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 날 우연히 보게 된 한 편의 영화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인생의 전환점이 된, 나의 덕후 인생을 열어준 그 영화를 잊지 못한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로 기억한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리모컨을 돌리던 중, 우연히 틀게 된 케이블 채널에서 낡은 영화 한 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기 위해 다시 리모컨의 버튼으로 향하던 내 손은 영화 속 앳된 청년의 얼굴을 마주하고서 멈칫했다.

분명히 어디서 본 얼굴인데... '앗! 성룡?' 그는 분명 액션스타 성룡이었다. 영화 속의 그는 주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20대 중반의 미청년이었다. 이미 주름 가득한 성룡의 얼굴에만 익숙했던 내게 앳된 성룡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리즈시절 외모와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감탄한 나는 어느새 리모컨을 내려놓은 채 영화에 푹 빠져들었다.

 영화 <취권> 포스터

영화 <취권> 포스터 ⓒ 오사원


술에 취해 비틀비틀... 중2 소년에게 다가온 성룡

그 영화는 바로 1978년에 개봉한 <취권>이었다.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성룡을 일약 쿵푸스타의 반열에 올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스토리는 매우 뻔하고 단순했다. 말썽꾸러기 청년 황비홍(성룡 분)이 은둔 고수인 소화자(원소전 분)로부터 궁극의 비전인 취팔선권(취권)을 전수받은 뒤 적을 무찌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초식(권법을 구성하는 동작)으로 적을 무찌르는 성룡의 모습은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어린 소년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 묘한 흥분에 사로잡힌 나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성룡이 화면 밖의 내게 "너도 강해질 수 있어!"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고백하건대 당시의 나는 매우 겁 많고 소심한 소년이었다. 시비를 거는 동급생들에 맞서 주먹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눈부터 깔고 보는, 차라리 몇 대 맞더라도 그냥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왼 뺨을 맞으면 오른 뺨을 내주는 예수와 같은 평화주의자였다면 몰라도, 나 역시 강한 남자를 꿈꾸는 철부지 소년이었기에 나는 결심했다.

'쿵후를 배우자!'

무술 독학 실패 후 찾아간 태극권 도장

쿵후를 배우기로 결심한 뒤, 내가 처음 향한 곳은 도장이 아닌 강남의 교보문고였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도장에 가는 것조차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형서점 스포츠 서가에는 다양한 무술 교본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서가를 뒤적거리던 중 내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단련시킨 당신의 잠재능력이 당신을 <쿵후>의 유단자로 만든다!"

 영화 <취권>을 보고 쿵후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필자가 처음 집어든 책.

영화 <취권>을 보고 쿵후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필자가 처음 집어든 책. ⓒ 김경준


낡고 흐릿한 흑백 사진들로 구성된 조잡한 쿵후 교본이었지만, 완벽한 근육을 자랑하는 이소룡의 사진과 함께 써진 문구는 또 한 번 나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 '이 책만 있으면 나도 성룡처럼 될 수 있다'는 부푼 꿈에 젖은 채, 나는 기어이 쿵후 교본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동작을 익히기 시작했다. 혼자서 낑낑거리기를 몇 시간째. 결국 초식 하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책을 내팽개치고 말았다. 독학 시도 끝에 얻은 결론. '나는 생각보다 더 지독한 몸치였다!'

독학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 나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집 근처에 위치한 태극권 도장을 찾은 것이다. 도장 문을 열기 전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했다. 문을 열자 한 눈에 봐도 연세가 지긋한 노(老) 관장님이 등장했다. 순간 영화 속 소화자의 모습이 겹쳐보였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이분이 나를 고수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나는 본격적인 무술 덕후(앞으로는 편의상 무덕이라고 하겠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친구도 별로 없고 별다른 취미도 없던 나는 뒤늦게 시작한 태극권에 모든 열정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기 무섭게 도장으로 달려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방학 때는 아예 새벽반에 등록해 아침 일찍 도장에 가기도 했다.

그러나 태극권을 수련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쯤, 나는 슬럼프에 봉착하고 말았다. 혈기왕성한 10대 시절 남학생들이 그렇듯이, 무술을 배우면 누구나 한 번쯤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느릿느릿 움직이는 태극권은 하루 빨리 강해지고 싶은 나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강한 무술을 찾아 다시 헤매기 시작한 나는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 인천 차이나타운에 고수로 유명한 화교가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강해질 수 있다는데 거리는 중요치 않았다. 살면서 인천을 가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꼬박 2년 동안 서울과 인천을 지하철로 왕복하며 화교 사부님 아래서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중국여행 당시 쿵후의 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중국여행 당시 쿵후의 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 김경준


본격적으로 시작된 무술 덕후(무덕)의 삶

무술을 수련하는 동안 내게는 또 다른 취미가 생겼다. 각종 무술 서적과 영상을 탐독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험서가 있어야 할 내 책장에는 각종 무술 교본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심지어 고2 겨울방학 때는 타이완까지 건너가 국내에 없는 희귀한 무술 교본을 구해오기도 했다.

틈만 나면 유튜브를 이용해 무술 영상을 찾아보고 고전 무협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그 시절 유일한 낙이었다. 이소룡-성룡-이연걸-견자단으로 이어지는 홍콩 무협영화계의 계보를 따라가며 다양한 스타일의 무협영화를 집중적으로 감상하기 시작했다. 용돈을 쪼개가며 홍콩 무협영화 DVD 콜렉션을 모으기도 했는데, 같은 영화를 수십 번씩 돌려봐도 도무지 질리지 않았다.

내가 고전 무협에 열광했던 것은 화려한 초식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 당시 고전 무협영화가 답습하는 스토리 구조 때문이었다. 나약한 청년이 비전을 얻은 뒤 적을 무찌르는 장면을 보면서 주인공의 모습에 나의 처지가 투영된 것이다. 나 역시 꾸준히 무술을 수련하면 절정고수가 되리라는 환상에 젖어 매일 매일 수련 의욕을 불태웠다.

대학에 입학한 뒤 소위 덕질은 한층 심화됐다. 입시지옥에서 자유로워지자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덕질에 뛰어든 것이다. 입학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도 바로 학교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희귀한 무술서적들을 찾아낸 나는 학교 근처 제본집에서 모두 스프링노트로 제본한 뒤 집에 소장하면서 두고 두고 감상했다. 매일 같이 도서관에 들러 무술 교본만을 빌려가는 나를 보며 사서와 제본집 주인 아주머니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무술 덕후로 살면서 모으기 시작한 각종 무술 서적들. 이중에선 타이완까지 건너가 수집한 책부터 학교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뒤 스프링노트로 제본한 책들도 있다.

무술 덕후로 살면서 모으기 시작한 각종 무술 서적들. 이중에선 타이완까지 건너가 수집한 책부터 학교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뒤 스프링노트로 제본한 책들도 있다. ⓒ 김경준


 2010년 여름, 나는 마침내 오랜 꿈을 이뤘다. 나를 무덕으로 이끌었던 영원한 우상 성룡을 만난 것이다. 국내 일정을 위해 방한한 그를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나 애지중지하는 무술 교본에 싸인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정성스레 작성한 손편지와 엽서를 그에게 전달했다.

2010년 여름, 나는 마침내 오랜 꿈을 이뤘다. 나를 무덕으로 이끌었던 영원한 우상 성룡을 만난 것이다. 국내 일정을 위해 방한한 그를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나 애지중지하는 무술 교본에 싸인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정성스레 작성한 손편지와 엽서를 그에게 전달했다. ⓒ 김경준


"무덕이 어때서!"

20대 초반의 나는 정말 다양한 무술을 경험했다. 견자단의 영화 <엽문>으로 영춘권 붐이 일고 있을 때는 잠깐이나마 영춘권을 배워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 무술을 해야 한다는 민족적 정체성을 뒤늦게 깨닫고 전통무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무술이 바로 '무예24기'였다. 무예24기는 조선 정조 때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가지의 기예를 의미한다. 대부분 검술과 창술 등 병장기 위주로 구성된 무예인 탓에 운동할 때는 반드시 칼이나 창을 들고 다녀야했다. 공원에서 운동할 때마다 날이 번쩍이는 칼과 창을 들고 다니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내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수련에만 전념하고 싶어도 갈 길을 멈춘 채 쳐다보는 사람들이나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 심지어 깔깔거리며 따라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낯을 붉히며 도망갔다.

결국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새벽이나 밤에 으슥한 곳을 찾아 수련해야만 했다. 무덕이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남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운동해야 한다는 건 상당히 억울한 일이었다.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지금은 대낮에 공원 한 가운데서 당당하게 무술을 수련한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달려가서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뭐? 왜? 무덕이 어때서!"

 2013년 9월 15일, 서울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 무예24기 공연에 참가한 필자가 권법을 선보이는 장면.

2013년 9월 15일, 서울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 무예24기 공연에 참가한 필자가 권법을 선보이는 장면. ⓒ 김경준


군대에서도 이어진 무덕질

"자, 한 번 휘둘러봐"

까까머리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자대에 전입 온 첫날, 한 간부가 내게 손부채를 쥐어주며 한 말이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군대에서만큼은 무덕의 존재를 숨겼어야 한다는 것을. 훈련소에서 작성한 병 신상기록부 취미 란에 당당하게 무예24기를 쓴 것이 화근이었다. 전입오기도 전에 간부, 선임할 것 없이 내 기록부에 적힌 취미를 보고 '이상한 놈 하나 들어왔다'는 소문이 쫙 퍼진 것이다. 결국 전입 첫 날부터 손부채로 검술을 선보이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선임들로부터 한동안 무예24기라는 별명으로 불려야만 했다.

1년 9개월의 군 생활은 무덕 생활의 시련이었다. 신체의 자유가 없으니 도장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마음 놓고 운동하기도 힘들었다. 선임들의 이목을 피해 구석에서 맨손 무예를 수련하기도 했지만 한창 검술에 심취해있던 내 아쉬움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칼을 쥔 손맛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나머지 기어이 분대장 선임에게 "목검 반입을 허락해달라"고 했다가 관심병사가 될 뻔한 일도 있었다.

결국 아쉬운대로 맨손 무예를 수련하면서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무술 영상을 찾아 감상하는 걸로 치솟는 수련 욕구를 다스려야만 했다. 어쩌다 외박이나 휴가를 나갔을 때는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 도장을 찾았다. 그렇게 실컷 칼을 휘두르고 복귀하면 한동안은 마음이 후련했다. 그러다 짬이 조금 찼을 때는 목검을 대용할 만한 나무를 찾아 낫으로 깎은 뒤 막사 한 켠에서 검술을 연마하기도 했다. 제설작전을 하다 말고 기다란 빗자루로 청룡언월도 수련을 하기도 했으니 나의 무덕질은 군대도 막지 못한 셈이다.

마침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최고참 선임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공개적인 덕질을 시전할 수 있었다. 중대장님을 찾아가 목검 반입 허가를 기어이 얻어내고야 만 것이다. 휴가를 이용해 목검을 반입한 나는 전역하는 그날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막사 옥상에서 열심히 칼을 휘둘렀다. 틈만 나면 칼을 휘두르지를 않나 단련한답시고 괴상한 자세로 버티는 나를 후임들조차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되뇌었을 뿐이다. "니들이 칼맛을 알아?"

대안학교에서 무술 가르치며 새로운 깨달음 얻어

전역을 계기로 나의 무덕 생활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도장에 나가거나 공원에서 혼자 운동하던 내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무림고수도 아니고 한낱 무덕에 불과한 내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두렵고 민망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무덕들을 양성해 무덕의 세계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품은 채 열정대학, 이태원대학교, 신촌대학교와 같은 대안학교에서 <조자룡창술배워볼과>, <조선무사검술학과>라는 과목명으로 공개강좌를 열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수련이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되새기며 함께 운동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혼자만 즐기던 무덕의 길로 많은 사람들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 뿌듯함도 느꼈다. 무엇보다 언젠가 정식으로 나만의 도장을 열고 문파를 세워 후학을 양성해야겠다는 꿈을 품게 된 계기가 됐다. 영화 한 편으로 시작된 무덕질이 전업 무술가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 셈이다.

 무예24기 중 월도(청룡언월도) 수련 모습

무예24기 중 월도(청룡언월도) 수련 모습 ⓒ 김경준


 올해 2월 신촌대학교에서 개강한 <조선무사검술학과> 수업 중 검술을 지도하는 장면.

올해 2월 신촌대학교에서 개강한 <조선무사검술학과> 수업 중 검술을 지도하는 장면. ⓒ 김경준


나는 여전히 성룡을 꿈꾼다

얼마 전,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동안 배운 무술들을 잊고 형의권(形意拳)이라 불리는 중국권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무술을 배웠다고 자부해왔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부님과 사형들은 내가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절감했다. 여전히 나는 무림고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덕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무림고수가 아니면 또 어떤가. 지금 이 순간 무술을 수련하는 내 자신이 즐거우면 그만인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트레이닝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공원에 간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뻗어가는 주먹 끝에 맞닿는 공기,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오는 허벅지의 고통,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이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무술을 수련하는 순간만큼은 나 역시 무협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환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성룡이 되기를 꿈꾸는 철부지 소년인가보다.

덧붙이는 글 <내 안의 덕후> 공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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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선열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학도 / 以茶靜心 以武健身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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