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당시 뮤지컬 <그날들>의 포스터. 나는 '규현' 덕질을 하다가 이 작품을 보게 됐고, 그렇게 덕 중 답도 없는 덕 '연뮤덕'이 되어 버렸다.

2014년 당시 뮤지컬 <그날들>의 포스터. 나는 '규현' 덕질을 하다가 이 작품을 보게 됐고, 그렇게 덕 중 답도 없는 덕 '연뮤덕'이 되어 버렸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비싸긴 해도 1년에 한 번 보니까 괜찮지 않아? 생일선물로, 응?"

중학생 때 슈퍼주니어 규현의 덕후였다. 나는 엄마를 졸라 규현이 출연하는 뮤지컬을 연례행사마냥 같이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규현의 노래와 춤을 실제로 보기 위해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 목적을 잊고 극 자체에 푹 빠진 날 발견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말에 뮤지컬 <그날들>을 보고 나오자마자 한 말은 "엄마, 나 이거 또 보고 싶어"였다. 경제적 어려움과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현실에 부딪혀 결국 다시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뮤지컬에 '입덕'했고, 내 덕질도 시작됐다.

<그날들> 커튼콜 영상을 보려고 유튜브에 들어갔다가 '관련 동영상'의 늪에 빠져 온갖 공연의 커튼콜과 프레스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식 날, 오늘 딱 한 번만 공연을 보고 수능 끝날 때까지 참겠다고 다짐한 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보러 갔다. 공연이 너무 좋아서 울었고, 앞으로 6개월 동안 이 즐거움을 못 느낀다는 게 서러워 한 번 더 울었다.

공연 보다가 흘린 눈물, 그때 감동을 위해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프레스콜 지난 2016년 12월 6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매년 겨울마다 많은 팬을 설레게 하는 '힐링극'으로 평가 받는다.

▲ 시도때도 없이 지뢰를...연극 <프라이드>를 보면 '돌고래'라는 말만 들어도 울컥하고,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보면 '오리'가 그렇게 애틋할 수 없다. 그리고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 빠지게 되면, 세상 모든 나비가 그렇게 슬프면서도 환희에 차 보일 수가 없다.ⓒ 곽우신


수능이 끝나자마자 수험표를 신나게 흔들며 열심히 공연을 보러 다녔다. 심지어 수시 발표가 났을 때, 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보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감동하여 울면서 밖에 나왔고, 그제야 휴대폰을 켜서 합격을 확인했다. 학원 선생님은 내 휴대폰이 꺼져 있길래 떨어진 줄 알고 정시 계획을 세우고 계셨다고 했다. 대학생이 되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조금 더 생기자 본격적으로 덕질을 시작했고, 푹 빠져 지금까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극이 있는 날은 정말 설렌다. 공연 시작 30분 전쯤 여유롭게 도착해서 티켓을 찾고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공연장 안은 적당히 소란스럽다. 일행과 함께 온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지만,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시작 5분 전, 곧 공연이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건조한 눈에 인공눈물을 넣고 휴대폰은 전원을 꺼서 가방 안에 넣는다. 의자 밑으로 가방을 밀어 넣고 등받이에 등을 기댄다. 극장 불이 모두 꺼지면 심장이 더 빨리 뛰고 순식간에 극 속으로 빠져들어 웃고 울게 된다.

모든 공연의 마지막은 커튼콜이다. 커튼콜은 아쉬우면서도 참 좋다. 싸웠던 사람들이 서로를 토닥이고 죽었던 사람들도 나와서 웃으며 인사하는 신기한 시간이다. 커튼콜 촬영이 허용되는 공연에서는 많은 사람이 카메라나 휴대폰으로 촬영한다. 하지만 나는 손바닥이 붉어질 때까지 손뼉을 치며 눈과 마음에 담뿍 담는 것을 더 좋아한다.

MR 혹은 오케스트라 연주까지 끝난 후 마지막 손뼉을 치고 나서야 밖으로 나온다.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보다 밖은 더 깜깜해져 있다. 나와 같은 공연을 본 사람들이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입안으로는 시원한 밤공기가 들어온다.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에 후기를 적으며 공연을 곱씹고, 집에 들어와서 티켓 북에 오늘 티켓을 꽂는다.

하지만 연뮤덕의 삶이 이렇게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티켓팅은 정말 전쟁이다. 나는 아군 한 명 없는 전쟁터에서 몇 명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적들과 '꿀자리'를 두고 싸워야 한다. 적들의 '이미 선택된 자리입니다' 공격을 몇 방 맞고 너덜너덜해져 결국 '쩌리석'을 예매한다. 한 장도 건지지 못한 채 장렬히 전사한 적도 수두룩하다. 취소표가 풀리는 12시와 2시에 패자부활전이 있다.

하지만 모든 자리가 열릴 때도 내 자리가 없었는데 고작 취소표 몇 장 풀린다고 내 자리가 있을까. 그래도 난 매일 새벽 희망을 품고 졸린 눈을 비비며 새로 고침을 누른다. 아주 가끔 하늘이 나를 도와 좋은 자리를 잡으면 몇 번이고 '좌석 위치 확인'을 눌러 보며 이게 내 자리가 맞나 흐뭇하게 웃는다. 심지어 캡처해서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놓기도 한다.

통장을 스쳐가는 나의 돈들이여

 22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회관 대극장,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커튼콜

▲ 쌀고흐와 아몬드 나무지난 1월 22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커튼콜 때 촬영한 사진. 이런 작품들 덕분에 미처 몰랐던 예술인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조형균은 잘생김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원래 잘생긴 배우다.ⓒ 곽우신


용돈과 아르바이트 월급은 그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모든 돈의 기준은 티켓값이 된다.

"커피 열 번 안 마시면 볼까 말까 고민하던 그 공연 볼 수 있겠다!"
"코트가 14만 원? 대극장 VIP석 한 장 값이네."

이렇게 커피도 안 마시고 옷도 안 사면서 돈을 아낀다. 하지만 극 관람 비용 통장을 만들어도, 적금을 들어도 애정극 하나가 돌아오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런데도 이 덕질을 계속하는 이유는 고통보다 행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공연은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가 사라지기에 특별하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배우들의 연기와 극장 안의 공기가 좋다. 배우와 호흡하고 다른 관객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그 느낌이 짜릿하다. 연극과 뮤지컬은 다양한 감정과 생각, 의미를 남긴다.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속 대사인 '그건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는 그 어떤 위로보다 힘이 된다. 사전적 의미 외엔 특별할 게 없던 나비, 돌고래, 오리가 보기만 해도 눈물 나는 것들이 되고, 잘 몰랐던 빈센트 반 고흐, 라흐마니노프, 윤동주, 백석의 삶에 대해 저절로 공부하게 한다.

공연은 일시적이지만 공연의 여운, 즉 나의 감정과 깨달음은 끊임없이 삶에 영향을 미친다. 연뮤덕이 된 후 통장은 비었지만, 머리와 가슴은 꽉 찼다. 무언가에 나의 돈, 시간과 노력을 쏟아 그보다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덧붙이는 글 공모 <내 안의 덕후>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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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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