했고, 그의 차량의 오른쪽 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졌다. 후아니토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후아니토가 사망하자 레알 마드리드와 팬들은 선수 시절 포기하지 않는 후아니토의 정신을 기리기로 결심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경기를 치러지면, 레알 마드리드의 홈관중들은 경기가 시작한 지 후 7분 후에 'illa illa Juanito maravilla!'라는 구호를 외친다. 이들이 7분 후에 이러한 구호를 외치는 이유는 후아니토의 등번호가 바로 '7번'이었기 때문이고,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에게 선수 시절 후아니토가 보여줬던 투지를 불어넣기 위함이다.

또, 오늘날 레알 마드리드의 코치들과 유소년 코치들은 후아니토가 남긴 '지고 있더라도 끝날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그들의 선수들과 유소년 선수들에게 가르친다. 후아니토의 정신은 레알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정신이 되었고, 후아니토는 레알 마드리드의 철학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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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http://ryuilhan1993.blog.me/220974315572

위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에 먼저 개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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