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의 흥행과 관계없이 매력 충만한 작품들을 열린 감각으로 그러모아 세심하게 해석하는 공감의 기록입니다. [편집자말]
택배를 들고 찾아 온 배달부에게도 다소 혐오스럽기까지한 유머를 남발하는, 도통 알 수 없는 남자. 괴짜의 삶은 그런 것일까. 별다를 것 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형식에 진실을 숨기고 그 대신 괴상한 유머가 있다. 하얗게 분칠하여 우스꽝스럽게 그린 얼굴로 학교의 예술클럽에 출근하는 남자 빈프리드. 학교 아이들과 뮤지컬 공연을 하고 돌아온 그가 오랜만에 만난 타인에게 자신의 직업을 말하는 순간에도 괴짜기질은 발동한다.

"나 양로원에서 아르바이트 해."

고민이랄 것 없어 보이는 그를 가장 신경 쓰이게 하는 존재는 병든 반려견 빌리다. 나이가 들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데리고 다닐 때도 자신이 에스코트해야 하며, 일터에 갈 때도 혼자 둘 수 없어 노모에게라도 맡길 수밖에 없는 강아지 빌리. 함께 있는 공간, 같은 일상에서 숨을 쉬고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짧게 느껴지는 이별의 순간. 반려견 빌리가 생을 다하고 말았다.

 괴짜 아빠 빈프리드(페테르 시모니슈에크)

괴짜 아빠 빈프리드(페테르 시모니슈에크) ⓒ (주)그린나래미디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들에 대하여

빈프리드의 노모, 반려견 빌리, 그리고 면도를 하지 않으면 하얀 수염으로 뒤덮여 버리는 나이가 된 빈프리드.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빈프리드는 나이든 가족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노모조차 아들의 병든 반려견을 두고 안락사를 언급했다.

"어머니도 안락사 안 시켜요."

늙고 병든 존재들이 버거워 내다 버리고 싶은 순간이 어찌 오지 않았겠는가. 감독의 전언은, 곧 아스라져 버릴 가족을 떠안고 사는 중년의 빈프리드를 통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에 대한 회한에 있다.

영화는 반려견의 죽음에 대하여 빈프리드가 가질 슬픔을 표면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괴짜스러운 그가 소중한 존재의 소멸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곁에 있던 강아지보다도 살갑지 않은 딸 이네스의 삶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발상이다. 어떤 존재와의 이별을 또 다른 존재에게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는 자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딸...노릇이 필요해

 "어때? 여기선 좀 행복하니?"

"어때? 여기선 좀 행복하니?" ⓒ (주)그린나래미디어


딸 이네스가 있는 루마니아 여행을 택한 빈프리드. 갑자기 찾아 온 아빠에 당황한 이네스는 성공 지향적 목표가 있는 워커홀릭이다. 자신의 업무상 중요한 자리인데, 항상 지니고 있는 틀니를 뺐다 꼈다 하며 엉뚱한 말을 내뱉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는 이네스. 갑작스러운 아빠의 출현이 끔찍한 감정을 유발할 정도로 괴짜아빠가 신경 쓰이는 그녀. 한 달을 머물겠다는 아빠. 괴롭지만 그런 아빠를 말릴 방법을 떠올릴 수 없는 꽤 양심 있는 딸이다.

딸이 딸 노릇을 하지 않으니, 딸 노릇을 할 아이를 고용하려고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아빠 빈프리드의 진심엔 얼마동안만이라도 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러나 바쁜 딸은 마사지를 받고 여유롭게 샌드위치를 먹을 시간조차 없이 바쁘다. 함께 시간을 보낼 틈 없이 바쁜 일상을 굴리는 딸에게 던진 '어때, 여기선 좀 행복하냐'는 질문엔 아빠의 온갖 감정이 뒤엉켜 있다. 자신을 낯선 타국의 마사지숍에 두고, 중요 고객 와이프의 쇼핑메이트가 되어주기 위해 자리를 뜬 딸이 원망스럽지만 사실은 딸의 삶에 여유가 없는 것이 못내 걱정이다.

 "항상 지나고 나서야 깨닫지. 그 순간엔느 깨달을 수 없어."

"항상 지나고 나서야 깨닫지. 그 순간엔느 깨달을 수 없어." ⓒ (주)그린나래미디어


몇 차례의 갈등이 불꽃을 본 이후, 길 것만 같았던 딸 노릇도 예정보다 일찍 끝날 기미가 보인다. 어쨌든 정말 좋았다며 짐을 싸는 아빠의 속내에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것 역시 말리고 싶지 않은 딸의 심정도 복잡하기만 하다. 중장년의 세월을 거스르지 않은 아빠가 짐 가방을 택시에 싣는 광경을 바라보다 돌연 울컥하는 감정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나이든 아빠의 뒷모습에 어리는 쓸쓸함의 지분엔 분명 자기 몫이 얼마쯤 있음을 알고 있던 것이다.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와 토니에드만이 되어 나타난 아빠 빈프리드(페테르 시모니슈에크)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와 토니에드만이 되어 나타난 아빠 빈프리드(페테르 시모니슈에크) ⓒ (주)그린나래미디어


토니 에드만

아빠가 떠나고, 다시금 안정적으로 일에 매진하는 이네스의 곁에 아빠만큼이나 괴상스런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토니 에드만. 돌출된 치아와 덥수룩한 긴 머리,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양복 차림의 남자는 거짓과 농담으로 범벅된 유머를 즐기는 괴짜아빠 빈프리드와 똑같다고 할 정도로 닮아 있다.

'토니 에드만'은 빈프리드를 완전히 불식시키지 못했다. 아빠의 입장에서는 어떤 모습으로도 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한 빈프리드가 선택한 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변장이다. 그러나 눈치 빠른 딸 이네스를 통해 되돌아오는 건 여전한 냉담이다. 관객 입장에서도 토니 에드만이 되어 딸의 근처를 배회하는 아빠를 지켜보는 일이 생각보다 유쾌하지만은 않다.

 "이제 그만해요, 아빠."

"이제 그만해요, 아빠." ⓒ (주)그린나래미디어


장성한 자식의 곁에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나이 든 부모의, '내가 다른 모습이 되어서 아이 곁에 있게 된다면'과 같은 상상은 이뤄질 수 없는 판타지다. 붙잡아 둘 수 없던 순간이 불에 타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간 듯 온데 간데 없어진 것을 바라볼 때의 허전함. 쓸쓸함. 딸의 인생을 붙잡아 둘 순 없지만, 그 곁에서 쓸쓸함 대신 유머를 잃지 않은 토니 에드만이자 빈프리드인 아빠의 판타지에 돌을 던질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토니 에드만도 모자라 급기야 진짜 괴상한 무언가가 되어 버린 아빠. 어떤 모습으로든 딸의 인생을 축복하고 싶었던 아빠의 진심은, 결국 얼음장 같던 딸의 마음에 뜨거운 물을 부어 넣는다. 그렇다. 항상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순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rnjstnswl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토니에드만 마렌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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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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