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만 빛난다>의 한장면

<그곳에서만 빛난다>의 한장면ⓒ 제인앤유


'창녀'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회 밑바닥의 약자로서 상대방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기꺼이 함께 감수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랑의 숭고함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연인 관계의 기본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배타적이자 독점적인 성적 소유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상대방에게 마음을 주는 건 분명 엄청난 일일 것 같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있어 존재하는 시련이야말로 그 사랑의 감정을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긴 셈이다. 많은 로맨스 소설과 영화 속 연인의 서사가 시련-사랑의 비례 관계 위에서 진행되는 건 아마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영화 <그곳에서만 빛난다>는 이러한 로맨스의 공식을 극단까지 몰아붙인다. 그 중심에는 사회 속에서 여러 형태로 '을'로써 위치하는 치나츠(이케와키 치즈루 분)가 있다. 그는 형무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한 남동생 타쿠지(스다 마사키 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유부남 사업가와 내연 관계를 유지한다. 밤에는 뇌경색으로 누워있는 아버지와 알코올중독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성매매 업소에서 일한다. 파친코에서 우연히 친해진 타쿠지의 집을 방문한 타츠오(아야노 고 분)는 치나츠에게 호감을 느끼고, 이 와중에 그가 처한 상황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고통스러워한다.

 <그곳에서만 빛난다>의 한장면

<그곳에서만 빛난다>의 한장면ⓒ 제인앤유


극 중 타츠오가 맞닥뜨리는 장애물들은 단순히 둘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란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하다. 실질적 가장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치나츠에게 달콤한 연애 따위는 먼 나라 얘기고, 그를 향한 타츠오의 마음은 그 자체로 아무런 힘이 없다. 고된 삶 속에서 짧게나마 이어지는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들이 퍽 달콤 쌉싸름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바닷가 작은 마을의 평화로운 정경 속 이들의 모습에서는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더불어 불투명한 미래가 동시에 엿보인다.

치나츠에 대한 타츠오의 감정을 그저 연민과 희생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영화의 태도는 특히 인상적이다. 타츠오가 과거 산에서 발파 일을 하던 중 겪은 사고는 트라우마가 되어 그를 괴롭히고, 때문에 무기력한 그의 일상은 치나츠의 고된 처지와 더불어 동병상련의 구도를 형성한다. 치나츠의 과거와 현재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가족'이란 이름의 짐을 함께 짊어지기까지. 타츠오에게 있어 치나츠는 어떤 시련도 막지 못할 '빛나는' 사랑의 대상이자,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된다. 상대방을 위한 결심이 결국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 작용하는 것이다.

 <그곳에서만 빛난다>의 한장면

<그곳에서만 빛난다>의 한장면ⓒ 제인앤유


결국 <그곳에서만 빛난다>는 현실적 장치들을 활용해 이상적인 로맨스를 다루는 작품이다. 그 안에는 상대방의 치부를 기꺼이 껴안으리라는 각오가 있고, '타인의 삶'이라는 거대한 책임을 짊어지겠다는 다짐이 있다. 그렇게 영화는 사랑은 머지않아 '삶'이 될 거라고, 로맨스는 곧 '생활'로 변모할 거라고 역설한다.

그러니까 로맨스의 주인공들이 사랑이란 미명 하에 고난을 택하는 건 당연하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미녀와 야수도, 애초에 아담과 이브의 사랑도 고생길이 훤한 '그곳에서만' 빛난다. 어쩌면 모든 '어려운' 사랑들은 당사자의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무의식적 행동인지도 모른다. 굳이 우리가 각자의 '치나츠'를 찾아나설 것까진 없지만, '나와 다른 세계'의 연인을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 길이 안락함을 보장하진 않을지언정, 우리 각자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할 테니까 말이다.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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