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워>의 한장면

<플라워>의 한장면 ⓒ (주)모멘텀엔터테인먼트


꽃이 가질 수 있는 의미는 거의 무한에 가깝다. 사랑을 고백하거나 고마움을 전할 때는 물론이고, 죽음을 애도하고 위로를 표할 때도 꽃이 쓰인다. 지역과 문화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경조사에 꽃이 빠지지 않는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곧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게 분명한 꽃의 비실용성 때문이기도 하다. 마냥 아름다운 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기능이 없지만, 덕분에 그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담길 수 있다. 말하자면 꽃은 더할 나위 없는 추상적 오브제인 셈이다.

영화 <플라워>의 시작은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꽃 선물을 받는 여자다. 막 갱년기에 다다른 아네(나고레 아란부루 분)는 언젠가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꽃다발을 배달받는다. 계속되는 꽃 선물은 아네의 일상에 활력소가 되지만, 남편 안데르는 베일에 싸인 발송인의 존재가 못내 불편하다. 그러던 중 아네는 평소 가깝다고 할 수 없었던 직장 동료 베냐트가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우연찮게도 그 뒤 꽃 배달이 끊기고, 아네는 자신에게 꽃을 선물한 사람이 베냐트라고 여긴 채 나름의 방식대로 그를 추모하기 시작한다.

 <플라워>의 한장면

<플라워>의 한장면 ⓒ (주)모멘텀엔터테인먼트


"꽃으로 뭘 할 수 있겠어요." 꽃 배달을 불편해 하는 남편에게 아네가 하는 이 말은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매주 새 꽃다발을 꽃병에 담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아네에게 꽃은 일상의 작은 행복일 뿐,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여성성을 잃어가는 중년의 아네는 꽃으로부터 응원을 받고 위로를 얻을 따름이다. 미용실에 들러 오랜만에 머리를 하는 것도, 만원 버스 안에서 괜시리 미소가 번져나오는 것도. 아네가 꽃을 받으며 겪는 변화들은 무료한 결혼 생활 속 한줄기 빛이 된다. 말하자면 아네를 위한 꽃은 '당신은 사랑받고 있다'라는 응원이다.

내내 거리를 둔 채 아네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영화의 태도는 극 중 꽃이 갖는 추상성을 극대화한다. 영화는 아네와 남편이 서로에게 갖는 감정도, 꽃을 받는 아네와 꽃을 보낸 누군가의 감정도 줄곧 희미하게만 비춘다. 심지어 아네를 향했던 꽃의 출처조차 끝까지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는다. 그저 내내 꽃을 프레임에 담으며 다각적이고도 세심한 시각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어슴푸레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아네의 감정은 누구에게도 가 닿지 못한 채 다만 꽃 속에 머문다. 이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원초적 고독이 되어 스크린 밖까지도 공허한 메아리를 남긴다.

 <플라워>의 한장면

<플라워>의 한장면 ⓒ (주)모멘텀엔터테인먼트


중반 이후 확장되는 영화의 서사는 사적 감정과 이를 대하는 제삼자의 시선 사이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긴다. 꽃에 얽힌 아네의 감정이 죽은 베냐트에서 그의 아내였던 루르데스(이치아르 이투뇨 분), 나아가 베냐트의 노모로까지 이어지는 전개는 특히 인상적이다. 베냐트의 죽은 뒤 매주 사고 현장을 찾아 꽃다발을 놓아두는 아네, 그리고 이를 대하는 루르데스와 시어머니의 감정은 미묘하게 얽히며 신선한 드라마를 자아낸다. 이들 캐릭터를 연기한 세 여배우의 연기는 영화의 화룡정점이라 할 만하다.

<플라워>는 스페인 감독 욘 가라뇨가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지난 2014년 제작돼 제62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특별언급상, 제26회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 씨네 라티노상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제88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스페인영화를 대표해 출품되어 "역사상 최고의 바스크 영화(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영화)"(hollywood reporter)라는 극찬을 받았다. 오는 6일 개봉.

플라워 스페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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