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6>의 이미지

지난해 출시된 <문명 6>. <문명> 시리즈는 언제나 날 설레게 한다. ⓒ 2K 게임즈


나에게는 15년 동안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이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뀌는 시간이다. 하물며 유행의 전환이 빠른 게임은 수없이 많은 것들이 나오고 사라지는 기간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한 게임만 했다. 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세상 바깥 일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으며, 다시 게임을 해도 항상 새롭다.

대부분 사람이 온라인 게임을 즐기지만, 나는 PC 게임을 즐기는 편이다. 혼자서 압도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컴퓨터에 맞서서 전략을 짜고 최소한의 자원으로 효율을 올려서 승리하는 게임을 즐기는 편이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게임이 바로 그런 게임이었다. 내가 이 게임을 플레이한 시간은 수천 시간이 넘는다. 15년간 내가 이 게임을 잠시 쉰 적은 있어도 잊은 적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의 이름은 바로 <문명>이다.

'문명하셨습니다'의 그 <문명>에 빠지다

 <문명6>의 이미지

그래픽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 2K 게임즈


<시드 마이어의 문명>(아래 <문명>) 시리즈는 1991년부터 출시되고 있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다. 최신작은 작년에 출시된 <문명 6>이다. 다양한 문명을 골라서 특색있는 장점을 활용해 승리 목표를 달성하는 게임이다. 농경만 습득한 고대부터 시작하여, 다른 우주에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미래까지 넓은 배경을 다룬다.

<문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최고봉이라고 한다. 문명 시리즈에는 종교를 창시하고,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며, 다른 문명과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넓히고, 외교를 통해 합종연횡을 이루는 전략 시뮬레이션의 요소가 모두 들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불가사의를 건설하고, 새로운 유닛을 활용하며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디테일도 있다.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하면 할수록 새로운 요소가 보이는 게임인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내가 처음 <문명>을 하게 된 것은 2003년이다. 어린 시절에 우연히 <문명 3>을 접하여 하게 되었는데, 어린이들이 대부분 그러듯이 주 문명은 무조건 한국이었다. 다른 문명이 좋든 나쁘든 무조건 한국을 골라서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는 플레이를 하며 역사 속의 대왕이 된 기분을 느꼈다.

물론 <문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게임이었기에, <문명>을 하다 보면 항상 나중에 낮은 점수를 받거나 엔딩까지 가는 일이 어려웠다. 진행이 어려우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대체 이 게임은 어떻게 해야 이기는 걸까? 그때부터 나는 <문명>을 몇 년에 걸쳐 꾸준히 플레이했다.

<문명>을 좋아하다 보니 인류 '문명'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게임을 시작하면서 내가 어떤 땅에 어떤 자원을 갖고 시작해야 유리한 것인가 궁금해서 오랜 시간을 들여 다시 하곤 했다. 매번 플레이하면서 계속 고뇌를 거듭했다. 국가별 문명의 특성에 따라 어떤 맵이 적합한 것인가, 어떤 자원이 있을 때 어떤 기술을 연구해야 하는가가 핵심이었다. 물론 요즘 같은 때는 게임 카페에 가입해서 공략을 보거나 하면 될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문명> 커뮤니티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문명에 관련된 지식을 학습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사를 살펴서 각 문명의 흥망성쇠를 살폈고,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세계사와 세계지리, 경제지리 과목이 모두 필수 과목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따라 이수한다면 나는 해당 분야를 깊이 학습할 기회가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문명>을 더 잘하겠다는 일념으로 세계지리를 살폈다. 열대에는 정글이, 냉대에는 툰드라가 있어서 문명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계사를 배우면서 문명 시리즈가 채택한 고대-고전-중세-르네상스-현대 순으로 진행되는 역사 발전 구도의 의미를 깨달았다. 경제지리를 배우면서 특정 지역에 어떤 자원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문명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원작자는 어떤 모티브로 이 요소를 도입했는지 생각했다.

<문명>을 위해, '문명'을 공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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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6>의 간디는 <문명 5>의 간디만큼 패악(?)스럽지는 않다. ⓒ 2K 게임즈


어느 정도 문명에 대해 알게 된 후, 2000년대 말에 <문명 5>가 출시되었다. 자신의 옥수수를 플레이어의 다이아몬드와 교환하겠다는 협박을 벌이는 간디(실제 게임에 해당 요소 없음)를 활용한 유머가 퍼지면서 <문명>이 보다 널리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게 이때부터였다. <문명 5>는 창병으로 탱크 잡는 게임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문명 3>의 전투 시스템이나 <문명 4>의 까다로운 위생, 사회 제도 시스템을 모두 개선한 작품이었다. 나는 이 게임을 하면서 <문명>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었다.

문명을 워낙 재밌게 하다 보니 문명사에 관한 책도 읽게 되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도 그렇게 읽게 된 책이다. 문명에 관한 책이기에 더 호감이 갔다. <총, 균, 쇠>는 문명의 성쇠에 영향을 끼치는 지형과 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저자가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하는 책이다. 나는 문명 경험을 떠올리며 굉장히 쉽게 이해했다.

실제 <문명> 게임에서도 자원과 지형의 위치는 절대적인 영향을 갖기 때문이다. 문명 게임의 경우 문명의 특징이 시작 시점에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는 일반적인 문명의 발전사와 다르다. 다만 문명 플레이는 자원과 지형이 갖는 중요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좋은 곳에 있거나 최소한 다른 지역과의 교역은 가능한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초원을 골라서 목장을 운영하며 플레이해야 하는 훈족 문명인데 초원이 부족한 지형에서 플레이하거나, 해군을 활용해야 하는 영국 문명인데 바다가 없는 내륙 지형에서 시작하거나 하면 게임의 난이도는 급증한다. 교역이 중요한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문명인데 시작 지점이 외따로 떨어진 정글로 교통이 막힌 지형이라면 그 게임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반면 큰 대륙에서 넉넉한 자원과 함께 시작한다면 게임의 난이도는 체감상 낮게 느껴진다.

우리 같이 문명합시다

<문명의 붕괴>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 강주헌 옮김 / 김영사 펴냄 / 2005.11. / 2만8900원)

▲ <문명의 붕괴>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 강주헌 옮김 / 김영사 펴냄 / 2005.11. / 2만8900원) ⓒ 김영사


<총, 균, 쇠>와 같은 저자가 쓴 책인 <문명의 붕괴> 역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문명의 붕괴>는 환경에 적합한 전략을 채택하지 못한 문명이 붕괴하는 과정을 설명한 책이다. 지속할 수 있는 전략을 채택하지 못한다면 그 문명의 미래는 없다. 숲을 활용해야 하는 이로쿼이 원주민 문명인데 숲을 베어서 모두 생산력에 추가한다면 이후 플레이는 특징을 활용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하여 서평을 쓰기도 했다(관련 기사: 찬란했던 문명들은 왜 멸망했을까).

이외에도 나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불가사의와 문명에 대해 교양서적을 구해 읽었다. 원래 문명에 관한 책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두꺼운 책들이 많다. 또한, 처음부터 시간 순서대로 읽기엔 지루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문명>이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한 덕에, 평소라면 관심 갖기 어려웠을 분야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동시에 각 문명의 불가사의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올라갔다. 처음 <문명>을 시작했던 어린 시절에는 낮은 난도인 왕자 난이도에도 쩔쩔매곤 했지만, 나중에는 왕, 황제 난이도도 쉽게 느껴졌다. 지금은 비교적 어려운 난도를 골라도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다.

<문명>,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한 게임이다. 이렇게 좋은 <문명>의 부작용. 한번 시작하면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게임 플레이에만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관념도 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명>을 농담으로 타임머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타임머신이라면 나는 앞으로도 여러 번 탈 듯하다. 많은 사람이 이 게임의 참맛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문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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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공모 <내 안의 덕후> 기사입니다.
문명 문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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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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